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결혼 자금’에 대해 증여세 공제(비과세) 확대를 검토 중이다. 심각하게 악화된 저출산 대응책이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포함된 내용이다. 자녀에게 세금 없이 줄 수 있는 자금은 10년에 걸쳐 1인당 5000만원이다. 3000만원이던 것이 2013년 법이 바뀌어 2014년부터 10년째 그대로다. 기재부가 이 한도를 올리려는 것은 비혼·저출산 타개책인 데다 소비 진작 효과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간 경제 규모가 커졌고, 물가도 많이 올랐다. 주택 마련 비용까지 감안하면 결혼비용도 전국 평균 3억원을 웃돈다. 하지만 부(富)의 대물림이라는 비판 여론이 부담이다. 증여나 상속 재산이 없는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증여세 면제 기준을 1억~2억원으로 올리도록 법을 바꾸는 게 좋을까. [찬성] 재정 동원 결혼장려 한계, 세대 간 富이전…경제 커졌고, 인플레 대응·소비 진작 효과한국의 저출산은 세계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됐다. 국가소멸론까지 나올 지경이다. 지난 16년간 저출산 타개 예산으로 나랏돈 280조원을 썼으나 합계출산율(여성 생애 동안 기대되는 출생아 수)이 0.78명(2022년)으로 떨어졌다. 한때 한 해 100만 명을 넘었던 신생아가 24만9031명으로 떨어졌다. 신생아 수가 줄어드는 속도도 너무 급해 국가의 총력대응이 필요하다.
어떻게든 결혼을 장려하고 출산도 유도해야 한다. 재정지출로는 한계에 달했다. 건전재정을 지향하는 판에 더 풀 나랏돈도 없다. 결국 민간의 축적된 자금이 세대 간에 이전되도록 정책적 물꼬를 터야 한다. 재정에서 결혼과 출산에 대해 1인당 5000만원, 1억원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각 가정의 부모와 자식 간에는 가능하다. 정부는 육아방식, 휴가, 보육과 교육 등 제도로 결혼을 회피하지 않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바람직하다. 소비 활성화에도 도움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수출 확대와 내수 진작이 필요한데, 수출 증대는 어려움이 더 크다. 내수 진작 차원에서 소비 확대를 하려면 청년층이 쓸 돈이 있어야 한다. 일본의 장기 경제침체 요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자산이 많은 고령층이 돈을 쓰지 않고, 80~90대 부모가 50~60대 자식에게 ‘노노(老老)상속’을 하면서 돈이 고여 있는 게 한 요인이다. 한국이 이런 모델을 따라가선 안 된다. 천문학적 저출산 정부 예산 지출을 민간으로 돌리며 소비 활성화도 꾀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경제 규모도 커졌다. 물가도 많이 올랐다. 결혼정보업체(듀오)의 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 신혼부부의 평균 결혼비용은 주택을 포함해 3억3050만원(2023년)에 달한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서라도 10년째 5000만원인 비과세 한도를 올려야 한다. 결혼자금에만 비과세 증여 한도를 높일 게 아니라 성인 자녀 전체로 오히려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반대] 비혼·출산기피, 돈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富의 대물림'으로 격차 키울 것가뜩이나 양극화와 경제적 격차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지금도 부모나 조부모가 10년마다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자녀나 손자녀 1인당 5000만원씩 증여할 수 있다. 이런 공제(면세기준) 한도를 더 높이면 부의 대물림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젊은 세대로 부의 이전을 촉진하는 것은 전체 사회의 발전과 경제의 성숙을 위해 필요한 측면이 있지만, 한정된 계층에서만 부의 이전이 이뤄진다는 게 문제다. 그 결과는 격차를 벌리는 것이 된다. 사회로 진출할 때 출발선이 달라지지 않도록 정부가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
급속한 고령화와 함께 진행되는 저출산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합계출산율이 세계에서 불명예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신생아가 줄어든 것이 반드시 경제적 문제 때문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비혼과 출산 기피가 돈이 없어서라고 입증된 바라도 있나. 결혼 기피는 가정 안에서 남녀 간 역할 분담과 양성평등 갈등, 청춘 남녀의 자유로운 독립생활 추구 탓이 더 클 수 있다. 출산을 않거나 아이를 적게 낳는 게 직장 내 경력단절 등 사회생활에서의 불이익 때문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단지 돈 문제, 즉 경제적 고충 때문에 결혼도 출산도 기피한다는 전제에서 문제를 풀겠다면 국가적 난제도 풀지 못하면서 격차 심화라는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저출산의 인구 문제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면 다른 제도적 보완책을 강구하고 이민 문호 확대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정년 제도를 없애고 고령층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도록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면 경제활동인구 증가로 인구 감소 대응책이 된다.
