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파블로 네루다 < 질문의 책 >
<질문의 책>은 1973년 9월 시인이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 달 전에 마무리됐다. 74편의 시가 실린 이 책은 목차부터 기묘하다. 시의 제목이 번호로만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 시집 속 작품의 모든 연은 물음표로 끝나는데 74편의 시에 붙은 물음표가 316개에 이른다.인생은 질문의 연속이다. 어린아이들은 겨우 말하기 시작할 때쯤 질문 폭탄을 던져 엄마들을 진 빠지게 한다. 나이 들수록 차츰 질문이 줄어드는 건 다 알아서라기보다 호기심과 관심이 줄어서일 것이다.
<질문의 책>에서 70세 시인의 궁금증을 따라가다 보면 흥미로운 질문이 곧 삶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질문이 줄어들고 삶이 심드렁하게 느껴진다면 네루다의 질문을 따라가며 나의 호기심을 발동시켜보자.
작품 44에서 시인은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라고 질문하지만 시를 읽다 보면 ‘그 아이’가 칠십이 된 시인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단히 시적이거나, 엉뚱한 상상에서 비롯된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사랑은 어디로 갔지?작품 4에서는 ‘연기는 구름과 이야기 하나?’, 작품 9에선 ‘우리는 구름에게, 그 덧없는 풍부함에 대해/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할까?’라고 질문한다. 구름은 문학작품에서 흔히 ‘덧없음’의 비유로 많이 등장한다. 그 ‘덧없는’ 구름은 대개 ‘풍부’하고, 풍부한 구름은 결국 비가 되어 떨어진다. 작품 3 ‘빗속에 서 있는 기차처럼/슬픈 게 이 세상에 또 있을까?’와 연결되면서 저마다의 생각에 젖어들게 한다.
화산에 대한 질문도 자주 등장한다. 작품 8의 ‘냉혹하고 사납게 불을 내뱉는/화산들을 뒤흔들어 놓는 건 뭘까?’라는 질문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요소다. 작품 69의 ‘사랑에 대한 생각은/꺼진 화산 속으로 떨어지나?/분화구는 복수 행위인가/아니면 지구의 벌인가?/바다에 닿지 못하는 강들은/어떤 별들과 이야기를 계속할까?’를 접하면 화산을 뒤흔든 건 이루지 못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작품 22 ‘사랑, 그와 그녀의 사랑,/그게 가버렸다면, 그것들은 어디로 갔지?’는 연인과 헤어진 사람들이 가장 던지고 싶은 질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랑들이 뭉쳐 분화구가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게 아닐까. 가슴 아픈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런 단정을 내릴 듯하다.
유머러스한 질문도 있다. 작품 14 ‘왜 목요일은 스스로를 설득해/금요일 다음에 오도록 하지 않을까?’ 이 질문은 자칫 원망을 들을 수도 있다. 금요일 다음에 목요일이 오는 건 모두 싫어할 테니까. 작품 40 ‘비둘기들이 노래할 줄 안다면/비둘기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파리들이 꿀을 만든다면/그들은 벌들을 화나게 할까?’를 읽으면 인상을 찡그릴 수도 있다. 비둘기가 많아 날아오르기만 해도 시끄러운데 만약 노래할 줄 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요즘 벌이 많이 줄어서 깨끗한 파리가 꿀을 만든다면 사람들은 환영할 게 분명하다.사색하게 만드는 질문사색하게 하는 질문도 있다. 작품 41 ‘나무가 하늘과 대화할 수 있기 위해/땅에서 배운 게 무엇일까?’ 작품 42 ‘항상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기다리지 않는 사람에 비해 더 고통스러운가?’ 작품 29 ‘슬픔은 진하고/우울은 엷다는 건 사실인가?’ 이런 질문들 앞에서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1904년 칠레 파랄에서 태어나 열 살 때 시를 쓰기 시작한 네루다는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대단한 작가인 그는 작품 31에서 ‘누구한테 물어볼 수 있지 내가/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려고 왔는지?’라고 묻는다. 수많은 작품을 남긴 네루다는 작품 21에서 ‘내가 내 책에 대해 물을 수 있을까/그걸 정말 내가 썼는지?’라고 질문한 뒤 작품 32에서 ‘파블로 네루다라고 불리는 것보다 더/어리석은 일이 인생에 있을까?’라고 말한다.
<질문의 책>을 읽으며 나의 질문의 책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질문을 위해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우리 영혼이 한층 더 풍부해질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