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존 그리샴 <크리스마스 건너뛰기>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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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계절이 돌아왔다.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한 해를 정리하면서 크리스마스를 축제처럼 지내는 이가 많다. 기왕이면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길 기대하며 이브 때부터 거리가 북적이기 시작한다.

전 국민의 70% 이상이 기독교인인 미국이라면 크리스마스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뿐 아니라 기독교인 비율이 높은 서양의 여러 국가는 크리스마스를 성대하게 보낸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비롯한 성탄절 관련 작품도 많은데, 악랄한 주인공이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회심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반면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는 기발하고 흥미로운 전개 속에서 유쾌한 소동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변호사 출신인 존 그리샴은 할리우드 대배우와 감독 사이에서 ‘흥행 보증 수표’로 불리는 원작자 중 한 명이다. 전문적인 법 지식을 바탕으로 빠른 전개와 팽팽한 문체, 탄탄한 구성이 돋보이는 법정 스릴러 영역을 구축해왔다.크루즈 여행을 떠나려던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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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작가인 만큼 존 그리샴의 작품은 죽거나 다치는 가운데 음모와 추적, 폭발음이 난무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는 주인공이 잠시 수갑을 차긴 하지만 단 한 명도 죽거나 다치지 않는 상황에서 크리스마스 대소동이 벌어진다.

루터와 노라 부부의 집이 위치한 헴록 스트리트는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요란한 장식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주민들은 집 안팎을 트리와 화려한 전구로 장식하는 것은 물론 지붕에 플라스틱 눈사람 ‘프로스티’를 세워 환하게 불을 밝힌다. 마을 사람 모두 카드와 선물을 보내고 파티를 여느라 12월 내내 분주하다.

크리스마스 한 달 전, 루터와 노라의 외동딸 블레어가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페루의 오지에서 1년간 봉사하기 위해 떠난다. 블레어가 출국하자 루터는 아내에게 올해 크리스마스를 건너뛰자고 말한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쓴 경비가 6100달러(약 790만 원)에 달한다며 그 돈으로 크루즈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노라는 모두가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데 혼자만 빠지는 것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가 걸리긴 했지만, 남편 뜻을 따르기로 한다. 카리브해에서 보낼 멋진 열흘을 생각하며 태닝까지 하는 등 준비를 철저히 한다.

크리스마스 당일에 떠나면 트리도 세우고 이브 파티를 해도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이웃들에게 루터 부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장애인과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모금하러 온 경찰관과 소방대원들도 돌려보낸다. 트리 용품을 팔러온 소년들에게도 내년에 오라고 말한다.

온 동네가 화려하게 변신하는 가운데 루터 씨네 집만 이가 빠진 듯 어두컴컴하다. 다른 마을과 경연하면 늘 1·2등을 하던 헴록 스트리트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이번에는 6등으로 하락하고 말았다.사윗감을 데려온다는 딸의 전화에드디어 크루즈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1년 후에 오겠다던 딸 블레어가 마이애미에 도착했다며 페루에서 만난 엔리크와 6시간 후면 집에 도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의사인 엔리크와 약혼했고, 결혼 문제를 논의하고 싶다며 “엔리크가 미국 크리스마스를 꼭 보고 싶었대요. 제가 다 얘기해줬어요. 이 사람 놀라서 까무러치게 해주실 거죠?”라고 말한다.

루터와 노라는 딸과 사윗감이 온다는 말에 부랴부랴 준비하기 시작한다. 파티에 올 사람들을 물색했지만 크리스마스이브 당일 초대에 다들 고개를 젓는다. 설상가상 루터는 지붕에 프로스티를 세우다 사고를 당하고, 물건이 다 떨어진 마트로 달려간 노라는 식재료를 제대로 구하지 못한다. 갑자기 분주해진 부부를 보고 사정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고소해하는 대신 이들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선다. 프로스티를 세우고, 파티 음식을 들고 달려와 근사한 파티를 준비한다.

루터는 취소가 불가능한 크루즈 여행 티켓을 앞집 부부에게 전달한다. 아내가 암으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아 시름에 젖어 있던 앞집 남편도 갑자기 짐을 싸느라 바빠진다.

이근미 작가
이근미 작가
<크리스마스 건너뛰기>에는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 우당탕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성탄절 소동이 실감 나게 담겨 있다. 여러 준비 과정과 다양한 음식을 통해 미국인들의 크리스마스 지내기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