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민족을 정의하는 것들

인종은 생물학적, 민족은 문화·관습적 분류
몽골 살던 튀르크인들, 아랍·유럽인과 섞여
언어·종교가 같아 서로 같은 민족이라 여겨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 직계는 '세파르딤'
나치에 학살당한 유대인은 '아슈케나짐'
아프리카 뿌리 흑인 '팔라샤'도 유대민족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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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유난히 단일민족이라는 말에 집착한다. 단일민족은 한 국가의 국민이 단일한 민족으로 구성된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단일민족일까. 한국인의 얼굴은 남방계와 북방계의 특징이 또렷하다. 어떤 각도로 봐도 배우 장동건과 연예인 강호동이 같은 민족이라고 하기에는 난처하다. 현대에 들어와 생긴 현상이 아니다. 조선시대 오성 이항복의 초상화를 보면 눈이 크고 입술은 두툼한 데다 얼굴에는 살점이 많다. 남방계다. 경술국치 때 자결한 매천 황현은 눈이 옆으로 쪽 찢어진 전형적인 북방계다. 그럼 우리는 단일민족이 아닌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단일민족이 맞다. 헛갈리는 이유는 인종과 민족을 구분하지 않아서다. ‘인종’은 유전적이고 생물학적인 특징에 따른 분류다. 언어, 문화, 관습 등 사회적 특징에 따라 분류한 것이 ‘민족’이다.

한 지역에서 꾸준히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인종적 특징이 있다. 다만 내내 정주민이었는지 아니면 이동한 끝에 그 땅에 정착했는지에 따라 사정은 달라진다. 가령 튀르키예 사람들은 외모가 제각각이다. 몽골 고원과 중앙아시아에 분포하던 튀르크(돌궐)인이 오랜 시간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이란인, 아랍인 그리고 유럽인과 섞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연히 서로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언어, 관습 그리고 무엇보다 종교가 같기 때문인데 아무리 그렇다지만 이방인의 눈에 어색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스탄불 호텔 프런트데스크에서 업무를 보던 여성은 하얀 유럽인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튀르키예 친구는 가무잡잡한 아랍인이었다.

튀르키예인만큼이나 색상(色相)적으로 알록달록한 민족이 이스라엘의 유대인이다. 유대인의 조상은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분명 중동 사람인데, 사진이나 영화 속 유대인을 보면 유럽인이 대부분이다. 1800년이나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것이 단지 그 이유일까. 유대인은 혈통을 매우 중시한다. 선택받은 민족이기에 아무 민족하고나 섞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유대인의 외모가 유럽인과 같은 데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유대인은 크게 셋으로 분류한다. 아슈케나짐, 세파르딤 그리고 팔라샤다. 대략 1200만 명 정도로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아슈케나짐의 혈통적 조상은 아브라함이 아니다. 이들은 8세기 후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자리하던 카자르 왕국의 후손이다. 9세기경 카자르 왕은 유대교를 국교로 지정하고 백성들을 모조리 유대교로 개종시켰는데, 이슬람교를 받아들이자니 교리상 칼리파를 섬겨야 하고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자니 로마 황제나 교황의 발밑을 자청하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카자르 왕국은 10세기 말 슬라브족의 침략으로 해체된다. 이어 몽골이 유럽으로 진격하자 이 지역의 카자르인들은 폴란드, 독일, 프랑스와 동유럽으로 이주한다. 그러니까 이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고 당연히 이집트에서 탈출하거나 신바빌로니아로 끌려간 적도 없으며 로마와 맞붙은 적은 더더욱 없는, 종교만 유대교인 사람들인 것이다. 이들의 고난은 따로 있었다. 나치 치하에서 가스실로 끌려간 600만 명의 유대인이 바로 이 아슈케나짐이다.

아브라함의 진짜 직계는 50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세파르딤이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것도, 신바빌로니아에 끌려갔던 것도, 그리고 로마에 반기를 들었다가 난민 신세가 된 것도 이들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다는 이유로 기독교인에게 핍박받은 세파르딤에게 이슬람은 구세주나 다름없었다(혈통상 동족이기도 하고). 그리하여 이들은 이슬람의 진격 경로를 따라 에스파냐로 이동했는데 15세기 가톨릭교도들의 국토회복운동으로 이슬람이 패퇴하자 아프리카, 네덜란드, 영국 등지로 흩어진다. 가톨릭이 개종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유대인을 구성하는 것이 팔라샤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거주하는 이들의 기원은 시바의 여왕과 솔로몬왕의 로맨스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메넬리크 1세는 에티오피아 원주민을 개종시키며 유대인의 전통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외부와는 완전히 단절된 상태. 이스라엘 건국 후 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났던 유대인 선교사들이 한 마을에서 유대인의 경전을 읽고 있는 흑인 무리를 발견하면서 이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우리로 치면 남미의 밀림 오지에서 세종 시대 훈민정음을 사용하는 원시 종족을 만난 격이랄까. 1979년부터 파라샤는 이스라엘로 대거 입국하는데, 문제는 이들이 수천 년 전 유대교만 알 뿐 현대 유대교에는 까막눈이라는 사실이다. 거기에 더해 문명 수준이 다른 이들은 현재 이스라엘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상태다.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인종이 다르니 셋의 언어도 당연히 다르다. 아슈케나짐은 히브리어와 독일어가 합쳐진 이디시어를 사용했다. 세파르딤은 이베리아반도의 카스티야어와 히브리어를 섞어서 썼다. 팔라샤의 언어는 당연히 에티오피아의 암하라어와 섞인 고대 히브리어일 것이다. 이래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이스라엘은 독립국가를 세울 때만 해도 유대 교회 안에서만 쓰이던 히브리어를 정비해서 공용어로 밀어붙였다. 당연히 나머지 언어는 사용 금지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은 구성에서부터 언어까지 모조리 만들어지고 재구성된 허구의 공동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