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지난 8월은 밤에도 식지 않는 열기로 사상 최장 기간 열대야가 이어졌습니다. 세계경제는 이와는 반대로 냉탕과 온탕을 오갔는데요, 바짝 긴장한 투자자들이 불면의 밤을 보낸 건 마찬가지였습니다.미국의 물가상승세 둔화로 9월부터 금리인하가 본격화할 것이란 지난 7월 31일의 낙관적 전망은 채 하루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미국의 고용시장 상황이 예상보다 악화됐다는 뉴스에 경기침체 공포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휘감았죠. 이후 미국의 분기 성장률 전망치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고, 물가상승률은 더 진정됐다는 소식에 시장은 다시 안도했습니다.
헷갈리는 경기 전망의 제1라운드는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지난달 23일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에서 “통화정책을 조정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밝히며 해피 엔딩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침체냐, 아니냐’는 경기 논쟁이 막을 내린 것은 아닙니다. 곧 발표될 미국의 8월 고용시장 보고서 내용이 어떨지 모두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세계경제는 침체와 연착륙(소프트랜딩)의 갈림길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경기는 순환하는 게 정상이지만, 가능하면 호황기와 안정적 시기가 오래 지속되기를 많은 사람이 바랍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일상을 좌우할 열쇠를 쥐고 있는 Fed에 초미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죠. 경기를 판단하는 일은 예측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영역입니다.
이를 판단하는 주요 지표는 무엇이며, 요즘 들어 경기 판단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지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헷갈리는 미국 경제, 잠복한 침체 논쟁
경기 판단은 神의 영역…'뒷북' 불가피 요즘 신문에서 ‘R(Recession, 경기침체)의 공포’란 용어를 많이 봤을 겁니다. 세계경제가 침체 조짐을 보이고 주가지수가 크게 떨어지는 상황이면 어김없이 이런 표현이 등장합니다. 지난달 초 미국 실업률이 예상보다 나쁘게 나오면서 세계 주식시장은 ‘블랙 먼데이’(8월 5일 월요일 증시 급락)를 경험했습니다. R의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이 주식을 내다 팔기 바쁜 패닉셀(panic sell)에 나섰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코스피지수도 같은 날 역사상 최대 하루 낙폭을 기록했고요. 그런데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기업이 구인난을 겪을 정도로 경기가 호황이라더니 갑자기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파월의 피벗, 연착륙 이끌까
이는 증시 등 금융시장이 경제지표 하나하나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경제가 상·하방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을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얘기죠. 지난 7월 미국 실업률이 4.3%로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오자, 뉴욕 월가에선 “Fed가 7월에 금리를 내렸어야 했다”는 성토마저 나왔습니다. 지난 1년간 연 5.25~5.50%의 고금리를 유지해온 Fed가 금리정책의 전환(이번엔 인하)을 뜻하는 피벗(pivot)을 이미 시작했어야 했는데, 한발 늦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성장률, 실업수당 청구 건수, 소비자물가지수 등 다른 지표가 나쁘지 않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연착륙(소프트랜딩) 가능성을 자신했어요. 그가 잭슨홀 미팅에서 오는 9월부터 피벗을 시작하고 금리인하 폭도 더 키울 생각이 있음을 시사하자, 시장은 바로 환호하며 안도했습니다.
경기 판단은 태생적으로 ‘뒷북’
경기에 관한 논쟁은 Fed의 금리 결정이 중요해지는 시기에 더욱 뜨거워집니다. 최근엔 Fed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많이 풀린 돈줄을 조이겠다며 2022년 3월 금리인상에 들어가자, 미국 월가의 거물들끼리 “침체가 온다, 아니다”라며 갑론을박을 벌였습니다. 그해 1분기 미국 성장률이 -2%를 기록했기 때문인데요, 결과적으로는 3분기 2.7%, 4분기 2.6%로 경기가 침체 우려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현재의 경기 판단도 예측과 마찬가지로 경기보다 앞서가는 선행지수 등 다양한 참고 지표를 활용합니다. 선행지표는 우리나라에서 10개 정도를 쓰는데 건축허가 면적, 총유동성(M3), 기계 수주액, 은행 대출금, 코스피지수, 순상품교역조건, 소비자기대지수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 가중치를 부여해 선행지수를 뽑으면 6개월 뒤 경기를 전망해볼 수 있습니다. 이때 지수 절대치보다 지수의 전년 동월 대비 증감률이 중요합니다. 이게 올라가면 경기상승, 내려가면 경기하강 신호로 볼 수 있죠. 선행지수 전년 동월비가 6개월 연속 하락하면 경기가 침체로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밖에 한국은행 등이 발표하는 설문 방식의 기업경기조사(BSI, 100 이상이면 상승, 미만이면 하강), 장단기 금리차 등도 봅니다. 장기금리가 단기금리 아래로 떨어지거나 그럴 조짐이 나타나면 경기둔화를 예상할 수 있죠.
