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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희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이정희 한국경제신문 기자
미국 트럼프 정부의 중재로 중동과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총성이 멎을지 주목됩니다. 전쟁의 시대가 가고 평화의 시대가 올지 궁금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방위산업, ‘K-방산’의 진격엔 거침이 없습니다. 잊을 만하면 세계 각국이 우리나라 첨단 무기를 사들인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국내 주요 7개 방산 기업의 수주 잔액이 사상 처음 100조원을 돌파했다는 뉴스도 나왔습니다. 만들기도 전에 다 팔려나가면서 3년 치 일감이 꽉 찼다는군요. 평화의 봄바람 앞에서도 세계 각국은 전쟁을 막기 위한 방위력 증강에 앞다퉈 나서는 다소 역설적 상황입니다.

K-방산의 주력 제품은 전차·미사일·전투기 등 육해공을 넘나들고 유럽에서 중동·동남아·미국 등으로 수출 영토를 넓힙니다. 중국에 다 빼앗길 것으로 예상되던 조선산업이 군함 건조에 협력이 필요하다는 미국 측의 언급에 따라 K-방산의 핵심 산업으로 뜨고 있습니다. 해외 언론의 관심도 뜨겁습니다. 미국 CNN은 “한국이 방위산업의 메이저리거가 되고 있다”, 미국 <포브스>는 “한국이 조용히 세계 최대 무기 공급 국가 중 하나가 됐다”고 전했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K-방산의 황금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산업 발전에서 K-방산의 진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방산이 수출산업으로서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중국 추격, 관세 전쟁으로 수출 어려움
폭발적 성장세 'K방산'에 거는 기대 커요
한화 제공
한화 제공
한국 방위산업의 성장은 한국 산업의 발전사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K-방산의 진면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산업, 특히 수출산업은 1960년대 가발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1970년대엔 신발·섬유·철강, 1980년대 들어선 자동차·가전제품으로 부가가치를 높였죠. 이어 1990년대엔 반도체, 2000년대 선박, 2010년대엔 석유화학제품과 스마트폰으로 수출 주력 품목이 바뀌어왔습니다. 전통적으로 철강·조선·자동차·반도체·정보통신 등 산업이 우리나라를 세계 10위 경제 규모로 키워낸 일등 공신입니다. 202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수출 품목 가운데 전기·전자 제품이 27.1%(반도체 15.6% 포함), 자동차 14.5%, 기계·컴퓨터가 11.5%를 점했습니다. 이들 상위 3개 품목이 전체 수출액의 절반 이상(53.2%)을 차지한 거죠. 다음으로 석유·석탄 8.6%, 플라스틱 등 석유화학제품 5.6% 순이었습니다. 물론 최근엔 K-팝, K-무비로 대표되는 콘텐츠 산업도 가세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성장산업 필요

그사이 우리 경제는 수출보다 내수가 성장을 이끌어가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예전엔 수출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았고, 내수 신장률은 성장률보다 낮았죠. 이게 2010년대 중반부터 반전됩니다. 2015~2019년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연평균 2.8%를 기록한 데 비해 내수시장은 3.4%씩 커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은 내수가 침체를 겪으며 상황이 다시 바뀝니다. 작년 경제성장률 2.0% 가운데 내수 부문의 기여도는 0.2%포인트, 순수출의 기여도는 1.8%포인트로 나타났습니다. 내수시장이 아무리 커져도 경제성장의 중심축으로서 수출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문제는 미국 트럼프 2기 정부의 ‘관세전쟁’이 본격화하면서 한국의 수출에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점입니다. 기존 수출산업의 분발이 필요한데, 중국의 첨단 분야 추격과 우리 기업의 혁신 분위기 저조로 인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성장산업, 수출산업의 발굴이 필요합니다. 흔히 말하는 ‘젊은 피 수혈’이라는 표현이 지금의 우리 산업에 요청되는 거죠. 흔히들 차세대 유망 산업으로 바이오산업 등을 꼽습니다. 방위산업도 빼놓을 수 없는 분야입니다.

K-방산 수출 ‘세계 8위’

방위산업이란 나라를 지키는 데 쓰이는 군사 장비와 군수 물품을 생산하는 산업을 말합니다. 전차·전투기·전투함·미사일·군사위성 등이 대표적이죠. 이는 비록 인명 살상용 군사 장비지만, 평화를 지키는 최선의 방책은 대응능력을 갖추는 것이란 점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힘의 균형이야말로 현실에서 평화를 보장해주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우크라이나 같은 나라가 강대국 러시아에 희생당한 사례에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국방력 강화는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는, 반드시 필요한 투자입니다. 더군다나 최근 국제정세는 힘의 논리가 더욱 커져가고 있고, 전쟁 발발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독일이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으로 증액한다고 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도 2% 이상으로 늘린다는 방침입니다. 방위산업야말로 새로운 성장산업이라 할 수 있죠.

우리나라 방산은 최근 10여 년 사이에 크게 발전했습니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12~2016년 우리나라가 수출한 무기는 세계시장의 1.0%를 점했습니다. 이게 2017~2021년엔 2.8%까지 높아졌습니다. 방산 수출액은 연간 20억~30억 달러에 머물다가 2021년 73억 달러, 2022년엔 173억 달러로 급증했죠. 당시 우리나라 총수출액의 2.5%를 점하며 비중이 커졌어요. 세계 방산 수출 8위권 규모입니다.

