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부모님을 일찍 여읜 핍은 자신보다 나이가 스무 살이나 많은 누나 집에 얹혀산다. 핍에게 자주 손찌검을 하는 누나는 솥뚜껑만 한 손바닥으로 남편도 퍽퍽 때릴 정도로 과격하다. 대장장이인 매형 조와 핍은 함께 수난을 받으면서 비밀을 공유할 정도로 친해졌다. 아무리 마음씨 좋은 매형이 있다 해도 누나에게 구박받으며 희망 없는 삶을 살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나에게 진짜 부모가 있어서 어느 날 짜잔 하고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나에게 큰 유산을 남겼다면 그 돈으로 뭘 할까.’
핍에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낯선 변호사가 조의 지도 아래 4년째 대장장이 훈련을 받고 있던 핍을 찾아와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으니 즉시 일을 그만두고 신사 교육을 받으러 가자”고 말한다.
찰스 디킨스가 1861년 출간한 <위대한 유산>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췄다는 평가 아래 오늘날까지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차례 이상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된 이 소설은 ‘영국 독자들이 뽑은 가장 귀중한 책’ ‘한국 문인이 선호하는 세계명작소설 100선’ 등 다양한 기록도 갖고 있다. 이 소설이 주간 잡지 ‘연중일지’에 연재될 때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도 작품에 푹 빠져 디킨스를 흠모했다고 한다. 누가 재산을 남긴 걸까 <위대한 유산>의 어떤 면이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걸까. 우선 160년 전 발표된 소설임에도 소설 속 인물과 그들의 행동, 여러 갈등이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친근하고 생생하다. 추리 기법을 통원한 흥미로운 전개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행운이 다가오기 전 모든 게 암담했던 핍에게 벌어진 두 번의 중요한 사건이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부모님 묘지에 갔다가 죄수와 마주친 뒤 그의 부탁으로 빵과 줄칼을 가져다준 일과 미스 해비셤의 대저택에 출입한 일이다. 으스스한 집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아름다운 소녀 에스텔라를 본 핍의 마음이 흔들린다. 동시에 자신이 비천한 노동자 집안 출신에 무식하고 천박하다는 생각과 함께 행색이 보잘것없어 부끄러움을 느낀다.
자격지심 속에서 사춘기를 보내던 핍에게 놀라운 행운이 찾아왔고, 변호사가 엄청난 유산을 물려준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으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가난하고 보잘것없었던 핍은 공부하는 동안 매달 적지 않은 생활비를 받는다. 궁핍했던 지난날에 복수라도 하듯 핍은 주거지를 두 군데 마련하고 하인을 고용하는 등 낭비를 일삼다가 빚까지 지게 된다. 더 실망스러운 건 조가 런던을 방문했을 때 그를 창피하게 여기고, 고향에 갔을 때 누나 집 대신 호텔에 묵으며 도련님 행세까지 한다.
핍은 자신을 지원하는 사람이 미스 해비셤일 것으로 추측하지만 전혀 엉뚱한 사람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점점 더 달궈진다. 또한 자신을 이용하기만 하는 차갑고 도도한 에스텔라를 둘러싼 거대한 비밀도 알게 된다. 몰락한 핍이 얻은 교훈빚이 쌓여 어려움을 겪던 핍에게 더 이상의 지원은 없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핍이 처절하게 몰락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일어나는 사건들도 흥미롭다. 어느 날 엄청난 행운이 쏟아졌지만, 그 행운 속에서 오히려 타락했던 핍은 돈을 다 잃고 나서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 돈이 아닌 올바른 시각을 갖게 된 것이 핍에게 위대한 유산이었던 셈이다.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굉장히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이 연이어 일어난다. 900쪽이 넘는 완역본을 읽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믿을 만한 축역본을 선택하는 게 차선책인데,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로서 제2대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을 지낸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을 읽고 시간이 날 때 완역본을 완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 시대에 힘을 기를 방법은 ‘독서’라는 게 인류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위대한 유산>은 다양한 인물의 삶을 통해 현명한 선택이 무엇인지 깨닫게 만드는 책이다. 또한 ‘나에게 갑자기 행운이 쏟아진다면 어떻게 행동할까’를 저절로 생각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