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에 관한 이야기

철학적으로 보면 1은 존재를, 0은 부재를 상징합니다. 이 두 개념 사이에서 수많은 수학적 사유가 시작되며,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또한 정교해졌습니다. 이처럼 작은 수 하나에도 놀라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수학은 여러분에게 더 흥미롭고 친숙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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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수학에서 가장 작고 단순한 두 수, 0과 1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사용하는 수인 0과 1은 수학적 사고의 출발이자 끝입니다.

먼저 1을 살펴봅시다. 1은 우리가 처음 배우는 수이면서 셈의 출발점입니다. 하나의 사과, 하나의 의자처럼 현실 세계에서 ‘하나’라는 개념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수학에서 1은 단순히 ‘하나’라는 양을 넘어 기준이 되는 수입니다. 어떤 수에 1을 곱해도 그 수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연산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죠. 수학에서는 이처럼 어떤 수의 본질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수를 특별히 주목합니다.

단위의 정의에서도 1은 중심이 됩니다. 1m, 1초, 1g처럼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재는 수많은 방식은 이 ‘1’에서 출발합니다. 즉 1은 단지 ‘하나’를 넘어 세상의 구조를 형성하는 기본 단위입니다. 1이라는 수는 어떤 사물의 수량을 셈하는 것뿐 아니라, 어떤 개념의 기준을 세우는 도구로도 작동합니다. 모든 수가 1을 몇 번 더한 것이냐는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1은 자연수 체계의 뼈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0은 어떨까요? 0은 ‘없음’을 뜻하는 수입니다. 하지만 이 ‘없음’은 단순히 비어 있다는 의미를 넘어, 수학적으로는 매우 정교하게 다뤄지는 개념입니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자리 표시용 기호로 비어 있는 공간을 표현했지만, 정수 체계 속에서 ‘없음’을 하나의 수로 인정한 것은 7세기 인도에서였습니다. 분수 개념도 고대 이집트에서 이미 사용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0의 등장은 상대적으로 매우 늦은 시기였죠. 이는 그만큼 0이라는 개념이 직관적으로 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수학자 브라마굽타는 0을 수의 하나로 간주하며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는 0과 관련된 연산 규칙들을 제시했는데, 예를 들어 0에 어떤 수를 더하거나 빼는 경우, 심지어 0에 0을 더한 결과까지 명확히 설명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계산 규칙을 넘어 ‘없음’에 대해 일관된 논리를 적용하려는 매우 진보적 시도였습니다. 브라마굽타의 이러한 작업은 이후 수 체계 전체에 영향을 주었고, 0이 수학의 주요 구성 요소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후 아라비아 세계를 거쳐 유럽으로 전파되며, 0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십진법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0이라는 개념이 신의 창조 질서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무’를 수로 다룬다는 생각 자체를 불경하거나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실제로 0은 한때 ‘악마의 수’라고 불리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수학적 필요성과 논리적 정합성 속에서 0은 점차 수학의 핵심 요소로 받아들여졌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수 체계의 중요한 기둥이 되었습니다.

0은 연산에서도 중요한 성질을 가집니다. 어떤 수에 0을 더하면 그 수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반대로 0에 어떤 수를 곱하면 결과는 0이 됩니다. 이런 성질은 수학의 기본 구조를 세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더 나아가 수학의 공리 체계나 수리논리학, 집합론에서도 0은 ‘시작점’ 혹은 ‘기본 단위’로서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어떤 것도 없는 상태에서 논리를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 바로 그 출발선에 0이 존재합니다.

0과 1은 이렇게 수학의 이론적 틀에서 큰 의미를 가지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디지털 문명을 이루는 토대이기도 합니다. 컴퓨터는 오직 0과 1, 두 가지 상태로 정보를 처리합니다. 전기가 흐르는 상태(1)와 흐르지 않는 상태(0)를 조합해 문자를 나타내고, 이미지를 저장하며, 음악을 재생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정보는 사실상 0과 1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정현 푸른숲발도르프학교 교사
이정현 푸른숲발도르프학교 교사
그렇다면 꼭 ‘0’과 ‘1’이어야 할까요? 이론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진법에서 두 가지 상태만 구별할 수 있다면 A와 B, 와 ● 같은 기호를 써도 무방합니다. 실제로 기호는 자유롭게 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0과 1은 수학적 연산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덧셈, 곱셈 등 논리 연산을 설계할 때 매우 적합한 기호입니다. 또한 이미 인류에게 익숙한 수 기호이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호환할 수 있는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0과 1은 수학의 기초를 세우고, 인류 문명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