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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배우자와 자녀가 각자 물려받은 유산만큼 세금을 내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상속세를 개편해 2028년부터 시행하겠다고 지난 12일 밝혔습니다. 유산 전체에 대해 매겨진 세금을 유족이 나눠 내는 현행 유산세 방식을 도입 75년 만에 바꾸려는 시도입니다. 여당은 당정 협의에서 의견을 같이했지만,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부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개편이라며 찬성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상속세를 계산할 때 재산의 일부(5억원)을 빼주는 공제 한도를 높이고 배우자가 내는 상속세는 폐지하는 쪽으로 수용하겠다고 합니다. 부부가 함께 일군 재산에 세금을 붙이는 것은 부의 세대 이전에 세금을 물리는 상속세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상속세 문제가 항상 큰 논란을 빚는 것은 상속세만큼 ‘무엇이 정의인가’를 묻는 세금이 없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배우자 상속세 폐지는 ‘정의롭다’고 본 반면, 유산취득세 변경이나 최고세율 인하 등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상속세 자체는 정의로운 것인지, 관련한 철학적 논쟁은 어떠했는지, 시장경제 원칙에는 맞는지 등을 4·5면에서 공부해보겠습니다. 상속세 처음 도입한 로마도 가족은 예외
평등 목적으로 세금 매기는 건 근대의 산물

퇴직 군인 위해 상속세 거둔 로마
군 전력의 핵심은 군인들의 충성심이겠죠? 로마 시민들로 군을 조직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여기에 더해 군인들이 20년에 이르는 장기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퇴직할 때는 두둑한 퇴직금을 쥐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재원이었습니다. 부강한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 시대)에도 특별한 세금 부과가 필요했지요. 그래서 아우구스투스가 도입한 게 바로 상속세입니다. 로마는 6촌 이내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유산을 상속할 경우 20분의 1에 해당하는 세금을 매겼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본토에서 부과된 세금은 노예와 경매 물품에 매긴 거래세와 함께 상속세가 주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6촌 이내 가족에겐 왜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았을까요? 로마에선 ‘가족’과 ‘재산’을 하나의 개념으로 봤습니다. 가족을 가리키는 라틴어 ‘파밀리아’는 로마법상의 ‘재산’과 같은 뜻이었죠. 가족 소유의 재산은 중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가족에게서 분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6촌 이내)에겐 상속세를 매기지 않은 겁니다.
“부의 세습은 위험” 혁명의 교훈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상속세라는 명목의 세금은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중세엔 모든 땅이 봉건영주의 소유였습니다. 일반인에겐 상속할 땅 자체가 없었죠. ‘경작권’이란 권리를 자손에게 넘겨줄 때 영주에게 세금을 바치곤 하는 경우가 전부였습니다. 근대국가의 상속세는 영국이 처음으로 도입합니다. 프랑스혁명(1789년)의 참상을 본 영국인들이 계급 갈등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됐고, 부(富)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1796년부터 상속 재산에 세금을 붙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프랑스에선 상속세보다 상속 방식이 더 관심이었습니다. 빈부격차가 생기는 건 상류층이 단 한 사람의 상속자에게만 재산을 물려주는 전통 때문이란 인식이 강했죠. 그래서 혁명정부는 1794년 모든 자녀에게 똑같이 상속할 것을 강제합니다. 미국에서도 상속세는 1862년 남북전쟁과 1898년 미국·스페인전쟁 때 비용 마련을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상시적인 세금이 된 것은 소득세와 마찬가지로 20세기 들어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입니다.
가족은 상속을 위해 등장했다?
상속세의 역사를 길게 설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상속 재산에 대해 매기는 세금이 처음부터 명백한 세금 부과의 이유 혹은 명분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란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로마의 상속세가 6촌 밖의 사람들에 대한 상속분에만 매겨진 것을 잘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유주의 사상가인 복거일 작가는 사람이 가장 발전된 종(種)의 자리에 오른 것은 전적으로 ‘가족’ 덕분이라고 강조합니다. 가족을 통해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유전적 및 문화적 자산이 ‘상속’됨으로써 인류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문화적 자산 가운데 가장 핵심을 ‘재산’으로 봅니다. 가족은 상속을 위해 등장했다고까지 설명합니다. 상속세는 이런 가족의 상속 기능을 방해하는 것이고, 인류 문화를 유지하는 데 근본적 위협이 된다고 복 작가는 말합니다. 이는 로마제국이 6촌 이내 가족에겐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은 이유와도 맥락이 닿습니다.
