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따라 달라지는 뱀독
독성이 약하다고 알려진 뱀이 어느 날 블랙맘바처럼 맹독을 품게 된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섬뜩하지만, 실제로 뱀의 독성은 단순한 유전적 특성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서식 환경에 따라 뱀의 독성이 바뀔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인도 과학연구소(Indian Institute of Science, IISc) 소속 연구진이 ‘기후’가 뱀의 독성을 바꾸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연구 결과를 열대 의학 분야 국제 학술지 ‘PLOS Neglected Tropical Diseases’ 최근호에 게재했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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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종의 뱀이라도 서식하는 지역의 온도, 강수량 같은 환경 조건에 따라 독의 성분과 위력이 다르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인도 전역에 서식하는 독사인 러셀살무사(학명 Daboia russelii)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인도 내 34개 지역에서 러셀살무사 115마리의 독 샘플을 채취한 후 독의 성분과 강도를 평균기온, 기온 변화 폭, 강수량, 강수량의 계절성, 습도 등 각 지역의 기후 데이터와 비교해 분석했다. 독의 경우 단백질분해효소(protease), 인지질분해효소(PLA2), L-아미노산 산화효소(LAAO) 등 세 가지 효소로 나눠 각자의 활성 정도를 측정했다. 세 효소는 각각 신체 조직 파괴, 세포막 분해, 세포 사멸 촉진을 유발하는 독소다.

분석 결과, 독성 효소의 활성이 지역별 기후 조건에 따라 뚜렷하게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백질분해효소는 연평균 강수량이 낮고, 일교차가 크면서 건조한 지역일수록 활성도가 특히 높았고, 온난다습한 지역일수록 낮았다. 반대로 인지질분해효소의 활성도는 강수량이 많고, 습한 지역일수록 높게 나타났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 같은 결과는 뱀이 사는 지역의 기후에 따라 필요한 독의 기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건조한 지역은 동물들의 체액 손실이 빠르게 일어나므로 체액을 통한 독의 확산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혈관이나 근육 조직을 직접 파괴하는 단백질분해효소의 활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온도와 습도가 높은 환경에서는 인지질분해효소를 활성화해 세포막을 분해하면 체액을 통해 퍼진 독이 세포를 효과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

다만 L-아미노산 산화효소의 활성도의 경우 지역 간 편차는 있지만, 기후 조건과 큰 연관성은 없었다. 연구진은 이 효소가 다른 독소와 비교해 보조적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환경에 따라 변화가 필요할 정도의 성분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연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특정 지역에 서식하는 러셀살무사가 어떤 유형의 독을 지닐 가능성이 높은지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예컨대 북서부 사막지대는 조직을 파괴하는 독성이 두드러지고, 습한 남부 해안 지대는 체내에 빨리 퍼지는 독성이 강할 가능성이 크다. 이 지도는 지역별 항독소 개발이나 치료법 개발에 활용될 수 있으며, 실제 뱀 독을 채취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도 간접적으로 위험도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중보건 분야에서 쓰일 가능성도 크다.

기후변화가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 뱀과 생태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모니터링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기온이 몇 ℃ 오를 때 어떤 지역에 어떤 독사가 나타나는지, 그 독은 기존 항독소에 얼마나 잘 반응하는지 등을 파악해야만 인간과 뱀은 공존할 수 있다.

한편 기후는 단지 독의 조성뿐 아니라, 뱀의 서식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해 국제학술지 ‘The Lancet Planetary Health’에 실린 연구에서는 기후 시나리오에 따라 전 세계 독사 209종의 서식지를 예측했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독사의 분포가 줄어들고, 다른 지역에서는 새롭게 출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기온이 1.5℃ 이상 상승하면 지금까지 독사 피해가 없던 지역에서도 물림 사고가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농촌이나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일수록 이러한 변화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기후변화가 뱀의 외모도 결정한다. 2022년에 발표된 북미 쥐잡이뱀(ratsnake) 관련 연구에 따르면 따뜻하고 습한 지역에 사는 개체일수록 몸 색깔이 더 어두운 경향이 있다. 어두운색이 햇빛을 더 잘 흡수해 체온 유지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같은 해 발표한 이탈리아 물뱀 관련 연구에서는 지역에 따라 멜라닌 함량이 달라져 색에 차이가 생긴다는 결과도 나왔다.√ 기억해주세요
김우현
칼럼니스트
김우현 칼럼니스트
같은 종의 뱀이라도 사는 지역의 기후에 따라 독의 성분과 위력이 달라질 수 있다. 건조하고 일교차가 큰 지역의 뱀은 조직을 파괴하는 단백질분해효소의 활성이 높고, 습하고 따뜻한 지역의 뱀은 세포막을 분해해 독을 퍼뜨리는 인지질분해효소의 활성이 높게 나타난다. 이처럼 뱀은 주변 환경에 맞게 자신이 가진 독의 기능을 조절하며 진화해왔고, 그 결과 동일한 종이라도 지역마다 물림 사고의 증상과 치료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기후는 뱀의 체색, 크기, 서식지까지 바꾸는 요인이 된다. 기후변화 시대에 뱀 독성의 지역별 차이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치료 전략을 세우는 일은 앞으로의 공중보건 대응에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