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총선거가 다가오자 여야 정당이 나라에서 국민에게 뭐라도 다 해줄 것처럼 외쳐대고 있다. 범람하는 공약 가운데는 ‘국민 행복’도 자주 눈에 띈다. 마치 정부가 국민에게 행복을 주겠다는 식이다.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제시된 여당 국민의힘의 10대 공약에도 그런 내용이 중복적으로 들어있다. 통상 보수·우파를 지향하는 정당의 기본 성격이나 정강을 볼 때 이 당은 ‘국민 행복’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외치는 게 정체성에 부합한다. 그런데도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큰 공약에 ‘국민 행복’‘청년 행복’이 들어가 있다. 다른 진보·좌파 정당들은 볼 것도 없다. 정부가 개인에게 행복을 보장하겠다는 슬로건을 쉽게 내놓는다. 국가·정부는 자율의 자유 시민에게 행복을 줄 수 있나.[찬성] 복지국가 책무, 국민 행복은 '큰 정부' 지향점…의식주부터 적극적으로 약자 도와야많은 현대 국가가 복지국가를 지향한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에 이미 베버리지 보고서를 통해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 즉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국민을 살피는 복지 국가를 지향했다. 각종 사회보장제도가 그렇게 시스템화했고, 발전해왔다. 북유럽의 이른바 복지 국가들도 오랫동안 그런 정책을 지향해왔다. 서유럽의 좌파·진보 정당들이 내거는 정강이나 공약도 그 기반에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담은 게 다수다.
많은 나라들이 복지제도를 줄이기보다 웬만하면 확대 쪽으로 방향 잡은 것도 현대국가의 일반적 특징이다. 의식주를 기반으로 한 일반 복지도 경제적 약자를 비롯한 취약계층을 위한 것이다. 그 지향점도 국가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많은 경우 불행한 처지의 국민을 구제하겠다는 것이다. 정당들이 행복을 외치는 것은 그런 차원에서 수용해야 한다. 행복한 국민을 만들겠다는 것은 정치가 수행하는 역할 중 기본적 기능이 된다. 식품을 비롯한 생필품의 차질 없는 공급을 통한 물가 안정, 적절한 공공 임대주택 공급 등을 포함한 주거 안정,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각급 학생들 학비 걱정 덜어주기, 은퇴 이후 고령자들을 위한 기본 복지 등에 대한 국가의 책무도 그래서 커진다. 이 모든 게 국민 행복을 위한 것이다.
물론 이를 내세우는 정당들, 달리는 정권을 잡은 정부와 국회가 구호로 외쳐대는 것처럼 실제로 국민 행복을 위해 실질적으로 노력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 제기는 가능하다. 단지 표를 얻기 위해 달콤하게 내뱉는 사탕발림이거나 말로만 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약(公約)이 아니라 선거 때 한철의 공약(空約)일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국가의 재정 보조를 받는 공당의 약속이행 여부에 관한 문제다. 이에 대해서는 유권자가 제대로 응징하고 심판할 필요가 있다.[반대] '관제 행복'은 가짜…'자유·선택' 간섭 우려, 행복은 각자가 추구하는 지고의 가치여당과 야당이 공천 등을 둘러싸고 저급한 말꼬리 싸움이나 벌이는 와중에 보수·우파를 지향하는 국민의힘이 내놓은 10대 정책 공약에는 ‘행복’이 두 번이나 있다. 1호 공약이 ‘일가족 모두 행복’이다. 다수당이 되면 일과 가정사에 걸쳐 행복을 담보·보장하겠다는 의미다. 행복 슬로건은 여덟 번째 공약에도 있다. ‘청년 모두 행복한 대한민국’이다. 한국 정당이 정체성과 관계없이 ‘국민 행복 보장’을 외치는 것은 흔하다. 과거 정부도 행복을 내세우기 위해 전국의 주민센터를 행복센터(행정복지센터)라는 다분히 작위적인 간판으로 바꾼 바 있다.
