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모두의 자원 '국가 재정'
재원 마련 계획 없이 쏟아지는 공약들
예산 가져간만큼 다른 사람 몫 줄어들어
재정 고갈돼 '공유지 비극' 발생 가능성
나라 살림살이, 17년 연속 적자 기록
재정준칙 도입 등 대안…국회 표류 중
재원 마련 계획 없이 쏟아지는 공약들
예산 가져간만큼 다른 사람 몫 줄어들어
재정 고갈돼 '공유지 비극' 발생 가능성
나라 살림살이, 17년 연속 적자 기록
재정준칙 도입 등 대안…국회 표류 중
![[경제야 놀자] 兆단위 공약들, 국가재정 '공유지 비극' 만든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505/AA.40423392.1.jpg)
국가 재정도 이런 성격을 띤다. 국민이라면 누구든 복지를 비롯해 정부 예산으로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즉 배제성이 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예산을 가져가는 만큼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는 돈은 줄어든다. 경합성이 있다.
공유 자원을 잘 관리하면 여러 사람이 오래도록 편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공동체의 미래보다 눈앞의 사익을 챙기는 것이 인간 본성이다. 내가 아껴봤자 남이 다 써 버리면 나만 손해다. 그러느니 내가 먼저 쓰는 것이 낫다. 그렇게 너도나도 쓰다 보면 공유 자원은 고갈되고 만다. 자연환경이 훼손되는 것, 공중화장실이 지저분해지는 것, 공공 기물이 쉽게 파손되는 것 등이 공유지의 비극 사례다. 정치인과 국민의 합작품국가 재정이 점점 공유지의 비극을 향해 가고 있다는 징후가 뚜렷하다. 정부 재정수지는 2008년부터 작년까지 17년 연속 적자를 냈다. 적자 규모도 커져 2020년, 2022년, 2024년엔 각각 100조원이 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5%를 넘나든다. 매년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으니 빚이 쌓여간다. 작년 말 기준 국가채무는 1175조2000억원, 국민 1인당 2300만원이다.
대선 주자들이 대규모 예산이 필요한 공약을 내놓는 것은 재정이 공유 자원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정부 예산을 아끼겠다는 공약은 어차피 인기가 없다. 상대 후보가 돈을 쓰겠다는 공약을 내세워서 표를 얻고 당선되면 자기만 손해다. 임기 5년만 넘기면 부담과 부작용은 다음 정권 몫이 된다. 그러니 먼저 쓰는 사람이 임자라는 식의 공약이 나온다.
국민도 공범이다. 혜택은 지금 누리고 비용은 다음 세대에 전가하는 정책에 찬성표를 던진다.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30%가 넘고,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세금 부담이 집중된 구조도 이런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
재정이라는 공유지의 풀을 잘 가꾸겠다는 사람은 안 보인다. 정치인들이 표가 떨어질 증세를 공약할 리가 없다. 곳간의 쌀을 꺼내 먹기만 하고 채워 넣지 않는다면 국가 재정은 공유지의 비극을 피할 길이 없다. 주인 없는 민주주의의 한계공유지의 비극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직접적 규제를 가하는 방법이 있다. 이를테면 재정준칙을 법제화해 재정적자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고, 그 수준을 초과할 경우 일정 규모의 국가채무는 반드시 갚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재정준칙 도입을 위한 국회 논의는 답보 상태다.
200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은 공동체 구성원의 합의와 이해관계자들의 조정을 통해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대립과 진영 간 갈등이 극에 이른 한국 사회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해결책이다. 또 한 가지 방법은 공유지를 사유화하는 것이다. 공유 자원이 사유 재산이 되면 아끼고 관리할 유인이 생긴다. 다만 국가 재정을 어느 누구의 사유 재산으로 할 수는 없다는 문제가 있다.
어쩌면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약점인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이 나라의 소유권을 나눠 갖는 정치 체제다. 나라 자체가 공유 자원인 셈이다.
이미 24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재산은 잘 간수하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 재정이 그렇다. NIE 포인트

2. 국가재정이 ‘공유지의 비극’으로 향해가는 이유는?
3. 공유지의 비극을 막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