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경희대 논술 분석 (2)
지난 시간 제시한 경희대 2022학년도 수시 기출문제(생글생글 9월 26일자 16면)를 풀어보겠습니다.경희대 논술 분석 (2)
[논제I] [다]의 시각에서 [가]와 [나]의 상황에 대해 평가하시오. [701자 이상 ~ 800자 이하: 배점 40점]
답안을 구체적으로 구상하기 전 모든 문제에 ‘주제와 논지’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제란 ‘중심이 되는 문제’입니다. 하나의 제시문이 하나의 주제를 갖는 것처럼, 하나의 문제도 하나의 주제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시문 (다)를 중심으로 (가)와 (나)를 훑어보면서 제시문들이 공유하고 있는 주제를 포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준제시문인 (다)는 뉴올리언스의 사례를 보여줍니다. 이 제시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인용해볼까요? ‘그들의 이름 자체가 상호부조와 기쁨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인간관계 안에서 서로를 묶어주는 유대가 의무인 동시에 축복임을 보여준다. 뉴올리언스 사람들은 잦은 축제 속에서 전통과 고향과 서로에 대한 유대를 새롭게 다졌다.’ 이 제시문은 공동체 속 상호부조와 축제를 통한 유대적 관계를 보여주고자 하네요. (가)와 (나)까지 훑어보니 ((가)는 정확히 이해되지 않았더라도 (나)는 어느 정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죠?) 공통 주제가 ‘건전한 관계맺음’에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TIP1]여기서 힌트를 얻어 대상제시문 (가)와 (나)를 이해해보도록 하죠. (가) 제시문은 당황스럽죠? 마치 여러분이 즐겨 듣는 음악에서 가끔 다른 곡이나 뮤지션을 오마주하듯, 이 시도 김춘수 시인의 ‘꽃’을 활용해 현대인들의 인간관계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시적 화자는 다른 이와 관계를 맺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런 관계는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관계입니다. 학교 측 해설에 따르면 이 시는 원작의 꽃 대신 라디오, 버튼, 전파 등의 현대 문명이 발명한 소재를 활용해 현대사회의 관계와 사랑에 대해 풍자합니다. 또한 버튼 조작처럼 자기 입맛대로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가벼운 사랑이 주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연결을 갈구하고 나의 의지대로 하길 바란다는 점에서 긍정적 묘사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밝혔어요. 두 갈래의 해석 중 한쪽을 [다]와의 관계 안에서 논리적 비약 없이 설명했다면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1. 한 문제에 엮여 있는 제시문들을 훑어보자
2. 기준제시문 (다)부터 읽는 것도 방법이다. 기준제시문은 뚜렷한 핵심논지를 갖고 있기 때문
3. ‘기준제시문=전체 주제’로 이해하고 대상제시문에 대입하면서 윤곽을 잡아보자
[TIP 2](나) 제시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가)에 비해 명확합니다. 따라서 (가)를 해석할 때 더 명료했던 (나)와 대조하며 힌트를 얻어볼 수도 있겠네요. (나)는 한국 사회에서의 인간관계가 타인의 시선에 너무 신경 쓰는 나머지 모멸감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자, 이렇게 일단 각 제시문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면, 문제의 요구사항인 ‘평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문학작품의 해석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고,
논리적으로 근거를 들어 생각한 바를 증명하라
학교는 채점 기준을 아래와 같이 운용하고 있습니다. 요구사항에 대해 10점씩 부여해 모듈형으로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이게 경희대 합격 평균이 상향 평준화되는 이유기도 합니다. 평균 90점 전후로 형성되는 경희대 문항에서 합격 점수를 얻으려면 하나하나의 조건을 염두에 두면서 ‘점수를 얻을 글쓰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희대 1번 채점 기준]
(0)제시문 [다]의 의미를 정확하게 논리적으로 이해했으면 10점 가점.
① 제시문 [다]와 [나]가 반대되는 관점임을 인식하고 적절하게 비판했으면 10점 가점.
② 제시문 [다]의 시각에서 [가]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적절하게 서술했으면 10점 가점.
③ 비슷한 뜻의 문장을 반복하거나 제시문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 쓰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내용을 통일감 있고 조리 있게 서술했으면 10점 가점(창의성 및 표현력 등을 중시).
하나씩 답안의 내용을 마련해보도록 합시다. 우선 (다)를 바탕으로 할 때 (가)는 전반적으로 옳다고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연결되기를 희망한’ 점에 대해서는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로 인정해줄 만한 여지가 있습니다. 그럼 아래와 같이 답안을 구상해보겠습니다.
[답] 부분적으로는 인정할 만한 여지가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건강한 관계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해 근거를 구체적으로 써볼까요?
[근거] 서로 관계맺기를 원하는 화자의 희구는 유대를 다질 수 있는 시작점으로써는 가치 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것은 서로 돕고 진정한 상호부조의 연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관계를 맺거나 끊어낼 수 있는 관계일 뿐이다. 여기에서 서로 기쁨을 나누는 모습을 관찰하기 어렵다.
[결과 추론·비판 보완] 이런 관계맺음은 제대로 된 공동체의 연대적 발전과 결핍의 소거가 아니라, 단지 특정 개인에게만 의미있는 일회적 관계만 구성하게 만들 것이다. 이처럼 비판의 내용을 구성하는 방법을 단계적으로 반복해 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TIP 3]위와 같은 형태로 (나)에 대해서도 평가하면 아래와 같이 답안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1. 기준제시문과의 관계를 살피며 답을 분명히
2. 근거를 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기술
[종합] [다]는 건강한 관계맺음이 개인과 사회에 안겨주는 근본적 변화를 보여준다. 이는 뿌리 깊은 빈부격차와 인종주의에도 불구하고 빈번한 음악 축제로 인해 결핍이 상쇄되는 뉴올리언스의 모습에서 구체화된다. 사람들은 축제를 통해 음악을 매개로 모두가 동등한 관계의 통로를 마련하고 차별화, 계층화된 사회를 극복해나간다. 축제는 상호 부조와 유대감을 형성하고 개인에게 잊지 못할 기쁨을 안겨주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할 때 [가]의 문제점이 보인다. [가]는 현대인들의 얄팍한 인간관계를 풍자한다. 화자는 타인과 연결되기를 갈망하고 있으나,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전에는 피상적 관계에 머무르고 소외된 상태다. 설령 서로 연결되더라도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켜는 관계를 희망하고 있다. 이는 건강한 관계맺음을 제시한 [다]의 모습과 결이 다르다. 서로 관계맺기를 원하는 화자의 희구는 유대를 다질 수 있는 시작점으로써는 가치 있으나, [다]처럼 진정한 상호부조의 연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관계를 맺거나 끊어낼 수 있는 관계일 뿐이다.
한편 [나]는 남들과의 관계 속에서 비교하며 스스로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형성하는 한국 사회를 분석한다. 타인에 대한 차별의식으로 모멸감을 안겨주거나 스스로 모멸감을 느끼는 한국인들의 인간관계는 불행하고 피곤하다. 이러한 [나]의 상황 또한 [다]의 인간관계와 거리가 멀다. [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나]의 한국 사회는 뉴올리언스의 축제 이전 상태와 마찬가지라고 진단된다. 한국 사회의 관계는 뿌리깊은 격차를 만드는 인간관계로, 서로 차별하고 동등성을 포기하며 개인에게도 어떠한 기쁨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관계를 조정하지 않으면, 개인들은 남과의 끝없는 비교와 외로움 속에서 피폐해질 것이고 사회도 자본주의적 경쟁의 논리에 침식되어 점차 통합으로부터 멀어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