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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이은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이은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암호화폐이면서 가치가 안정적인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일상생활 속 결제·송금 등의 용도로 주목받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엔 스테이블 코인 기반의 체크카드를 쓸 수 있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달러 가치와 함께 움직이는 스테이블 코인 테더(USDT)를 사놓고, 이를 바탕으로 결제하는 체크카드(레돗페이)를 발급받으면 이곳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테더는 달러나 마찬가지여서, 해외에서 이 카드를 쓰면 실시간 환율이 적용되고 카드 해외 이용 수수료도 붙지 않아요.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월급으로 테더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른바 ‘코인 월급’입니다. 이를 본국에 송금하면 수수료도 기존 은행보다 훨씬 낮습니다. 환율 변동을 걱정할 필요도 없지요.

미국에선 이자까지 주는 스테이블 코인이 등장해 은행예금이 스테이블 코인으로 옮겨가는 ‘머니무브’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사실상 달러화나 다름없기 때문에 국내에서 사용이 늘어나면 원화 결제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선 TV 토론에서 후보들이 관련 정책을 언급하기도 했죠.

스테이블 코인엔 미국의 국가전략이 숨어 있다고 합니다. 스테이블 코인이 무엇이고, 왜 인기몰이를 하고 있으며, 미국의 전략은 무엇인지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테더코인, '디지털 달러'로 인식 확산
거래비용 낮고 편리…기업들도 선호
스테이블 코인은 말 그대로 ‘가치가 안정적인 암호화폐’를 뜻합니다. 암호화(cryptocurrency)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인데요, 가격의 변동성이 심해 주로 투자의 대상이 됩니다. 일상생활에서 결제나 송금, 자산관리를 위한 수단으로 삼기엔 적합하지 않죠. 스테이블 코인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4년에 등장했습니다. 대개 미국 달러, 유로화 같은 법정화폐나 금과 같은 실물자산의 가치에 일대일로 연동(pegging)하도록 만들어집니다. 예를 들어, 놀이공원이나 워터파크 같은 곳에서 1만원짜리 쿠폰을 사면 한정된 공간 안에서 실물화폐를 쓰지 않고도 편리하게 먹거리를 사고 놀 수 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도 비슷합니다. 테더(USDT), USD코인(USDC) 등 미 달러에 기반한 스테이블 코인은 ‘디지털 달러 쿠폰’과 같습니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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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1코인’ 고정

스테이블 코인 발행 회사는 사용자가 1달러를 입금하면 그에 상응하는 1개의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합니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1달러로 찾을 수 있도록 발행사가 실제 은행 계좌에 같은 금액의 달러(또는 미국 국채)를 예치합니다. 이를 ‘법정화폐 담보형 코인’이라고 합니다. 기존 암호화폐를 담보로 맡기는 암호화폐 담보형도 있습니다. 이 경우 발행사는 담보로 삼는 코인을 사고팔아 스테이블 코인의 가치를 안정시킵니다. 별도의 담보 없이 스테이블 코인의 공급량을 조절하는 방법만으로 가치를 안정시키는 알고리즘형도 있었는데요, 신뢰가 무너지면 한 번에 휴짓조각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게 2022년 테라(UST) 가격 폭락 사태로 현실화합니다. 이후 법정화폐 담보형 등이 일반화하며 스테이블 코인 시장은 2023년부터 급성장합니다.

‘진짜 돈’과 다름없어

스테이블 코인 시장은 지난달 기준 약 2400억 달러(약 335조원) 규모입니다. 이는 일반 암호화폐 시장(약 2조6000억 달러)의 10분의 1 규모이지만, 최근 1년 새 몸집이 2배로 커졌습니다. 대표적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의 하루 평균 거래금액은 1351억 달러로, 비트코인 거래금액의 2배에 달합니다. 사용자 수도 빠르게 늘고 있어요. 지난 2월, 스테이블 코인의 활성 지갑 수는 1년 전에 비해 50% 늘어난 3000만 개를 넘었습니다.

이런 시장 급성장과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가격이 안정돼 있어 실생활에서 활용도가 높다는 점입니다. 유럽·동남아 등지에선 빵집이나 전자제품 매장, 택시, 호텔 등에서 스테이블 코인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어요. 암호화폐 결제 앱이나 스테이블 코인 기반 카드(체크카드)로 결제 가능합니다. 환전소나 온라인 플랫폼에선 달러 등 실물화폐로 바꿀 수도 있죠. 이 정도면 진짜 돈이나 다름없습니다.

또 전통적인 금융망에 비해 송금과 결제가 빠르고, 관련 수수료도 저렴합니다. 해외 송금의 경우, 은행에선 수일이 걸리고 수수료도 최대 10% 떼는 데 반해 스테이블 코인은 거의 실시간으로 가능하며, 송금 수수료도 1% 이하입니다. 작년 말 기준으로 스테이블 코인은 전 세계 소매 해외 송금 거래의 1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눈치챘을 겁니다. 기업들도 이 코인을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출입 대금 결제와 무역금융에서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하면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고 거래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어요.

