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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전희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전희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우리나라 증권시장에 ‘박스피’(박스권+코스피)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략 2012년부터 5년간 종합주가지수(코스피지수)가 1760~2160 박스권에서 움직일 때였죠. 선진국 주가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쭉쭉 오른 반면, 한국 주식시장만 다람쥐 쳇바퀴 돌 듯했습니다. 코스피지수가 박스권 상단을 뚫고 2021년 3316까지 올랐을 때 드디어 한국 증시도 선진 시장이 되는가 싶었죠. 그러나 2022년 중반까지 주가지수가 미끄러지며 분위기는 다시 싸늘해졌습니다. 외국인은 단기투자에 열을 올리고 기관들은 공매도만 일삼는 세력으로 인식되면서 개인투자자(개미)들이 한국 증시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증시를 참고만 하던 개미들이 직접 미국 주식을 매매하는 바람이 불었어요. 현재 미국 주식시장에 투자한 한국인 투자자금이 무려 142조원에 달합니다.

최근의 결정타는 ‘트럼프 트레이드’(트럼프 정책에 따른 산업 영향)로 외국인 자금이 한국에서 썰물처럼 빠지면서 코스피, 코스닥 모두 무너졌습니다. 글로벌 증시는 상승세를 이어가는데 한국 증시만 ‘나 홀로 약세’입니다. 물론 거시경제적 이유와 산업구조적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살 만한(매력적인) 주식이 없다”는 회복 불능 선고가 투자자들로부터 내려지고 있어요. 투자자들의 신뢰 상실이 원인이라면 큰 문제입니다. 한국 증시의 구원 투수(해법)는 어디에 있는지, 자본시장이 경제에서 왜 중요한지 등을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한국서 돈 빼는 외국인, 헐값 된 주식
"투자자 무시한다" 불신이 문제 키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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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권시장은 미국 증시가 폭락한 지난 8월 5일 이후 무기력증에 빠진 듯합니다. 미국 기준금리가 기대만큼 내리지 않을 것이란 우려로 미국 증시가 출렁였는데, 한국 증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죠. 올해 중반까지 26조원 넘게 주식을 순매수한 외국인이 이후 지난 26일까지는 20조원가량 순매도하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 자국 산업 보호와 관세 상승으로 한국 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이를 부추겼습니다. 미국 대선이 있던 지난 5일 이후 26일까지 코스피지수는 2.19%, 코스닥지수는 7.8% 떨어졌습니다. 반면 미국 나스닥지수는 25일까지 4.5% 올랐고, 일본 닛케이지수 등도 함께 상승했다가 최근 조금 하락한 수준입니다.

장부 가치, 신흥국보다 낮게 평가

한국 증시가 이렇게 낮은 평가를 받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주가수익비율(Price Earnings Ratio, PER)을 보면 단번에 알게 됩니다. PER은 주식가격이 1주당 순이익(순이익/발행 주식 수)의 몇 배가 되느냐를 측정한 건데요, 이게 높으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고 낮으면 매력이 떨어진다는 얘기입니다. 글로벌 평균 PER은 약 18배인 데 반해, 코스피 시장은 지난 22일 8.2배까지 낮아졌죠. 원래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PER 평균은 항상 10배 언저리에 있었습니다. 그만큼 글로벌 투자자로부터 소외됐죠.

기업의 자산가치(Book-value)와 장부가치(주식가격)를 비교하는 주가순자산비율(Price Book-value Ratio, PBR)도 볼까요? 이게 1배가 안 되면 지금 당장 폐업을 하고 가진 자산을 다 팔아도 시가총액보다 많은 현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PBR이 1배가 안 되는 국내 상장사가 전체의 50.9%에 달합니다. 기업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헐값에 거래되고 있다는 뜻이죠. 2014년부터 10년간 우리나라 상장사의 평균 PBR은 1.04배로, 신흥국 평균(1.58배)보다도 낮습니다.

이런 현상은 요즘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북한 리스크 때문에 한국 기업의 주가가 저평가받는 현상을 ‘코리아 디스카운트’라 하는데요. 이제는 한국 증시 전체의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정부는 기업가치 밸류업(value-up) 프로젝트, 금융투자세 폐지 등에 노력하고 있지만, 전혀 약발이 먹히지 않는 모습입니다.

‘투자 이민’ 나선 개미투자자들

한국 증시 소외현상은 상시적 투자자금이 한국에서 떠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 증시에 직접 투자하는 개인투자자, 이른바 ‘서학개미’가 늘어난 영향이 큽니다. 미국 주식을 사들인 서학개미의 자금은 약 142조원으로 불어났고, 한국 증시의 고객예탁금은 49조9000여억원(지난 26일 기준)으로 한 달 전에 비해 5조원이 줄었습니다. 이 정도면 ‘투자 이민’이나 다름없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원인이 있습니다. 먼저 기업이 벌어들인 수익을 주주와 나누는 주주 환원 정책이 활성화하지 않은 점입니다. 순이익 중 주주에게 주는 배당금의 비율을 ‘배당성향’이라고 합니다. 미국 기업의 평균 배당성향은 34.2%인 데 비해, 한국은 작년 17.4%에 불과했습니다. 배당금을 많이 주는 게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도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워낙 배당이 적으니 주주들이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는 겁니다. 기업을 두 개로 쪼개면서 알짜배기 사업을 신생기업에 몰아주는 국내 기업의 행태, 조달한 자금의 효율적 사용이 의심되는 유상증자 등으로 개미들의 한국 상장사 불신은 극에 달했습니다. 소액주주의 권리나 이익엔 신경 안 쓰는 기업 오너를 못 믿겠다며, 그런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한편으론 신흥국도 선진국도 아닌, 어정쩡한 정체성을 지닌 한국 증시의 성격도 있습니다. 세계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때는 선진국 자금이 모두 성장률 높은 신흥국 투자로 나가버리고, 금융위기 가능성이 높아지면 한국을 포함한 비선진국 증시에서 돈을 빼버립니다. 결국 장기 투자자금이 안정적으로 들어오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죠.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에 한국이 편입되어야 선진국의 막대한 펀드 자금이 한국으로 향할 수 있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NIE 포인트1. 주식가격은 기업의 미래가치를 시장이 평가한 결과다. 어떤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

