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차인표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미드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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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2009년에 출간한 <잘가요, 언덕>의 개정 증보판이다. 2021년에 선보인 개정 증보판이 최근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필수 도서로 선정되면서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진입했다.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아픈 민족사의 상처 보듬는 가슴시린 이야기
작가가 배우 차인표라는 점도 주목받는 요소 중 하나다. ‘배우가 쓴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새 ‘소설가 차인표’를 만나게 된다. 저자가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에서부터 감동이 피어오른다. 1994년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후 바쁘게 활동하던 그는 뉴스에서 ‘훈 할머니’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열여섯 살에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징용되어 캄보디아로 끌려갔다가 1997년 잠시 한국에 온 훈 할머니를 본 저자는 힘든 시절을 버텨낸 어르신들의 삶을 소설에 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미국 럿거스 뉴저지 주립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에 독서광인 그는 곧바로 A4 용지 20장 분량의 초고를 완성했다. 애석하게도 노트북에 저장한 글이 날아가면서 소설 완성에 대한 꿈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러다 2001년 한국에 정착하지 못한 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본 저자는 소설을 다시 쓰기로 결심하고 2006년 소설의 무대인 백두산을 방문한다. 이후 다양한 취재를 하고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는 등 단단히 준비했다.

그리고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친 소설이 2009년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마음에 품은 이야기를 무려 11년 만에 펴냈고, 책을 낸 지 15년 만에 옥스퍼드 대학교 아시아 중동학부 한국학과 교재가 되었다.

“내 속에 소설 몇 권이 들어 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마음의 글을 풀어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꼭 해야 할 이야기’를 품고 있다가 세상에 내놓아 세계인이 같이 읽게 되었다는 점에서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순이와 용이가 찾는 엄마별<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아름다우면서 가슴 시리고, 슬프지만 깊은 감동을 안기는 소설이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백두산 기슭의 호랑이 마을에 사는 촌장 할아버지 손녀 순이, 엄마와 여동생을 물고 달아난 백호를 찾아다니는 황포수의 아들 용이가 주인공이다. 할아버지를 모시면서 잠시 묵었던 부부가 놓고 간 아기 샘물이까지 돌보는 착하고 예쁜 순이는 하늘의 엄마별에게 고달픈 마음을 터놓는 것이 유일한 안식이다. 태어나자마자 산하를 누비며 강하게 자란 용이에게 순이가 엄마별 얘기를 하지만 용이는 수많은 별 속에서 엄마별을 찾지 못한다.

깊은 산골이어서 일본의 횡포가 미치지 못했던 호랑이 마을에 일본군이 밀어닥친다. 다행히 점잖고 신사적인 가즈오가 마을을 담당해 일본군과 주민이 화합하며 지낸다. 얼마 안 가 동원령이 내리고 일본군 위안부로 갈 처녀 1명을 차출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 순이가 끌려가서 임시 숙소에 머물고 있을 때 용이는 용이대로 가즈오는 가즈오대로 순이를 구하러 나선다.

우리나라를 점령한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나라를 침략했다. 침략당한 국가의 국민이 참혹한 일을 당한 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 과정에서 일본 청년들도 국가의 명령으로 전쟁에 동원되어 죽음에 내몰리고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했다. ‘쑤니 할머니’로 돌아온 순이전쟁에 염증을 느낀 가즈오는 조선의 착한 여인을 결코 위안부로 보낼 수 없다는 각오로 순이 구하기에 나선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우리의 아픈 역사와 함께 일본 청년의 고뇌까지 담아 더 큰 울림을 준다. 용이와 가즈오가 온갖 어려움을 뚫고 노력했음에도 순이는 결국 일본군에게 끌려가고 만다.

소설은 70년 만에 필리핀의 작은 섬에서 발견된 ‘쑤니 할머니’가 대한민국에 오는 것으로 끝난다. 소녀 순이가 위안부가 되어 어떤 치욕을 당했는지, 전쟁이 끝난 후 필리핀에 남아 어떤 고생을 했는지, 기술하지 않지만 그 공백이 독자들의 마음을 더욱 서늘하게 만든다.

이근미 작가
이근미 작가
외롭고 힘든 소년 소녀, 용이와 순이가 함께 엄마별을 찾고 싶은 작은 꿈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장면을 통해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그 어떤 책보다 묵직한 의미를 전한다. 책을 덮을 때면 차인표 작가가 기획 집필 중이라는 ‘구전설화와 역사적 사실을 바탕에 둔 한국형 판타지 시리즈’를 더욱 기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