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 경제팀장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라면값 인하를 압박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뒤이어 농림축산식품부가 나서 밀가루 가격 인하를 압박했다. 국제 밀 가격(2023년 6월 기준)이 1년 전보다 50% 떨어졌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앞서 “세금 좀 올렸다고 주류 가격 올리냐”며 주류업계를 압박한 지 넉 달 만이다. 라면값에는 밀가루뿐 아니라 급등한 인건비·물류비·에너지 비용 등 여러 가지가 반영되는데, 정부가 시장의 개별 상품 가격에 간섭·개입하는 게 적절하냐는 논란이 뒤따랐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는 ‘시장’과 ‘자유’를 외쳐왔다. 물론 인플레이션이 경제에 미치는 부담이 상당히 큰 것은 사실이다. 총선(2024년 4월)이 다가오면서 정부가 다급해진 것일까. 경제부총리의 라면값 인하 압박, 어떻게 볼 것인가. [천성] 국제 밀값 떨어지는데 라면은 왜 오르나…서민에 더 충격 고물가, 정부 '관리' 나서야코로나 쇼크에 글로벌 공급망 이상이 겹치면서 인플레이션이 세계 각국에서 심각한 문제가 됐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심화하면서 반도체 부문을 중심으로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식량과 에너지 가격까지 급등시켰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큰 악재였다. 인플레이션 대응책으로 미국은 충격을 무릅쓰고 급격하게 금리를 올렸다. 인플레이션은 정부가 걷는 ‘제2의 세금’이라고 할 정도로 국민 전체에 무차별적으로 충격을 준다. 경제 취약계층엔 더욱 가혹하다. 그래서 통상 각국 정부는 고물가에 동원할 수 있는 정책을 총동원한다.
라면이든 무엇이든 경제부총리가 급등 요인을 살피고 대응책을 내놓는 게 당연하다. 특히 라면은 서민 청년 노인층 등에는 주식에 가까울 정도로 일상적 생활 품목이다. 이런 상품의 가격 변동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정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근래 라면값이 급등한 과정과 해당 업계의 늘어난 이익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2년 9월께 국내 라면업계는 원자재 가격과 임금 상승을 이유로 제품 가격을 9.7~11.3% 올렸다. 대표업체인 N사는 2021년에도 6% 가까이 인상했는데 1년 만에 또 11%나 올렸다. 서민 식품인 라면 5개 포장 상품이 4000원에 달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라면 수요는 늘어나는데, 라면 먹기도 부담이다. 반면 라면업계 이익은 많이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원자재인 밀가루 가격이 1년 새 50%가량 떨어졌으니 제품값에 반영하라는 촉구는 문제 될 일이 아니다.
장바구니 체감물가로 보면 서민은 생활이 어려울 정도다. 통계로는 소비자물가가 3~4%대 오르지만, 식품류는 그보다 훨씬 높다. 유통망 점검, 사재기 단속 등과 함께 수급 시스템을 잘 봐야겠지만 그것만으로 정부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다수 국민이 정부에 ‘물가 관리를 하라’고 하지 않나. 그런 여론을 봐도 정부는 가격 급등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반대] 밀 가격, 라면 값 반영에 6개월 소요…강압·타성적 물가관리 효과 없고 부작용정부의 시장 직접 개입은 부작용을 남길 수밖에 없다. 실익도 없다. 라면업계가 당장은 정부가 무서워 가격을 내리지만 얼마나 갈까. 부총리가 한마디했으니 여차하면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나설 수 있고, 공정거래위원회도 가만히 있지 않을지 모른다. 어느 정부 할 것이 없이 자주 봤던 모습이다. 