2. PER, PBR 외에 증권시장에서 중요하게 보는 기업의 경영지표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자.

3. 우리나라 기업의 배당성향이 낮은 이유를 공부해보자.증시 활성화는 실물경제 발전에 필수 요소
투자자 '꿈' 갖게하는 기업·정부 노력 중요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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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증권시장이 경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볼까요? 기업은 설립할 때 또는 사업을 확장할 때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방법은 남의 돈을 빌리거나, 회사 주인인 주주로부터 출자받는 겁니다. 각각 부채와 자본금이 늘어나는 방식입니다. 빚보다는 자기 돈이 안정적이고 이자 부담도 적겠지요. 그래서 기업은 증권시장에 상장해 새로운 주주들에게서 투자를 받으려 합니다. 주주에겐 배당받을 권리, 새로운 주식을 받을 권리,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권리 등을 보장해줍니다.

증시는 경제성장의 발판

주식이나 채권이 거래되는 증권시장은 기업 자금 조달의 중요한 원천입니다. 이런 증시가 침체에 빠지면 자본축적과 경제성장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요. 지금이 딱 그런 상황입니다. 최근 한국 증시의 부진으로 상장사 자금 조달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올 들어 지난달 중순까지 유가증권시장(코스피시장) 상장회사가 공시한 유상증자 규모는 약 4조5800억원에 불과합니다. 유상증자란 주식을 추가로 발행하면서 시장가격보다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건데요, 이게 올해는 작년(약 9조4799억원)의 절반 수준에 머무를 전망입니다.

투자와 경제성장의 관계를 살펴보면 증시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생산함수, 즉 Y=f(L, K)를 보면 노동(L)과 자본(K)의 투입에 따라 산출량이 변합니다. 이를 노동량으로 나누면 1인당 생산량(y=Y/L)은 1인당 자본량(k=K/L)이 많아질수록, 즉 자본축적이 증가할수록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한편 투자를 늘리면 저축이 줄기 때문에 소비 여력은 감소합니다. 소비도 경제성장에 중요한 요소이기에 최적의 투자와 소비가 어떤 수준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면 경제는 한정된 자원 안에서 성장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어요. 가계의 주식투자 자금은 저축의 일종입니다. 증권시장이 발전하고 가계의 증권 투자가 늘어나면 증시 규모와 유동성(돈의 양)이 확대됩니다. 이는 기업의 증시 상장을 촉진하고 자본 형성을 증대시켜 실물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증시 매력도 높여 해외 투자금 유치

증권시장은 매일 변화하는 주식가격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런 기업 수천 개가 모여 증시에서 거래되면 주가지수만 보고도 경기가 호황인지 불황인지 알 수 있어요. 한 나라 경제의 활력과 미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지요. 그래서 증시를 ‘경제의 거울’이라고도 합니다.

지금은 금융투자 자본이 24시간 국경 없이 넘나드는 시대입니다. 미국 등 거대 자본시장으로 투자자금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어느 정도 불가피하겠지만, 그럼에도 자기 나라 증권시장을 활성화해야 할 필요성이 큽니다. 먼저 국가 기간산업과 국민 기업을 외국 증시에만 의존하도록 할 순 없겠죠? 신생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기 전, 체력을 기르고 더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자국 내에서 만들어줘야 합니다. 해외투자에 열심인 ‘서학개미’를 비판할 순 없습니다. 돈이 빠져나가는 만큼 해외 투자 자본이 국내에 더 유입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순항하는 글로벌 증시에서 소외돼 있는 한국 증시를 되살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일단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value-up) 프로그램 지원 방안’의 방향은 맞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부 주도로 몇 가지 지원책을 내놓고 관련 주가지수를 산출한다고 해서 기업과 증시의 가치가 쉽사리 높아지긴 힘들다는 점입니다. 기업이 수출 전략을 효과적으로 짜고 신사업 기회를 잘 포착하는 등 이익 증대를 위한 노력을 배가하는 게 먼저죠.

그래서 어떤 기업에 투자하면 수익을 많이 얻을 수 있으리란 꿈을 갖게 해야 합니다. 기업은 배당성향을 높이는 등 주주 친화적 정책을 많이 펼쳐 주주와 함께 성장하겠다는 뜻을 내보일 필요가 있어요. 투자자들의 불신만큼 증시를 위축시키는 건 없습니다. 아울러 공매도나 금융투자세 등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운영하되, 시장을 교란하는 각종 불법행위는 엄단해나가는 금융당국의 의지가 중요합니다.NIE 포인트1. 상장회사가 자본을 확충하는 여러 방법에 대해 공부해보자.

2. 최근의 상장회사 유상증자가 왜 논란이 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3. 공매도나 금융투자세의 시행 원칙은 어떠해야 하는지 토론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