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원권 화폐가 등장하면 열렬히 환영하지 않을까.’ 설 명절 한 연예인이 SNS에 올린 제안이 제법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세뱃돈으로 1만원 주기는 조금 적고, 5만원짜리를 주자니 부담이고, 두 장 세 장 세어서 주자니 좀스럽게 보일까봐 신경 쓰인 경우가 적지 않아 공감을 산 것이다. 고공 물가, 화폐 가치 추락이라는 현실이 반영됐다. 바로 정치권에서 3만원권을 찍기 위한 준비(발행 촉구 국회 결의안)를 하겠다고 움직이면서 언론도 반응했다. 미국 달러와 유럽 유로화가 각각 10·20·50 단위라는 점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1차 주체인 한국은행은 신중한 입장이다. 현금 사용이 현저히 줄어드는 데다 화폐 유통 인프라가 바뀌어야 하고, 여론도 성숙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국민 편의와 국가적 비용이 엇갈리는 3만원권 발행, 공론화해볼 만한가.[찬성] 여전히 사용처 많은 현금 '편의' 높여야…OECD 중 한국만 '1·2·5 화폐 체제' 안 써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되고, 송금도 다양한 방식으로 편리하게 이뤄지는 시대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현금은 유용하게 사용된다. 가령 전통시장에 가보면 아직도 현금 거래가 적지 않다. 각종 종교 단체·시설 같은 곳에서도 현금 기부가 많다. 명절에 어린이·학생에게 세뱃돈이나 용돈을 줄 때, 괜찮은 식당을 비롯해 온갖 종류의 다양한 서비스나 물품 거래에 따른 봉사료(팁)를 주고받을 때도 아직은 현금이다. 갈수록 부담이 커지는 축의금 등 부조 문화에서도 지폐 종류가 더 세분화되면 지출이 편리해진다.
이런 경우에 대응하자면 현금 종류가 다양해지는 게 좋다. 금융 소비자인 국민이 편리하게 실생활에 사용하도록 화폐에서의 ‘선택권’ ‘선택의 자유’ 폭을 넓혀줄 필요가 있다. 개인의 선택이 다양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온라인을 통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3만원권 발행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더 많다.
경제 선진국과도 비교해볼 만하다. 미국은 10·20·50·100달러 지폐를 쓴다. 1·2·5달러 지폐가 있는데도 이렇게 다양하다. 유로화도 10·20·50 체제다. 일본도 1000엔 5000엔 1만엔권과 함께 이전에 발행한 2000엔권이 쓰인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2·5 단위 체제’를 쓰지 않고 바로 1만원·5만원으로 가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그래서 문제라는 게 아니라, 금융·경제 활동에서의 편리 증진 문제다.
5만원짜리가 나온 게 2009년이다. 그것도 1만원권이 나온 뒤 36년이 지나서였다. 화폐 제도에서 편의 도모가 그동안 없었다는 얘기다. 5만원 발행 당시 한은은 “1만원권 발행 이후 물가는 12배, 국민소득은 120배 올라 경제주체의 불편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제 변한 사회상을 반영해 선택의 편의를 더 증진시킬 때가 됐다. 3만원권 발행은 근대 이전의, 경제와는 상관도 없는 인물을 담은 화폐 도안을 혁신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고무적이다.[반대] 한은 정례조사, '부정적' 의견 더 많아…현금 사용 감소, 발행·유통 비용 부담 커화폐는 국민 전체의 상거래, 개인 간 이전거래에 보편적으로 폭넓게 쓰인다. 명절 용돈이나 경조사 현금 주고받기는 용도의 극히 일부분이다. 명절 때 연예인의 감성적 제안 직후 인터넷상의 작은 설문조사에서나 찬성론이 더 나올 뿐이다.
