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사즉생(死卽生)’으로 쓰지만, 이는 ‘사즉생(死則生)’을 잘못 쓴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에서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즉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으리라”라고 한 데서 따온 말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의외로 이 말의 정체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부분 ‘사즉생(死卽生)’으로 쓰지만, 이는 ‘사즉생(死則生)’을 잘못 쓴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에서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즉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으리라”라고 한 데서 따온 말이다. 이를 줄인 게 ‘사즉생 생즉사(死則生 生則死)’다. ‘필사(必死)’는 “죽을힘을 다함”이다. 그래서 ‘필사적’이라고 하면 “죽음을 각오할 정도로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원전이 있는 말이라 원전 그대로 써야 한다.
이 표현은 이순신 장군이 만든 것이 아니라 오기(吳起)의 병법서 <오자(吳子)>가 원전이다. 중국 전국시대 병법가인 오기는 <오자>에서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則生 幸生則死)’라고 했다. ‘반드시 죽기로 각오하면 살 것이요, 요행히 살려고 한다면 죽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이것을 이순신이 약간 변형해 자신의 방식으로 쓴 것이 ‘필사즉생 필생즉사’다.
‘則’은 우리말에서 ‘곧 즉’과 ‘법칙 칙’ 두 가지로 읽힌다. 하지만 주로 ‘법칙 칙’으로 알려져 있다. ‘원칙(原則), 규칙(規則), 벌칙(罰則)’ 등이 다 ‘칙’으로 읽는 말이다. 이에 비해 則을 ‘즉’으로 쓰는 용례는 그리 많지 않다. ‘사즉생’에서처럼 어조사로 쓸 때 ‘즉’으로 읽는다. 이는 ‘~한즉’이란 뜻으로, ‘만약 ~하면 ~한다’로 새긴다. 사즉생 말고는 ‘궁즉통(窮則通)’이 비교적 널리 알려진 말이다. ‘궁하면 곧 통한다’, 즉 극단의 상황에 이르면 되레 해결할 방법이 생긴다는 뜻이다. ‘궁즉변 변즉통(窮則變 變則通)’의 줄임말로, 이때도 則을 썼다. ‘난중일기’에서 유래…원전대로 써야우리말에서 ‘곧, 즉시, 바로’라는 뜻의 말로는 ‘즉(卽)’이 좀 더 익숙하다. ‘則’과 함께 뜻풀이는 같지만, 용법이 좀 다르다. ‘~이 바로 ~이다’로 새긴다. 불교에서 말하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에 이 ‘卽’이 쓰였다. ‘색이 곧 공이요, 공이 즉 색이다’라는 의미로, 색과 공이 본래 한가지임을 말한다.
우리말에서는 ‘곧 즉’으로 사용한 則의 용례가 많지 않은 데 비해 卽은 ‘즉(卽, 다시 말해), 즉시(卽時), 즉각(卽刻), 즉사(卽死), 즉결처분(卽決處分), 즉흥적(卽興的)’ 등 수많은 단어를 만들어냈다. 그만큼 ‘즉’ 자 하면 ‘卽’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이순신의 ‘사즉생(死則生)’이 ‘사즉생(死卽生)’으로 와전된 데는 우리말 용법의 이런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