나라 경제에 이득 될 수도

스테이블 코인은 통화가치가 불안정한 나라, 즉 인플레이션 위험이 큰 나라에서 실질적인 달러의 역할을 합니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에선 자국 통화보다 달러가 선호되는데요, 달러 현찰보다는 스테이블 코인이 훨씬 편리하고 안정적이어서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나라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영국 싱크탱크 경제경영연구소(CEBR)가 17개국을 분석한 결과, 통화가치의 변동성 위험이 1992~2022년 연평균 국내총생산(GDP)의 9.4%에 달하는 손실을 입혔습니다. 인도네시아(1840억 달러)와 브라질(1720억 달러)의 GDP 손실이 컸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의 사용은 나라 경제의 이런 위험도 줄여줄 수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암호화폐란 무엇이고, 스테이블 코인은 안심해도 되는 자산인지 알아보자.

2. 대표적 암호화폐의 하루 거래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보자.

3. 스테이블 코인이 해외에서 결제수단 등으로 활용되는 사례를 찾아보자. 스테이블 코인은 '제2의 페트로 달러'
미국, 기축통화 패권 균열 막는다
스테이블 코인의 급성장 배경에 미국의 국가전략이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한 디지털 자산 행사에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비트코인을 국가전략 자산으로 비축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데 이어 스테이블 코인과 관련한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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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 속 미국의 달러 전략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스테이블 코인 발행량은 엄청 늘었습니다. 미국 통화량 21조6700만 달러(광의의 통화인 M2 기준)의 1%를 차지합니다. 입출금·송금 등 거래를 포함하면 올해 8조 달러대를 넘길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는 단순한 산업 육성 차원을 뛰어넘는 규모입니다. 미국이 재정위기와 달러패권 균열이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달러 기축통화 체제를 지키기 위해 스테이블 코인 시장을 키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제사 속에 힌트가 있습니다. 1971년 미국의 무역수지는 100년 만에 적자로 전환됐습니다. 당시는 달러를 가져오면 미 중앙은행(Fed)이 금으로 바꿔주는 ‘금태환’ 시기였습니다. 무역적자가 커지면 금이 미국 밖으로 유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죠. 이걸 막기 위해 닉슨은 달러의 금태환 중지를 선언합니다. 닉슨은 무역적자가 달러 강세 때문이라고 판단했는데, 금태환 중지로 달러 강세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미국 정부가 자유롭게 돈을 찍어내면서 인플레이션이 심해진 점입니다. 세계 각국은 달러 기축통화체제, 즉 달러에 대한 믿음에 의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미국도 새로운 방식으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 답은 중동 원유에 있었습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비밀 협약을 맺고 원유를 사 갈 때 반드시 달러만 사용할 수 있게 했어요. 달러의 위기를 ‘페트로달러’(달러로 원유 결제) 시스템으로 넘긴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미국 경제의 쇠락 원인을 강달러에서 찾습니다. 그 역시 달러 약세를 유도하려 한다는 관측이 많습니다. 하지만 달러의 세계 금융시장 지배력이 훼손되면 안 되기에 이번엔 스테이블 코인을 방패막이 삼고 있습니다. 그는 처음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이 달러 체제에 도전한다고 봤지만, 이젠 그런 관점을 폐기합니다. 암호화폐를 봉쇄하지 않고, 그 안에 달러를 주입해 달러를 디지털 금융 질서의 중심에 가져다 놓겠다는 겁니다.

USDC와 같은 민간 발행 코인은 이미 글로벌 거래와 결제, 자산운용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미국 국채를 기초자산으로 한 펀드를 이더리움 기반으로 내놨습니다.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스테이블 코인을 결제 정산에 통합하고 있습니다. 미국 밖에 있는 사람들도 달러(스테이블 코인)를 일상적으로 쓰는 때가 다가옵니다. 미국 정부는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 글로벌 결제와 금융의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튼튼히 다져질 수 있다고 봅니다. 스테이블 코인을 통해 디지털 시대의 페트로달러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필요성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을 국내에서도 큰 불편 없이 쓸 수 있다면 사실상 달러가 원화를 대체하는 효과가 생길 겁니다. 그렇다면 국내 외환시장과 거시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겠죠?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암호화폐에 관심이 많습니다. 원화 암호화폐시장은 세계에서 3~4번째로 큰 시장이죠. 국내 암호화폐거래소에서도 달러 스테이블 코인(USDT, USDC)이 상장돼 거래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작년 6월 업비트에 USDT가 상장된 이후, 월평균 11조원가량 거래되고 있습니다. 코인이 아니라, 달러가 대규모로 거래되는 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설계하고 발행하지 않으면 해외에서 만들어진 원화 코인이 유통될 수 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은 일종의 통화 권력의 재편이자, 디지털 시대의 중요 국가전략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비도 하기 전에 ‘디지털 원화’가 해외에서 역수입되면 어떻게 될까요? 스테이블 코인이 지금 대선 과정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NIE 포인트 1. ‘페트로달러’가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자.

2. 세계 금융회사들은 스테이블 코인을 어떻게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고 있는지 찾아보자.

3. 우리나라의 암호화폐 관련 법제도가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조사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