‘삼의 법칙’ 가장 시차 적어
문제는 경기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입니다. ‘뒷북’을 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는 거죠. 2분기 연속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 ‘기술적 침체’가 시작됐다고 보는 월가의 기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요즘 주목받는 게 ‘삼의 법칙(Sahm rule)’입니다. Fed에서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클로디아 삼이 실업률을 활용해 경기침체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을 2019년에 고안했습니다. 최근 석 달치 실업률 평균이 직전 12개월의 월별 실업률(석 달 평균치) 가운데 낮은 것보다 0.5%포인트 높아지면 경기침체가 시작됐다고 봅니다. 조사부터 발표까지 보름밖에 안 걸리는 실업률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뒷북 가능성을 최대한 줄일 수 있죠. 이 지표에 따르면 현재 미국 경기는 침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삼 본인은 “최근 몇 년간 미국에 이민이 급증해 노동력 구성의 극적 변화가 생겼고, 실업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며 침체 신호로 봐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참 어렵습니다. NIE 포인트1. 경기선행지수 외에 경기동행지수에 대해서도 공부해보자.
2. 경기 판단 또는 예측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근본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3.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기가 어떻게 순환돼왔는지 파악해보자.경제법칙 뒤흔드는 뉴노멀 현상 많아
노동시장 이중구조도 지표 왜곡시키죠 근로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내놓고 기업 등이 이를 수용하는 고용시장은 거시경제의 움직임을 결정짓는 요소입니다. 노동의 수요·공급에 따라 고용과 임금 수준이 신축적으로 정해지는 나라는 경기 침체나 과열 양상을 시장이 어느 정도 자율적으로 조정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노동조합 등이 존재해 임금이 신축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경제가 자연스레 균형점을 찾아가기 어렵습니다.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불가피해지죠. 거시경제를 이해하려면 이런 고용시장 상황을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합니다.
기업의 ‘고용 비축’ 주목
고용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현상이 미국 중앙은행(Fed) 등의 경기 판단을 헷갈리게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아무리 올려도 고용시장의 활황세와 높은 임금 수준이 기대만큼 꺾이지 않은 게 대표적입니다. 그 이유로 먼저 노동력의 과소 공급을 들 수 있습니다. 코로나19의 발발로 생산 시설 등 직장이 폐쇄되고 경기가 급랭하면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는데요. 미국 정부는 이에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을 투입해 현금 지원을 늘립니다. 사람들은 실업으로 인한 소득감소분을 완전히 커버해주진 못해도 상당 부분 정부 지원금으로 팬데믹 시기를 버텼죠. 그 과정에서 여가·가정 등의 중요성을 깨닫고,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서 다시 일을 하기보다 일찍 퇴직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지난주 생글생글 커버에서 언급한 이른바 ‘대퇴직(great resignation)’이 노동력 공급을 줄이고 임금을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도록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다음으로는 여기에 대한 기업의 대응, 즉 ‘고용 비축(labor hoarding)’ 현상입니다. 기업들은 코로나19 이후 대퇴직 트렌드로 인해 노동력 공급이 감소하는 난감한 상황을 맞았죠. 이는 심각한 인력난으로 이어졌고, 경제가 본격적으로 회생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수익 창출 기회를 온전히 살리지 못했습니다. 이 기억 때문에 이후 기업들은 경기가 다소 둔화하더라도 직원들을 해고하기보다 근무시간을 줄이고 고용량은 유지하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이를 두고 고용 비축이라 부르는 겁니다.
경제성장률과 실업률이 서로 역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게 ‘오쿤의 법칙(Okun’s law)’인데요, 이 이론이 고용 비축 현상으로 인해 현실에선 잘 들어맞지 않고 있습니다. 작년 말 오쿤의 법칙을 이용해 미국 실업률 최고치를 측정했을 때 4.5% 정도 나오는데, 실제 경기예측에선 4.1%로 낮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기업들이 각종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양에 비해 근로자를 많이 고용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청년실업의 두 가지 얼굴
우리나라 고용시장에서도 선뜻 이해되지 않는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한국의 실업률은 지난 7월 기준 2.5%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 중인데, 청년층 고용은 정반대 양상을 보입니다. 7월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17만2000명 증가한 반면, 20대 취업자 수는 12만7000명 감소했습니다. 일자리가 없어 “그냥 쉬었다”고 답한 청년층(15~29세)은 1년 전보다 10.4% 늘어난 44만3000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습니다. 이 수치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20년 44만1000명, 2021년 39만9000명보다 많은 수치죠.
물론 국내엔 정확한 구직자 통계가 없어 표본조사에 의존해 실업률을 계산해야 하는 고용 통계조사의 한계가 있는 점, 농림어업 분야의 취업자 비중이 다른 선진국보다 높은 점 등이 실업률을 실제보다 낮추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기업과 조건 좋은 일자리만 찾는 고학력자들의 높은 눈높이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모두가 선호하는 직장에 “못 들어갈 바에야 그냥 쉰다”는 거죠. 대기업이나 일부 고임금 공기업 같은 일자리에만 청년들이 몰리고, 중소기업은 구인난을 겪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도 이런 현상의 원인이 되는 겁니다. 우리 사회 한편에선 주당 36시간 미만 일하는 근로자가 지난 7월 680만9000명으로 1년 전보다 35만 명가량 늘어났습니다.
정규직 일자리가 없어 이렇게 단시간 일하는 사람들이 이른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단기 임시·계약직 고용 방식)’를 만들고 있는데, 부모에 기댄 일부 청년은 그냥 쉬는 안타까운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NIE 포인트1. 오쿤의 법칙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살펴보자.
2. 변화된 경제 환경이 경제법칙을 바꾸고 있는 사례를 찾아보자.
3. 우리나라 실업률이 외국보다 낮게 나오는 이유를 알아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