다수 국민을 대상으로 3년마다 정식으로 하는 한은의 ‘화폐 사용 만족도 조사’에서는 2·3만원 발행 수요가 거의 없다. 다수 국민은 화폐 추가 발행에 그만큼 신중하다. 발행 절차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을 거친 뒤 기획재정부(정부)가 승인하면 되지만, 광범위한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발행에 드는 비용과 시간도 만만찮다. 도안을 정하는 데만 최대 1년이 소요되는데, 화폐에 쓸 인물 선정도 어렵다. 위·변조 방지 장치, 시각장애인용 감촉 장치 등까지 갖추자면 새 돈을 내는 데 2~3년이 필요하다. 현행 5만원권도 2006년 12월 국회에서 ‘고액권 화폐 발행 촉구 결의안’이 통과된 지 2년 반 만인 2009년 6월에야 선보였다. 발행에 드는 비용도 적지 않다. 막대한 초기 제작비용에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자판기를 수정·대체하는 데도 추가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경제 규모에 비해 현금 사용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 일본도 과거 2000엔권을 찍었지만 사용이 줄어 지금은 발행을 중단한 상태다.
한국의 경제 규모와 심각해지는 인플레이션 현상을 보면 더 시급한 것은 10만원권 지폐 발행 여부나 리디노미네이션(화폐 액면단위 변경) 논의 시작이다. 10만원권 추가 발행이나 돈 단위 변경도 화폐가치를 하락시키며 인플레 심리를 부추기는 부작용이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2022년 발표된 국민 1인당 월평균 현금 사용액은 51만원(2021년 지출)으로, 2018년의 64만원보다 크게 줄었다. 전체 지출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2%로 신용·체크카드 지출(58%)의 절반도 안 된다. 현금 없는 사회로 더 급속히 이행될 것이다. 이런 판에 막대한 발행비용을 부담할 이유가 없다.√ 생각하기 - 카드·페이 늘어도 현금 필요…'근대 인물'로 화폐 교체, 경제교육 계기로 생활 속에 완전히 정착한 신용카드는 물론 각종 ‘페이 시스템’이 편리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숫자에서 숫자로 바로 옮겨지는 결제 시스템이 아무리 발전해도 현금은 살아남고, 필요도 할 것이다. 혹자는 ‘지하경제’와 범죄 등에 연루된 ‘검은 돈’ 배제를 이유로 현금 없는 사회를 재촉하지만, 현금은 경제주체의 본질적 자유 보장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전산화·온라인화되는 모든 거래는 어떤 식으로든 국가 통제에 들어갈 수 있고, 그런 국가는 결국 빅브러더 사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만원권 발행 논의가 화폐의 존재 여부 차원은 아니지만, 그런 속성의 화폐 제도 본질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3만원권 발행 논의에 앞서 근대 한참 이전의 유학자 등이 주축인 화폐 도안을 근대 이후 인물로 바꾸자는 논의야말로 공론에 부쳐볼 만하다. 이 주장은 경제와 금융, 돈의 진짜 가치를 주목하자는 것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이런 경우에 대응하자면 현금 종류가 다양해지는 게 좋다. 금융 소비자인 국민이 편리하게 실생활에 사용하도록 화폐에서의 ‘선택권’ ‘선택의 자유’ 폭을 넓혀줄 필요가 있다. 개인의 선택이 다양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온라인을 통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3만원권 발행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더 많다.
경제 선진국과도 비교해볼 만하다. 미국은 10·20·50·100달러 지폐를 쓴다. 1·2·5달러 지폐가 있는데도 이렇게 다양하다. 유로화도 10·20·50 체제다. 일본도 1000엔 5000엔 1만엔권과 함께 이전에 발행한 2000엔권이 쓰인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2·5 단위 체제’를 쓰지 않고 바로 1만원·5만원으로 가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그래서 문제라는 게 아니라, 금융·경제 활동에서의 편리 증진 문제다.