물론 정부는 고물가가 부담스럽다. 적정 수준을 넘는 인플레이션은 경제에 충격을 주고, 특히 서민을 더 힘들게 한다. 그렇다고 미국처럼 금리를 막 올리는 인플레이션 대응 정공법도 쓰기 어렵다. 한국에 식량과 에너지는 대부분 수입품이어서 우리 의지만으로 국제가격에 대응하기 쉽지 않다. 그래도 가격 개입은 곤란하다.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까지 나서 유가 개입을 했지만 결과는 석 달간 L당 100원 내리는 정도에 그쳤다. 당시에도 “국제유가는 내렸는데 국내 기름값은 왜 그만큼 내리지 않느냐”며 정유회사와 주유소 때리기에 나섰다. 하지만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라던 정부 평판만 나빠졌다. 비싼 유가는 기름값의 50%를 넘는 세금이 더 문제였다. 라면업계는 국제 밀값이 떨어져도 국내 밀가루값에 바로 반영되지 않고, 6개월가량 시차도 있다고 하소연한다. 밀 가격이 내려도 이전보다는 여전히 높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전체 임금이 함께 상승하는 등 다른 인상 요인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와 ‘시장’을 강조해왔다. 가격은 시장 자율에 맡기고, 담합행위나 사재기 같은 시장교란 행위를 막는 데 주력해야 한다. 정부의 고유권한인 세금 정책도 좋다. 라면업계만 때리면 다른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 가격은 어떻게 할 작정인가. 일일이 개입한다면 공산국가처럼 국가주도의 계획경제 아닌가. 정부가 주력할 것은 공공의 군살빼기, 저금리로 인한 거품빼기, 생산성 혁신 여건 조성, 노조의 막무가내 임금투쟁 저지 등 경제살리기가 본령이다.√ 생각하기 - '보이지 않는 손' 무시 '보이는 주먹' 휘두르면 시장 보복 … 정부지출 줄여야 한쪽에선 ‘물가 관리에 손놨나, 무능한 정부냐’, 다른 쪽에선 ‘정부가 왜 개별 상품 가격에 개입하나, 그럴 거면 공기업 관리나 잘하라’고 한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도 힘들 것이다. 그래도 ‘완장’을 내세워 주먹을 휘두르고 싶은 유혹은 참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전기요금을 올리면 가계에 부담된다고 인상 요인을 반영하지 않아 한국 최대의 공기업 한국전력을 최악으로 몰아넣었다. 부총리의 라면값 개입에 한국은행 총재까지 “정치적 말씀”이라며 둘러 비판했다. 고물가 대책이 ‘가격 관리·통제’라는 과거식 타성적 대응에 머물렀던 것이다. 라면값을 끌어내리면 잠시 박수는 받겠지만 억지 개입은 근본대책이 못 된다. 정부가 ‘보이지 않는 손’(가격 시스템)을 무시하고, ‘보이는 주먹’(행정권)을 선택할 경우 시장은 어떤 보복(부작용)을 할까. 국제결제은행(BIS)은 “물가 잡으려면 정부 지출 줄이라”며 돈풀기 자제를 권고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라면이든 무엇이든 경제부총리가 급등 요인을 살피고 대응책을 내놓는 게 당연하다. 특히 라면은 서민 청년 노인층 등에는 주식에 가까울 정도로 일상적 생활 품목이다. 이런 상품의 가격 변동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정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근래 라면값이 급등한 과정과 해당 업계의 늘어난 이익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2년 9월께 국내 라면업계는 원자재 가격과 임금 상승을 이유로 제품 가격을 9.7~11.3% 올렸다. 대표업체인 N사는 2021년에도 6% 가까이 인상했는데 1년 만에 또 11%나 올렸다. 서민 식품인 라면 5개 포장 상품이 4000원에 달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라면 수요는 늘어나는데, 라면 먹기도 부담이다. 반면 라면업계 이익은 많이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원자재인 밀가루 가격이 1년 새 50%가량 떨어졌으니 제품값에 반영하라는 촉구는 문제 될 일이 아니다.