행복에 대해서는 무수한 철학적·종교적·학문적 담론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행복인지, 어떻게 하는 게 행복해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범 답이 없다. 다만 근대 이후 자유민주주의 기반 서구 선진국에서 행복은 시민 각자가 자기 책임하에 본인이 추구하는 바를 달성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신앙과 공부, 학문과 성찰, 명상과 사색, 경제적 여유, 취미와 간섭받지 않는 개인 생활을 통하며, 때로는 봉사와 헌신 등을 통해 접근하는 ‘그 어떤 지고의 가치’다. 국가나 정부가 줄 수도 없으며, 실제로 이를 보장하는 나라도 없다. ‘당신의 삶이 행복해지도록 다 해주겠다’는 극단적 체제가 공산국가다. 하지만 인민 낙원을 외친 공산국가가 지금껏 성공한 적이 없다. 정부든 국회든 나라가 준다는 행복이나 강요하는 행복은 가짜다. 이런 ‘관제 행복’은 간섭과 통제의 다른 이름이다. 아니면 자유와 선택의 박탈이다.
선거철의 과장된 공약일 수도 되지만 공당이 가치와 철학, 정체성을 잃으면 선거 한철의 권력 추구 집단일 뿐이다. 가령 청년·서민 주택 공급을 공약으로 내걸 때도 막연한 ‘행복주택’보다 ‘신혼부부 임대주택계획’ ‘저소득 독신자 주거 대책’처럼 사실관계를 담아야 건실해지고 내실도 다져진다.√ 생각하기 - 부담스러운 정치권 구호…필요한 복지와 '행복 준다'는 달라 정치는 이념의 세일즈다. 이념과 가치, 철학이라는 정치의 원자재는 정책으로 가공된다. 정책이라는 소비재를 고객에게 판매하는 공식 시장이 선거다. 더 나은 정치 상품을 선택하는 것은 유권자의 권리이자 책무다. 이를 통해 정치가 발전한다. 소비자가 깨어있어야 정치판이 깨끗해지고 야바위꾼 사기꾼 야심가 천지의 정책 시장이 선진화한다. 국회의원 총선거라면 미래 개척형 새 상품, 저성장 돌파의 기획 상품, 젊은 세대 유인형 신상품을 구체적으로 내놓고 표와 바꾸자고 해야 생산적인 정치다. 공약과 정책의 세일즈는 그렇게 거래돼야 한다. 아름답기만 한 언어, 추상명사, 구름 잡는 공약은 배제돼야 한다. 유권자로선 정책이라는 선거철 상품은 구체적인 게 많을수록 좋다. 그러자면 각 당은 정체성이 확실하면서 실제적인 제품을 많이 놔놔야 한다. 요컨대 정책의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정부가 외쳐대는 행복, 알고 보면 불편해진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많은 나라들이 복지제도를 줄이기보다 웬만하면 확대 쪽으로 방향 잡은 것도 현대국가의 일반적 특징이다. 의식주를 기반으로 한 일반 복지도 경제적 약자를 비롯한 취약계층을 위한 것이다. 그 지향점도 국가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많은 경우 불행한 처지의 국민을 구제하겠다는 것이다. 정당들이 행복을 외치는 것은 그런 차원에서 수용해야 한다. 행복한 국민을 만들겠다는 것은 정치가 수행하는 역할 중 기본적 기능이 된다. 식품을 비롯한 생필품의 차질 없는 공급을 통한 물가 안정, 적절한 공공 임대주택 공급 등을 포함한 주거 안정,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각급 학생들 학비 걱정 덜어주기, 은퇴 이후 고령자들을 위한 기본 복지 등에 대한 국가의 책무도 그래서 커진다. 이 모든 게 국민 행복을 위한 것이다.