5만원짜리가 나온 게 2009년이다. 그것도 1만원권이 나온 뒤 36년이 지나서였다. 화폐 제도에서 편의 도모가 그동안 없었다는 얘기다. 5만원 발행 당시 한은은 “1만원권 발행 이후 물가는 12배, 국민소득은 120배 올라 경제주체의 불편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제 변한 사회상을 반영해 선택의 편의를 더 증진시킬 때가 됐다. 3만원권 발행은 근대 이전의, 경제와는 상관도 없는 인물을 담은 화폐 도안을 혁신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고무적이다.[반대] 한은 정례조사, '부정적' 의견 더 많아…현금 사용 감소, 발행·유통 비용 부담 커화폐는 국민 전체의 상거래, 개인 간 이전거래에 보편적으로 폭넓게 쓰인다. 명절 용돈이나 경조사 현금 주고받기는 용도의 극히 일부분이다. 명절 때 연예인의 감성적 제안 직후 인터넷상의 작은 설문조사에서나 찬성론이 더 나올 뿐이다.
다수 국민을 대상으로 3년마다 정식으로 하는 한은의 ‘화폐 사용 만족도 조사’에서는 2·3만원 발행 수요가 거의 없다. 다수 국민은 화폐 추가 발행에 그만큼 신중하다. 발행 절차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을 거친 뒤 기획재정부(정부)가 승인하면 되지만, 광범위한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발행에 드는 비용과 시간도 만만찮다. 도안을 정하는 데만 최대 1년이 소요되는데, 화폐에 쓸 인물 선정도 어렵다. 위·변조 방지 장치, 시각장애인용 감촉 장치 등까지 갖추자면 새 돈을 내는 데 2~3년이 필요하다. 현행 5만원권도 2006년 12월 국회에서 ‘고액권 화폐 발행 촉구 결의안’이 통과된 지 2년 반 만인 2009년 6월에야 선보였다. 발행에 드는 비용도 적지 않다. 막대한 초기 제작비용에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자판기를 수정·대체하는 데도 추가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경제 규모에 비해 현금 사용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 일본도 과거 2000엔권을 찍었지만 사용이 줄어 지금은 발행을 중단한 상태다.
한국의 경제 규모와 심각해지는 인플레이션 현상을 보면 더 시급한 것은 10만원권 지폐 발행 여부나 리디노미네이션(화폐 액면단위 변경) 논의 시작이다. 10만원권 추가 발행이나 돈 단위 변경도 화폐가치를 하락시키며 인플레 심리를 부추기는 부작용이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2022년 발표된 국민 1인당 월평균 현금 사용액은 51만원(2021년 지출)으로, 2018년의 64만원보다 크게 줄었다. 전체 지출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2%로 신용·체크카드 지출(58%)의 절반도 안 된다. 현금 없는 사회로 더 급속히 이행될 것이다. 이런 판에 막대한 발행비용을 부담할 이유가 없다.√ 생각하기 - 카드·페이 늘어도 현금 필요…'근대 인물'로 화폐 교체, 경제교육 계기로 생활 속에 완전히 정착한 신용카드는 물론 각종 ‘페이 시스템’이 편리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숫자에서 숫자로 바로 옮겨지는 결제 시스템이 아무리 발전해도 현금은 살아남고, 필요도 할 것이다. 혹자는 ‘지하경제’와 범죄 등에 연루된 ‘검은 돈’ 배제를 이유로 현금 없는 사회를 재촉하지만, 현금은 경제주체의 본질적 자유 보장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전산화·온라인화되는 모든 거래는 어떤 식으로든 국가 통제에 들어갈 수 있고, 그런 국가는 결국 빅브러더 사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만원권 발행 논의가 화폐의 존재 여부 차원은 아니지만, 그런 속성의 화폐 제도 본질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3만원권 발행 논의에 앞서 근대 한참 이전의 유학자 등이 주축인 화폐 도안을 근대 이후 인물로 바꾸자는 논의야말로 공론에 부쳐볼 만하다. 이 주장은 경제와 금융, 돈의 진짜 가치를 주목하자는 것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