설령 면제 한도를 올려도 한꺼번에 많이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제 규모가 커졌다지만 5000만원으로 확대됐던 2014년부터 2022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은 38%, 1인당 GDP는 37% 올랐을 뿐이다. √ 생각하기 - 3600조원 고령층 자금 돌게 해야…결혼·초산·둘째 출산에 공제 차등화 해볼만 부모 세대 여윳돈을 결혼에 맞춰 자녀들에게 일부라도 넘어가게 해 저출산 대응 정부지출을 줄이자는 취지다. 고령 세대가 저축금을 쓰지 않는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를 보면 세대 간 자본 이전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 문제는 ‘심각’을 넘어 ‘위기’로 가는 판이다. 고령층이 가진 3600조원의 자산은 사실상 고여 있는 자금이다. 사후 상속이 아니라 생전 증여로 생산적으로 쓰인다면 국가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좋은 일이다. ‘격차 심화’라는 지적이 늘 정부엔 부담이다. 하지만 청년세대 지원책은 다각도로 모색해갈 수 있다. 출산장려 지원을 민간으로 돌리고 그쪽 정부 예산을 달리 활용하는 것이다. 굳이 결혼자금에 한할 것도 아니다. 모든 성인 자녀 증여에 비과세 기준을 올리면서 결혼·출산 때는 추가로 한도를 올려주는 방식도 좋다. 나아가 둘째 셋째 출산 때는 다시 5000만~1억원 정도 비과세 확대도 해볼 만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어떻게든 결혼을 장려하고 출산도 유도해야 한다. 재정지출로는 한계에 달했다. 건전재정을 지향하는 판에 더 풀 나랏돈도 없다. 결국 민간의 축적된 자금이 세대 간에 이전되도록 정책적 물꼬를 터야 한다. 재정에서 결혼과 출산에 대해 1인당 5000만원, 1억원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각 가정의 부모와 자식 간에는 가능하다. 정부는 육아방식, 휴가, 보육과 교육 등 제도로 결혼을 회피하지 않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바람직하다. 소비 활성화에도 도움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수출 확대와 내수 진작이 필요한데, 수출 증대는 어려움이 더 크다. 내수 진작 차원에서 소비 확대를 하려면 청년층이 쓸 돈이 있어야 한다. 일본의 장기 경제침체 요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자산이 많은 고령층이 돈을 쓰지 않고, 80~90대 부모가 50~60대 자식에게 ‘노노(老老)상속’을 하면서 돈이 고여 있는 게 한 요인이다. 한국이 이런 모델을 따라가선 안 된다. 천문학적 저출산 정부 예산 지출을 민간으로 돌리며 소비 활성화도 꾀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경제 규모도 커졌다. 물가도 많이 올랐다. 결혼정보업체(듀오)의 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 신혼부부의 평균 결혼비용은 주택을 포함해 3억3050만원(2023년)에 달한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서라도 10년째 5000만원인 비과세 한도를 올려야 한다. 결혼자금에만 비과세 증여 한도를 높일 게 아니라 성인 자녀 전체로 오히려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반대] 비혼·출산기피, 돈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富의 대물림'으로 격차 키울 것가뜩이나 양극화와 경제적 격차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지금도 부모나 조부모가 10년마다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자녀나 손자녀 1인당 5000만원씩 증여할 수 있다. 이런 공제(면세기준) 한도를 더 높이면 부의 대물림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젊은 세대로 부의 이전을 촉진하는 것은 전체 사회의 발전과 경제의 성숙을 위해 필요한 측면이 있지만, 한정된 계층에서만 부의 이전이 이뤄진다는 게 문제다. 그 결과는 격차를 벌리는 것이 된다. 사회로 진출할 때 출발선이 달라지지 않도록 정부가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
급속한 고령화와 함께 진행되는 저출산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합계출산율이 세계에서 불명예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신생아가 줄어든 것이 반드시 경제적 문제 때문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비혼과 출산 기피가 돈이 없어서라고 입증된 바라도 있나. 결혼 기피는 가정 안에서 남녀 간 역할 분담과 양성평등 갈등, 청춘 남녀의 자유로운 독립생활 추구 탓이 더 클 수 있다. 출산을 않거나 아이를 적게 낳는 게 직장 내 경력단절 등 사회생활에서의 불이익 때문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단지 돈 문제, 즉 경제적 고충 때문에 결혼도 출산도 기피한다는 전제에서 문제를 풀겠다면 국가적 난제도 풀지 못하면서 격차 심화라는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저출산의 인구 문제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면 다른 제도적 보완책을 강구하고 이민 문호 확대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정년 제도를 없애고 고령층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도록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면 경제활동인구 증가로 인구 감소 대응책이 된다.
설령 면제 한도를 올려도 한꺼번에 많이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제 규모가 커졌다지만 5000만원으로 확대됐던 2014년부터 2022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은 38%, 1인당 GDP는 37% 올랐을 뿐이다. √ 생각하기 - 3600조원 고령층 자금 돌게 해야…결혼·초산·둘째 출산에 공제 차등화 해볼만 부모 세대 여윳돈을 결혼에 맞춰 자녀들에게 일부라도 넘어가게 해 저출산 대응 정부지출을 줄이자는 취지다. 고령 세대가 저축금을 쓰지 않는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를 보면 세대 간 자본 이전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 문제는 ‘심각’을 넘어 ‘위기’로 가는 판이다. 고령층이 가진 3600조원의 자산은 사실상 고여 있는 자금이다. 사후 상속이 아니라 생전 증여로 생산적으로 쓰인다면 국가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좋은 일이다. ‘격차 심화’라는 지적이 늘 정부엔 부담이다. 하지만 청년세대 지원책은 다각도로 모색해갈 수 있다. 출산장려 지원을 민간으로 돌리고 그쪽 정부 예산을 달리 활용하는 것이다. 굳이 결혼자금에 한할 것도 아니다. 모든 성인 자녀 증여에 비과세 기준을 올리면서 결혼·출산 때는 추가로 한도를 올려주는 방식도 좋다. 나아가 둘째 셋째 출산 때는 다시 5000만~1억원 정도 비과세 확대도 해볼 만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