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퍼지이론

퍼지 이론은 처음에는 ‘애매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세탁기, 에어컨 등 디지털 기기의 아날로그적 제어 분야에서 매우 핵심적인 원리로 주목받았습니다.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에서 학생 여러분이 수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며 영감을 받기를 바랍니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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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은 한경 씨가 본인의 첫 차를 구입하기로 한 달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몇 년간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이 벌써 1000만원에 가깝습니다. 한경 씨는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모았습니다.

모은 정보와 함께 주변의 조언을 들은 한경 씨는 몇 가지 자신만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① 가격이 1000만원을 넘지 않을 것 ② 사고 이력이 없을 것 ③ 주행거리가 10만 km가 넘지 않을 것 ④ 연비는 13km/L 가 넘을 것 ⑤ 출고된 지 10년이 넘지 않을 것.

한경 씨는 이렇게 다섯 가지 원칙을 세운 후 생글 중고차에 방문했습니다. 담당자에게 이 조건에 맞는 차를 보여달라고 했죠. 그러나 담당자는 난색을 표합니다.

“이 조건들에 비슷한 차는 많지만 모두 만족시키는 차는 없습니다. 다른 곳에 가셔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국내 모든 중고차에 대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거든요. 아무래도 다음 차 중에서 고르셔야 할 것 같아요.”

담당자가 보여준 차량은 표와 같습니다.
[재미있는 수학] 모래는 몇 알부터 더미? … 측정 힘든 걸 측정하는 이론
한경 씨는 소중한 돈으로 어떤 차량을 구입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잴 수 있는 것은 재고, 잴 수 없는 것은 잴 수 있게 만들라”는 갈릴레이가 한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문구는 직접적으로 수학을 생각하며 한 표현은 아닙니다. 하지만 수학의 명쾌하다는 특징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매료시켰고 유용한지를 은연중에 잘 보여주고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사례와 같이 현실 세계에서는 주어진 조건을 벗어났다고 할지라도 바로 배제하기보다 여전히 후보에 두고 고려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C 자동차는 주행거리가 기준보다 길긴 하지만 다른 조건은 원칙에 만족하기에 어느 정도까지는 감수하고 구입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다른 자동차들도 비슷한 상황이네요. A는 가격이, B는 사고 이력이, D는 연비와 출고 연한이 문제가 됩니다.

이런 상황은 무언가를 살 때 비교적 자주 경험하는 일들입니다. 옷이나 전자기기 등을 구입할 때도 다 좋은데 무엇 하나는 아쉬운 일이 많죠.

이런 ‘애매한’ 점은 논리학에서도 더미의 역설이라는 분야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모래 몇 알부터 모래 더미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그 답으로 요약됩니다. 이처럼 측정하기 어려운 것들을 측정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가 바로 퍼지 이론(Fuzzy theory)입니다. 결국 갈릴레이의 말대로 잴 수 없는 것을 잴 수 있게 만들려는 노력인 것이죠.

퍼지 이론의 핵심은 0과 1 사이의 중간값을 -0.6이나 0.2와 같은 값을 인정하고 실제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출고 연수를 사례로 예를 들자면, 아무리 해도 도저히 15년이 넘은 차량은 구입할 생각이 아예 없다고 해보죠. 이때 우리는 10년과 15년 사이에 선형으로 감소하는 값을 매겨 다음과 같은 그래프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수학] 모래는 몇 알부터 더미? … 측정 힘든 걸 측정하는 이론
그렇다면 D자동차의 경우 출고 연수가 11년인데, 원칙대로라면 사지 않아야겠지만 퍼지 논리를 적용하면 1점 만점 기준으로 0.8의 준수한 값을 매길 수 있습니다. 같은 논리로 나머지 자동차도 몇 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최종적으로 몇 점의 가치를 가지는지 잴 수 있을 것입니다.

일차함수를 사용하는 것이 너무 단순하다고 여겨진다면 이차함수를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한도를 약간 넘어가는 것은 괜찮지만 더 넘어갈수록 더 빠르게 감점해야 할 요소에는 적절한 이차함수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도 문제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애매한’ 것도 수치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정현 푸른숲발도르프학교 수학교사
이정현 푸른숲발도르프학교 수학교사
이 퍼지 이론은 처음에는 ‘애매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신기하기는 한데, 무슨 의의가 있는지, 어떤 쓸모가 있는지 애매했죠. 하지만 머지않아 세탁기, 에어컨 등 디지털 기기의 아날로그적 제어 분야에서 매우 핵심적 원리로 적용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카메라의 손 떨림 방지 기능부터 자동차의 브레이크 잠김 방지 시스템(ABS), 공장 자동화 기기, 드론과 로봇, 발전소 제어 시스템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사용됩니다.

단순한 일차방정식이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 여러분이 수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는 데 영감을 받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