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한양대학교 논술 분석
한양대 논술은 수능 최저 자격 및 교과를 반영하지 않으며, 논술 총점 합산 시 학생부종합평가에 전체 10% 배점을 두고 있습니다.한양대학교 논술 분석
한양대 논술은 학과에 따라 두 계열로 나눠 치릅니다. 첫째는 인문논술로 1200자의 일반 인문논술을 출제합니다. 둘째는 상경논술로 600자 내외의 인문 글쓰기와 함께 2~3문항의 수리 문제를 출제합니다.
인문계열의 경우 다양한 물음이 한 문항에 복합적으로 엮여 있으며,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와 함께 1200자의 완성된 생각을 만드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접근성이 낮고 경쟁률이 세 합격 점수대도 상당히 높습니다.
반면 경영경제계열(상경계열)은 수리논술이 어렵게 출제되는 편이고, 수학에 대한 인문계 학생들의 성취도 하락 등으로 진입장벽이 있으므로 합격 평균 점수가 낮습니다. 이 경우에는 절대점수를 넘어서면 합격할 수 있으므로, 사실상 경쟁률과 무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수학만 잘해서는 안 되고, 인문논술 50점에서 성취도를 거둬야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2021학년도 수시 1교시 인문계열 기출문제를 다뤄보겠습니다. (셀던의 지도 생략, 기타 분량상 부분 생략) 그 외에도 많은 기출문제와 합격 답안이 학교 입학처 홈페이지에 상세히 공개돼 있으니 참조 바랍니다.
[문제] [가]를 토대로 ‘지도란 무엇인가?’에 대해 답하고, [나]의 추론 방식을 참조하여 [다]의 지도 [A]와 [B]에 나타난 제작자의 관점을 각각 설명하시오. (1200자, 100점)
<가>
지도는 지표면을 일정한 비율로 줄여서 기호를 사용하여 평면에 나타낸 것이다. 문제는 지구라는 3차원 실체를 2차원 평면으로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차이를 감추려고 해도 변형이나 왜곡을 피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지도 제작자의 관점에 따라서 지도는 달라질 수 있다. 지도의 축척, 방위, 지역 명칭, 지도에 표시할 것과 명칭을 정하는 등의 다양한 요소에 걸쳐 제작자의 관점과 의도가 영향을 끼친다. 이처럼 선택된 대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도는 영화와 매우 유사하다. 스크린을 통해 투사되는 영화의 전체 이야기들은 감독이 제작한 선별된 프레임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감독은 포함되어야 할 것과 배제되어야 할 것을 결정한 뒤, 우리에게 포함된 것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지도 역시 영화의 프레임처럼 지구의 일부만을 재구성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도를 보는 사람들이 제작자의 주관적인 관점을 빨리 알아채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도는 저널리즘과도 비슷하다. 지도 제작자는 지도가 신문의 그림이나 삽화처럼 보이도록 방위, 축척, 시점 또는 관측 고도를 자유롭게 바꾸기도 한다. 가령 통계 자료를 지리적인 형태 위에 표현해 강조하는 통계 지도를 보면 국가의 크기나 형태는 잘 알아볼 수 없는 대신 국가나 대륙별로 그려진 경제 활동, 군사력, 인구 통계 등 유용한 정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지도들은 교육적이되 지구의 물리적 사실을 충실하게 표현하는 지도는 아니다.
영화감독이나 저널리스트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심리적,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을 표현하는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자들이다. 이들은 관객들의 의식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해 대상들을 선택하고, 배열하고, 해석한다. 이야기의 ‘줄거리’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에 따라 ‘사실’들이 선별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세계관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상황을 반영하며 문화적인 제한을 받는다. 그래서 관객들은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언어를 통해 이야기를 조정할 때 편견이 끼어드는 것도 피할 수 없다. 이때 저널리스트가 주로 단어에 의존한다면 지도 제작자들은 기호, 색상, 지면 등을 자신들의 언어로 사용한다. 이 두 경우 모두 정보는 의사소통 과정을 통해 전달되며, 전달하는 사람 밖으로 투사된 것은 객관성을 가장한다. 지도 제작자의 관점과 의도를 고려해 본다면 지도의 객관성은 사실 신화에 가깝,<다.
<나>
2008년 1월, 영국사를 전공하는 로버트 베첼러 교수가 옥스퍼드대학 보들리안 도서관의 지하 수장고에서 놀라운 지도를 하나 발견하였다. 1659년 영국의 법률가 존 셀던이 대량의 책과 필사본을 기증할 때 함께 입고된 지도였다. 중국사를 전공하는 티모시 브룩 교수에 따르면 이 지도는 1608년 무렵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지도 위쪽 중앙에는 나침도(나침반 그림)가 있고 그 밑에 눈금자가 있는데, 눈금자는 단순 장식이 아니라 실제 축척을 반영한 것으로 눈금자의 1촌(3.75㎝)은 4노트의 속도로 하루를 항해한 거리였다. 본래 사각형 지도는 항로를 표시하기에 적당하다.
지도에 나타난 항로와 항로가 지나는 지명을 보면 중국과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해상 유통망의 항로는 타이완의 맞은편인 중국 동남부에서 출발하는데, 동쪽으로 항해하여 필리핀에 도착한 뒤 남쪽 방향의 향료제도까지 연결되는 동양 노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거쳐 인도양을 향하는 서양 노선이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노선이다. 그런데 이 지도에는 특이하게 류큐, 고베, 나가사키로 연결되는 북양 노선이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셀던의 지도를 확보한 인물은 1610년대까지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던 영국 동인도회사의 사령관일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주목할 점은 중국이 본래 모습대로 표현되지 않았고, 중국 내륙에 28숙이라는 별자리를 그렸다는 점이다. 야간 항해를 위해서는 별자리가 더 중시된다는 점, 육지의 형태가 부차적인 것에 가까웠다는 점을 고려하면 셀던의 지도는 진정한 지도가 아니라 항로를 보여주기 위한 해도였다고 보인다.
또 지도에는 남중국해의 몇몇 섬들이 표시되어 있지만 오직 해안을 따라가는 경로와 만나는 곳에만 그려져 있을 뿐이며, 해양 부분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 지도 제작자는 곡선을 평면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왜곡을 암초지역이나 일부 해역으로 집중하는 대신 선주들의 거래 지역인 그 주변의 도서 지역이나 해안을 더 정확히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셀던의 지도는 철저하게 상업적인 관심과 해양적 관점을 가지고 그려진 해도였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아무런 제국의 영토적 욕망이나 영유권과 관련된 내용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 지도는 누가 어디에서 그렸는가? 지도에 중국어가 표기된 점, 중국을 중앙 위쪽으로 배치한 점, 중국을 그릴 때 기존의 중국 지도를 이용한 점을 감안하면 제작자는 중국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인이었다고 해도 그가 꼭 중국에서 이 지도를 그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제작자가 현지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지역이 어디였을지 생각해 보자. 먼저 나가사키가 그려진 일본은 엉터리로 그려져 있고, 남쪽으로 내려가 필리핀은 마닐라가 잘 그려져 있지만 루손 섬 이하는 대단히 혼돈스럽다. 지도 제작자에게 익숙한 항로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지도에서 지리 정보가 가장 정확한 부분은 지도 절반 남쪽 지역, 자바의 전면 즉 반탐이나 자카르타인 것 같다. 그렇다면 반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탐은 16세기 이 해역에 도달하는 유럽인들의 주된 교역 장소였기 때문이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