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와 법무부가 최저임금 미적용 ‘외국인 가사사용인’ 시범 사업을 준비 중이다. 국내에 체류할 수 있는 비자를 보유한 외국인과 아이가 있는 가정을 연결, 중산층 가구의 양육 부담을 줄여주는 사업이다. 서울시는 시범 사업 참여를 원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5월까지 교육을 진행하고 6월부터 이들을 희망 가정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번에 모집하는 가사사용인은 서울시가 앞서 운영을 시작한 ‘필리핀 가사관리사’와 달리 최저임금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가사사용인이 개별 가구와 사적 계약을 맺는 구조여서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강남 이모님’으로 불렸다. 인건비가 비싸 부유한 가정이 아니면 활용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가사사용인’ 제도를 별도로 마련한 이유도 이런 지적을 고려한 것이다. [찬성] 저출산 위기로 국가 소멸할 수도…외국인 최저임금 챙길 때 아냐 2024년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15~49세 사이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은 0.75명이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국가가 소멸할 수 있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의 부담 줄이기가 정부의 핵심 과제로 부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양육이 쉬워지면 출산을 결심하는 부부가 늘어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외국인 가사관리사 '최저임금 예외' 둬야 하나
싱가포르, 홍콩 등은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인 이모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는 매달 60만원 안팎의 급여를 받는다. 이 나라엔 최저임금제도가 없다. 홍콩은 입주형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별도의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데 월 80만원 정도가 하한선이다.

한국은 싱가포르나 홍콩 등과 사정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국제노동기구(ILO) 가입국이다. 국적에 따라 임금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협약을 지켜야 한다. 근로기준법도 국적을 기준으로 대우를 달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 안팎의 비용을 지급하는 필리핀 이모님, 최저임금 예외 적용을 받는 주한 외국인 가사사용인 등이 육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비싼 시급, 제한된 인력 수요 등 한계가 뚜렷하다. 문제를 풀려면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국적에 따른 임금차별을 금지하는 ILO의 111호 협약을 탈퇴하는 것을 고려해볼 만하다. 국제기구의 자율 규범은 점점 구속력을 잃어가고 있다. 주요 선진국도 자국의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하면 주저 없이 협약을 탈퇴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약속인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골자로 한 행정명령에 취임 첫날 서명한 것이 단적인 예다. 국내법과 제도도 손볼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국적뿐 아니라 업종이나 지역에 따른 최저임금 차등화도 추진해야 한다. [반대] 정부가 법의 사각지대 키우는 꼴, 인권침해 우려…ILO 협약도 위배최저임금을 적용받지 않는 외국인 가사사용인 시범 사업은 꼼수다. ‘예외’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을 최소화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데, 거꾸로 이를 장려하는 정책을 펴고 있어서다. 정부가 앞장서서 법의 사각지대를 키우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가사 노동자의 법적 보호를 확대할 것을 권고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가사 노동이 이뤄지는 가정은 사적 공간으로 분류돼 근로감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동착취나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해도 외부에서 이를 파악하기 어렵다. 노동계가 이번 시범 사업에 집단으로 반발하는 배경이다. 가사사용인을 쓰는 가정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앞서 시범 사업이 시작된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정부가 범죄 경력, 돌봄 자격증 보유 여부 등을 검증했지만 가사사용인은 다르다. 각 가정이 개별적으로 계약하기 때문에 아이 돌봄에 얼마나 전문성이 있는지를 사전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시범 사업의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이 사업이 성공하려면 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급을 받으면서 열심히 일할 외국인 인력이 충분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시범 사업 대상으로 분류된 비자 소지자들은 편의점이나 식당 등에서도 일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 굳이 가사사용인 사업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사업을 신청한 곳은 세 곳이다. 이중 전라북도는 이미 사업성 부족을 이유로 내세우며 사업 참여를 철회했다. 서울과 경상남도 역시 참여 신청자가 적어 골머리를 앓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인 돌봄 인력은 육아 부담을 덜어줄 대안이 아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공 돌봄 시설을 확대하고, 저소득층에 돌봄 비용을 지원하는 등 정공법으로 육아 부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 √ 생각하기 - 공공 보육 인프라 늘리고 최저임금 차별화 검토를 출산율 제고를 위해 국가가 가정의 양육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주장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홍콩이나 대만처럼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인을 활용하는 대안도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공 보육 인프라를 늘리고,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주는 등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행복하다는 사회적 인식을 확산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외국인 가사관리사 '최저임금 예외' 둬야 하나
한국에선 금기처럼 여겨온 최저임금 차별화에 대해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육아를 도와주는 외국인에게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주는 게 부당하다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현지에서 받는 급여가 30만원 안팎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노동착취로 보기는 어렵다. 국적만으로 최저임금을 차별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지역이나 업종 등 다른 기준까지 감안해 단계적으로 제도를 바꾸는 실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송형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