물론 이를 내세우는 정당들, 달리는 정권을 잡은 정부와 국회가 구호로 외쳐대는 것처럼 실제로 국민 행복을 위해 실질적으로 노력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 제기는 가능하다. 단지 표를 얻기 위해 달콤하게 내뱉는 사탕발림이거나 말로만 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약(公約)이 아니라 선거 때 한철의 공약(空約)일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국가의 재정 보조를 받는 공당의 약속이행 여부에 관한 문제다. 이에 대해서는 유권자가 제대로 응징하고 심판할 필요가 있다.[반대] '관제 행복'은 가짜…'자유·선택' 간섭 우려, 행복은 각자가 추구하는 지고의 가치여당과 야당이 공천 등을 둘러싸고 저급한 말꼬리 싸움이나 벌이는 와중에 보수·우파를 지향하는 국민의힘이 내놓은 10대 정책 공약에는 ‘행복’이 두 번이나 있다. 1호 공약이 ‘일가족 모두 행복’이다. 다수당이 되면 일과 가정사에 걸쳐 행복을 담보·보장하겠다는 의미다. 행복 슬로건은 여덟 번째 공약에도 있다. ‘청년 모두 행복한 대한민국’이다. 한국 정당이 정체성과 관계없이 ‘국민 행복 보장’을 외치는 것은 흔하다. 과거 정부도 행복을 내세우기 위해 전국의 주민센터를 행복센터(행정복지센터)라는 다분히 작위적인 간판으로 바꾼 바 있다.
행복에 대해서는 무수한 철학적·종교적·학문적 담론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행복인지, 어떻게 하는 게 행복해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범 답이 없다. 다만 근대 이후 자유민주주의 기반 서구 선진국에서 행복은 시민 각자가 자기 책임하에 본인이 추구하는 바를 달성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신앙과 공부, 학문과 성찰, 명상과 사색, 경제적 여유, 취미와 간섭받지 않는 개인 생활을 통하며, 때로는 봉사와 헌신 등을 통해 접근하는 ‘그 어떤 지고의 가치’다. 국가나 정부가 줄 수도 없으며, 실제로 이를 보장하는 나라도 없다. ‘당신의 삶이 행복해지도록 다 해주겠다’는 극단적 체제가 공산국가다. 하지만 인민 낙원을 외친 공산국가가 지금껏 성공한 적이 없다. 정부든 국회든 나라가 준다는 행복이나 강요하는 행복은 가짜다. 이런 ‘관제 행복’은 간섭과 통제의 다른 이름이다. 아니면 자유와 선택의 박탈이다.
선거철의 과장된 공약일 수도 되지만 공당이 가치와 철학, 정체성을 잃으면 선거 한철의 권력 추구 집단일 뿐이다. 가령 청년·서민 주택 공급을 공약으로 내걸 때도 막연한 ‘행복주택’보다 ‘신혼부부 임대주택계획’ ‘저소득 독신자 주거 대책’처럼 사실관계를 담아야 건실해지고 내실도 다져진다.√ 생각하기 - 부담스러운 정치권 구호…필요한 복지와 '행복 준다'는 달라 정치는 이념의 세일즈다. 이념과 가치, 철학이라는 정치의 원자재는 정책으로 가공된다. 정책이라는 소비재를 고객에게 판매하는 공식 시장이 선거다. 더 나은 정치 상품을 선택하는 것은 유권자의 권리이자 책무다. 이를 통해 정치가 발전한다. 소비자가 깨어있어야 정치판이 깨끗해지고 야바위꾼 사기꾼 야심가 천지의 정책 시장이 선진화한다. 국회의원 총선거라면 미래 개척형 새 상품, 저성장 돌파의 기획 상품, 젊은 세대 유인형 신상품을 구체적으로 내놓고 표와 바꾸자고 해야 생산적인 정치다. 공약과 정책의 세일즈는 그렇게 거래돼야 한다. 아름답기만 한 언어, 추상명사, 구름 잡는 공약은 배제돼야 한다. 유권자로선 정책이라는 선거철 상품은 구체적인 게 많을수록 좋다. 그러자면 각 당은 정체성이 확실하면서 실제적인 제품을 많이 놔놔야 한다. 요컨대 정책의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정부가 외쳐대는 행복, 알고 보면 불편해진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