상속세는 20세기 이전까지는 국가 재정의 필요로 만들어진 측면이 많았습니다. 한 사람이 형성한 재산에 대해 살아생전에 각종 세금을 다 내는데, 그 사람 사후에 유족이 재산을 상속받는다고 다시 세금을 매기면 이중과세가 되는 논리적 문제도 있었습니다. 다만, 프랑스혁명 이후 부의 세습 문제에 주목하게 됐고, 좀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출발점을 비슷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확산되면서 상속세가 일반화하게 된 것입니다. NIE 포인트1. 고대 로마의 상속제도가 어떠했는지 파악해보자.
2. 경제에서 상속제도가 왜 중요한지 생각해보자.
3.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주요국의 상속세 제도를 비교해보자. 결국 '정의론'으로 모아지는 상속세 논쟁
시장경제원칙에 맞는지 놓고 의견 '분분'

정의론으로 따져본 상속세
흔히 ‘정의론(正義論)’을 얘기할 땐 철학자 존 롤스와 로버트 노직의 논쟁을 떠올립니다. 롤스는 위의 언급처럼 “축적된 부(富)를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것은 정의에 반한다”고 했습니다. 초기 조건의 차이는 기회의 평등에 어긋난다고 본 거죠. 그럼에도 부의 상속을 허용하려면 가장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의 상황을 개선해주는 방향으로 세금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회적 불평등은 용납해선 안 된다고 합니다. 이를 정의론의 관점에서 ‘분배적 정의’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로버트 노직은 부가 생성되는 과정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먼저 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른바 ‘소유권적 정의’입니다. 부는 신체의 자유를 지닌 사람이 그 신체를 기초로 노동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만들어진 부의 소유권과 처분권은 오로지 생산자 자신에게 있고, 국가라 하더라도 강제로 이를 배분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런 정의론은 많은 사람이 상식으로 받아들인 분배적 정의가 과연 옳은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정의’
근대적 의미의 상속세를 처음 도입·시행한 영국에서 상속세 폐지론이 들끓은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영국은 리시 수낵 전 내각이 지방선거 등 잇단 선거에서 완패하면서 하원을 해산하고 작년 7월 조기총선(당초는 올해 5월)을 치르게 됐습니다. 여기서 노동당이 63%의 의석을 차지하며 승리해 제1당으로 올라섰습니다. 비록 보수당은 선거에 패배했지만, 영국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기 위해 상속세 폐지가 시급하다는 보수당의 공약은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당시 영국 언론은 “열심히 일한 결실이 후손에 물려줄 때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게 공정성 원칙에 부합한다”는 논평을 내기도 했습니다. “자산을 해외로 빼돌릴 수 있는 부자들은 손쉽게 상속세를 피하지만, 집 한 채가 전 재산인 가정은 꼼짝없이 세금을 낸다”는 지적도 있었어요. 상속세가 영원불멸하는 근거를 지닌 세금은 아니고, 국민적 합의에 따라 언제든 개선될 여지가 있는 부분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상속세 부과가 한 사회의 생존에 꼭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사회구성원들이 ‘그렇다’라고 답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는 겁니다.
시장경제 원칙엔 맞나?
상속세 부과가 시장경제 원칙에 맞는지를 둘러싸고도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먼저 시장에서의 거래는 항상 대가를 주고받는 관계란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속과 증여는 어떨까요? 대가가 있는 행위일까요? 이는 아무런 대가 없이 무상으로 재산을 이전하는 것으로써 ‘불로소득’(노동하지 않고 얻는 소득)이고, 그런 행위는 시장경제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선 상속세 과세라는 국가의 개입이 꼭 필요하다고 결론짓습니다. 반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같은 자유주의 철학자는 이 같은 논리에 반대합니다. 시장에서 결과적으로 분배와 관련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 분배를 주도한 실체가 없기 때문에 정의롭지 못하다고 주장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시장은 자생적인 질서에 따라 운영되고 진화한다며, 분배 문제도 이런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평등은 인류 역사에서 입증된 소중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평등의 이상도 도를 넘어서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자유, 책임, 자율의 가치와 충돌할 수밖에 없지요. ‘기회의 평등’은 그런 관점에서 논의하고 고민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NIE 포인트1. 존 롤스와 로버트 노직의 정의론 논쟁에 대해 더 공부해보자.
2. 상속재산이 불로소득에 속하는지 토론해보자.
3. 상속세 취지가 좋더라도 세 부담이 과하면 부작용이 크다. 어떤 부작용이 있을까?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