아시아, 북미 지역 중심이던 우리나라 방산의 수출시장도 최근 유럽과 중동, 중남미, 호주, 아프리카 등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수출 품목도 탄약과 함정 중심에서 전투기·자주포·미사일 등으로 다양해졌습니다. 미국 상원은 외국 기업이 미국의 군함을 건조·수리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발의해 한미 간 방산 협력도 가시화되고 있습니다.NIE 포인트1. 우리나라 수출품의 산업별 비중이 어떤지 구체적으로 확인해보자.

2. 국방과학연구소(ADD)가 K-방산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한다. 그 과정을 알아보자.

3. 향후 세계 방산 시장 규모에 관한 전망 자료를 찾아보자.첨단 방산 기술, 전·후방 산업에 큰 영향
성능 탁월, 가격은 절반…세계가 놀랐죠
육군 제공
육군 제공
방위산업(방산)의 중요성은 산업 자체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먼저 현대의 군사 무기는 갈수록 전자 장비화하고 있어 첨단기술이 필수입니다. 한 나라의 제조 및 첨단 기술이 총집약된 것이 방위산업 생산품이라 볼 수 있죠. 이렇게 개발된 방산 기술은 각종 산업의 원천기술로 쓰입니다. 미사일 제조 기술이 우주산업의 발전을 돕는 식이죠.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드론, 로봇 산업도 방산과의 연계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방산은 첨단기술의 원천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방위산업은 전·후방산업에 미치는 효과가 큽니다. 전·후방산업의 개념을 잠깐 볼까요? 전방산업은 원료에서 최종 생산물로 이어지는 산업의 가치사슬(밸류체인)에서 해당 산업의 앞쪽에 위치한 업종을 말합니다. 자기 회사를 중심으로 최종 소비자와 가까운 업종이 전방산업이죠. 그리고 원재료나 제품 소재를 공급하는 쪽을 후방산업이라 부릅니다. 기업이 소비자를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 삼으면 헷갈리지 않죠.

전·후방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 산업의 취업·생산유발배수에서 알 수 있습니다. 방위산업이 200억 달러어치를 수출하면 전·후방산업에서 고용이 20만 명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생산유발배수란 최종 수요가 한 단위 발생할 때 이를 충족하기 위해 해당 산업에서 직간접적으로 유발되는 생산액을 말합니다. 방산의 생산유발배수는 2.3배로, 일반 제조업(2.1배)보다 높습니다. 정부가 국방비 1000억원을 지출(정부 수요)할 때 2300억원의 생산유발효과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다음으로 방위산업은 지속적인 사후관리가 필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투기의 경우, 30~40년 사용하는 기간 동안 무기 운용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부품 교체와 정비를 꾸준히 해야 합니다. 수출국에선 그만큼의 추가적 수출이 발생하는 거죠.

가성비에 세계가 ‘엄지 척’

다음으로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경쟁력은 어디서 오는지 볼까요? 우리나라는 방위산업이 발전할 기본적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남북 군사 대결로 인해 자주국방이 중요했고, 정부는 국방과학연구소 등을 설립해 고도화된 무기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1970년대 초 주한미군 2만 명 철수도 자극제가 됐습니다. 이때부터 중화학공업을 집중 육성했는데, 이는 중화기 생산을 위한 목적이기도 했습니다. 1990년 우리나라가 구소련에 빌려준 경제협력 차관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자, 그 일부를 러시아산 무기로 대신 받은 일명 ‘불곰 사업’이 있었습니다. 이게 최신 방위산업 기술을 확보하는 데 큰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구체적인 경쟁력 요소로는 먼저 ‘가성비 최고’를 꼽을 수 있습니다. K-방산은 탁월한 성능에 합리적인 가격이 장점임을 국제적으로 평가받았습니다. 평지와 산악을 고루 갖춘 우리나라에서 평소 강도 높은 군사훈련을 통해 성능이 검증된 영향이 큽니다. 한국 자주포와 전차의 가격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독일 자주포나 전차와 비교해 거의 절반 수준입니다. 이를 통해 한국의 K9 자주포는 세계 자주포 시장의 69%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신속한 공급능력을 들 수 있습니다. 방산의 특성상 주문에서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안보에 문제가 생기면 마냥 기다릴 수 없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는 2022년 7월 폴란드와 K2 전차, K9 자주포 등을 대규모로 계약했는데요, 이 가운데 1차분인 전차 10대와 자주포 28문을 4개월 만에 납품했습니다. 다른 나라 같으면 공급에 수년이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그 바탕엔 한국의 도전적인 기업가정신이 있었습니다. 2023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호주에 장갑차 레드백을 수출할 때도 수주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습니다. 세계시장에선 아직 한화의 인지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화는 호주 현지에서 장갑차를 제조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융통성 있게 현지화 전략을 밀어붙였죠. 호주 정부도 한국의 ‘빨리빨리 정신’에 감동받아 계약했다는 후문입니다. 이러한 도전 의식 덕분에, 1975년 필리핀에 소총 탄약 6억원어치를 판매한 게 첫 방산 수출이었던 나라가 이제 세계 4위권 방산 수출국에 도전하고 있는 겁니다.NIE 포인트1. 방위산업을 통해 개발된 첨단기술에는 어떤 게 있는지 사례를 찾아보자.

2. 방산 수출 대국들의 면면을 확인해보자.

3. 미국이 직접 군함을 제조할 기반이 부족하다고 한다.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