장바구니 체감물가로 보면 서민은 생활이 어려울 정도다. 통계로는 소비자물가가 3~4%대 오르지만, 식품류는 그보다 훨씬 높다. 유통망 점검, 사재기 단속 등과 함께 수급 시스템을 잘 봐야겠지만 그것만으로 정부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다수 국민이 정부에 ‘물가 관리를 하라’고 하지 않나. 그런 여론을 봐도 정부는 가격 급등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반대] 밀 가격, 라면 값 반영에 6개월 소요…강압·타성적 물가관리 효과 없고 부작용정부의 시장 직접 개입은 부작용을 남길 수밖에 없다. 실익도 없다. 라면업계가 당장은 정부가 무서워 가격을 내리지만 얼마나 갈까. 부총리가 한마디했으니 여차하면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나설 수 있고, 공정거래위원회도 가만히 있지 않을지 모른다. 어느 정부 할 것이 없이 자주 봤던 모습이다. 물론 정부는 고물가가 부담스럽다. 적정 수준을 넘는 인플레이션은 경제에 충격을 주고, 특히 서민을 더 힘들게 한다. 그렇다고 미국처럼 금리를 막 올리는 인플레이션 대응 정공법도 쓰기 어렵다. 한국에 식량과 에너지는 대부분 수입품이어서 우리 의지만으로 국제가격에 대응하기 쉽지 않다. 그래도 가격 개입은 곤란하다.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까지 나서 유가 개입을 했지만 결과는 석 달간 L당 100원 내리는 정도에 그쳤다. 당시에도 “국제유가는 내렸는데 국내 기름값은 왜 그만큼 내리지 않느냐”며 정유회사와 주유소 때리기에 나섰다. 하지만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라던 정부 평판만 나빠졌다. 비싼 유가는 기름값의 50%를 넘는 세금이 더 문제였다. 라면업계는 국제 밀값이 떨어져도 국내 밀가루값에 바로 반영되지 않고, 6개월가량 시차도 있다고 하소연한다. 밀 가격이 내려도 이전보다는 여전히 높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전체 임금이 함께 상승하는 등 다른 인상 요인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와 ‘시장’을 강조해왔다. 가격은 시장 자율에 맡기고, 담합행위나 사재기 같은 시장교란 행위를 막는 데 주력해야 한다. 정부의 고유권한인 세금 정책도 좋다. 라면업계만 때리면 다른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 가격은 어떻게 할 작정인가. 일일이 개입한다면 공산국가처럼 국가주도의 계획경제 아닌가. 정부가 주력할 것은 공공의 군살빼기, 저금리로 인한 거품빼기, 생산성 혁신 여건 조성, 노조의 막무가내 임금투쟁 저지 등 경제살리기가 본령이다.√ 생각하기 - '보이지 않는 손' 무시 '보이는 주먹' 휘두르면 시장 보복 … 정부지출 줄여야 한쪽에선 ‘물가 관리에 손놨나, 무능한 정부냐’, 다른 쪽에선 ‘정부가 왜 개별 상품 가격에 개입하나, 그럴 거면 공기업 관리나 잘하라’고 한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도 힘들 것이다. 그래도 ‘완장’을 내세워 주먹을 휘두르고 싶은 유혹은 참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전기요금을 올리면 가계에 부담된다고 인상 요인을 반영하지 않아 한국 최대의 공기업 한국전력을 최악으로 몰아넣었다. 부총리의 라면값 개입에 한국은행 총재까지 “정치적 말씀”이라며 둘러 비판했다. 고물가 대책이 ‘가격 관리·통제’라는 과거식 타성적 대응에 머물렀던 것이다. 라면값을 끌어내리면 잠시 박수는 받겠지만 억지 개입은 근본대책이 못 된다. 정부가 ‘보이지 않는 손’(가격 시스템)을 무시하고, ‘보이는 주먹’(행정권)을 선택할 경우 시장은 어떤 보복(부작용)을 할까. 국제결제은행(BIS)은 “물가 잡으려면 정부 지출 줄이라”며 돈풀기 자제를 권고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