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김설원 < 내게는 홍시뿐이야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파산선고한 엄마 그리워하는 18세 딸의 분투기](https://img.hankyung.com/photo/202305/AA.33468161.1.jpg)
또와아귀찜, 또와막창구이 등 개업하는 가게마다 실패를 거듭한 또와 아저씨네도 형편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 집에서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또와 아저씨는 어려운 형편을 밝히며 ‘나는 지쳤다. 이제는 숨 쉴 힘도 없다. 각자 어디로든 떠나라’는 선언이 담긴 종이를 두 자녀에게 나눠준다. “앞가림하려면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며 맞아주었던 아저씨의 파산선고에 아란의 선택은 떠나는 것뿐이다.치킨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다열여덟 살 아란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학교를 그만두고 7000원짜리 찜질방에서 지내며 생활정보지를 통해 살 집과 일자리를 찾아낸다. 23번 버스 종점에 있는 폐허 같은 집에 월세 10만원을 내고 들어갔고, 대학 휴학생이라고 속인 채 고고치킨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아란의 처지를 생각하면 기가 막히지만 그렇다고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게 만만치 않았다’는 아란의 엄마와 대학 졸업 후에 취직도 못하고 빌빌대는 두 자녀를 계속 뒷바라지했던 또와 부부를 탓하기도 애매하다.
고고치킨 여사장 치킨홍의 어린 조카 첸의 사연도 눈물겹다. 외삼촌이 뇌출혈로 쓰러지자 아내인 베트남 여성이 첸을 치킨홍에게 맡기고 출국했는데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적 장애가 있는 배다른 동생 양보를 책임지고 있는 치킨홍에게 첸까지 떠맡겨진 것이다.
산업시설이나 대학이 문을 닫아 황폐해지는 도시가 적지 않은 가운데 가정해체로 홀로서기에 나서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하기도 힘든 야릇하고 안타까운 <내게는 홍시뿐이야> 속 사정은 요즘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각박하지만은 않다. 따스함을 잃지 않는 섬세한 시선으로 남은 자와 떠난 자들의 현실적인 비극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소설 속에 우리나라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베트남 동화 <엄마를 찾아서>가 등장한다. 두 권의 동화에 아이들의 먹거리를 구하러 간 엄마와 호랑이가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란은 첸과 함께 <엄마를 찾아서>를 읽으며 독수리를 타고 숲을 세 번 지나고, 강을 네 번 건너고, 산을 일곱 번 넘어 엄마에게 가는 꿈을 꾼다.가족을 대신하는 타인들하지만 엄마는 아란의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에도 답하지 않는다. 불만도 토로하고 소소한 일상도 전하고 23번 버스 종점에 있는 집 위치를 알려도 엄마는 묵묵부답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홍시를 사서 방안에 쌓아놓고 기다리지만 엄마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아란은 치킨홍과 동생 양보, 조카 첸과 점점 가까워지고 함께 여행을 떠나기까지 한다. 소설은 ‘어쩌면 해수욕장에 가서 휴학생이 아닌 자퇴생의 사연을 치킨홍에게 들려줄지도 모르겠다’로 끝난다.
소설 속 도시의 지명은 나오지 않지만 김설원 작가의 고향인 군산이라는 사실이 스토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된다. 자동차 회사가 문을 닫았고, 일제강점기에 쌀을 일본에 공출당했던 도시가 바로 군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