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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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임장활동에 비용을 청구하는 ‘임장비’ 도입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임장(臨場)은 ‘현장에 임한다’라는 뜻의 한자어인데, 부동산을 직접 확인하고 주변 정보를 얻기 위해 현장을 찾아가는 활동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한마디로 부동산 현장 답사를 임장이라고 한다. 김종호 공인중개사협회장은 최근 “공인중개사와 부동산 매물을 보러 가는 임장활동에도 비용을 지불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른바 ‘임장 기본보수제’ 도입을 올해 협회의 핵심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임장비는 공인중개업계의 힘든 현실을 감안할 때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비용이 들지 않던 집 보기 등에 요금을 내게 하는 것은 과하다는 주장이다. 임장비 도입과 관련한 찬반 의견을 들어봤다.[찬성] 실계약 의사 없이 집 보는 수요 늘어…중개 업계 어려운데 영업 제한까지부동산을 공부하기 위해 매수 의사 없이 현장을 방문해 매물을 둘러보는 이른바 ‘임장 크루’가 크게 늘어났다. 임장 크루는 임장과 크루(crew)의 합성어로, ‘임장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온라인 카페를 중심으로 급속히 늘어난 임장 크루의 주축은 2030세대다. 부동산 투자에 눈을 뜬 청년층이 현장 답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임장 크루 방문이 실거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정보 수집이나 투자 스터디, 단순 호기심 차원의 임장이 대부분으로 파악된다.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2030세대가 중심이다 보니 매수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 매매나 전세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공인중개사 입장에서는 수입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공인중개사협회는 예비 수요자가 공인중개사를 대동하고 매물을 살펴보는 경우 일정 금액의 임장비를 먼저 내고, 실제 계약이 이뤄지면 그 비용을 중개보수에서 차감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임장을 위한 상담, 안내 등 노동과 서비스를 감안하면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협회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최근 정보수집 등을 위해 공인중개업소를 방문하는 임장 크루가 늘어나면서 영업활동에 지장을 받는 공인중개사가 적지 않다. 정작 실수요로 이뤄질 수 있는 손님에 대해서는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임장 크루 때문에 공인중개사는 물론, 집주인이 집을 보여주고 설명하는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고 있다.

임장 크루를 가려내기도 쉽지 않다. 실수요자인 척하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서다. 임장 크루가 늘면서 전체 방문자의 80~90%가 매수 의사 없는 손님이라는 푸념도 나온다. 임장비 도입을 위해서는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중개업소의 생존을 위해 임장비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반대] 옷 가게서 입어볼 때 비용 내나?…섣부른 비용 청구는 직거래만 늘릴 것2030세대를 중심으로 부동산 투자 열풍이 불면서 임장이 인기를 끌고 있다. 매수, 매도, 임차 등 정보를 얻거나 경험을 쌓기 위해 공인중개사무소에 방문해 매물을 살펴보는 임장 크루도 활성화되고 있다. 일부 중개업소에서 이 때문에 영업활동에 제한을 받는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임장비까지 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 옷 가게에서 옷이 맞는지 입어볼 때마다 비용을 내라는 얘기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계약이 성립하지도 않았는데, 집을 보여줬다고 손님들에게 비용을 내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영업을 위해 이 정도 기본 서비스도 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일감이 없어 휴업이나 폐업하는 공인중개사가 늘고 있다. 여기에 임장비까지 받는다고 하면 업계 전체의 이미지만 나빠지고 부동산 직거래가 늘어날 것이다.

지금도 부동산 중개수수료가 비싸다는 이유로 직거래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당근마켓에서 성사된 부동산 직거래 건수는 5만9451건을 기록했다. 2021년(268건)과 비교하면 3년 만에 200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현행 공인중개법에서는 멀리 떨어진 매물을 고객 요청으로 보러 갈 경우 공인중개사가 교통비 등 실비를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시간이나 비용이 많이 들었다면 이 규정대로 비용을 청구하면 된다. 임장 크루가 당장은 실제 계약하지 않더라도, 부동산 투자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잠재고객 증가는 당연히 중개업소의 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임장비까지 부과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임장비를 제도화하면 실제 받는 곳과 받지 않는 곳이 나뉘어 혼란이 커질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임장비를 도입하면 공인중개사만 갖는 게 아니라 집을 보여주는 집주인이나 세입자에게도 나눠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생각하기 - 제도화 '무리'…임장비 앞서 협회 차원 대응 우선을
[시사이슈 찬반토론] 집 둘러보는데 돈 내는 '임장비' 도입해야 하나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등 해외에서 임장과 관련해 별도로 비용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국 뉴욕주나 플로리다주에서 중개인의 시간과 노력을 고려해 사전에 수수료를 약정하기도 하지만, 일반적 사례로 볼 수는 없다. 임장 크루 때문에 영업활동에 제한받는다는 중개업소의 하소연에도 일리는 있다. 이는 변호사, 세무사 등 다른 전문 자격 업종에서는 고객이 짧은 상담만 받아도 비용을 내는 것과 대조된다. 그렇지만 임장비를 당장 제도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가뜩이나 한국은 부동산 중개수수료가 비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여기에 임장비까지 도입한다면 중개업소 이미지만 나빠질 수 있다. 또한 직거래가 늘어나면서 비용이 싼 부동산 거래 플랫폼 탄생을 부추길 수 있다. 임장비 도입이 공인 업계 전체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협회 차원에서 임장 크루에 대한 방문 횟수 제한 등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 임장비 도입 논의보다 우선해야 한다.

서욱진 논설위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