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관리법 개정안으로 2022년 정기국회가 요란스럽다. 신문 지면에는 ‘쌀 의무매입법’이라고도 나오고, ‘쌀 시장격리법’이라는 냉소 섞인 표현도 나온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이 법안은 정부가 예산을 써 쌀값 수준을 어느 선에서 의무적으로 유지하라는 것이다. 쌀 생산량이 국내에서의 예상 수요량보다 3% 이상 많거나 쌀 가격이 전년도보다 5% 넘게 떨어지면 정부가 의무적으로 초과 물량을 사들여 ‘시장격리’(매입 후 보관하면서 일부 재판매)를 하라는 것이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국제 가격보다 높은 쌀값을 유지할 예산 여력이 있느냐는 것, 다른 곡물과 육류 등 식량 자급률이 계속 떨어지는데 쌀에만 이런 지원을 하는 건 맞지 않다는 것이 반대의 주된 논리다. 연간 1조원 이상 드는 비용 때문에 포퓰리즘 논란까지 유발한 정부의 쌀 의무 매입, 타당한가. [찬성] 시장 상황 따라 생산량 조절 어려운 곡물, 쌀의 특수성 감안해야국내 쌀값 하락으로 생산 농가의 어려움이 커졌다. 심각해지는 인플레이션으로 모든 물가가 고공 행진하는 와중에 쌀값은 하락세를 보여 농민들의 허탈함은 더 크다. 지난해 수확기에 비해 30%가량 가격이 내렸다. 2021년산 재고 물량이 전국 곳곳에 쌓여 있어 쌀 수확기에 접어들면 가격 하락세는 더 심해질 수 있다. 생산에 들어간 비룟값과 인건비를 고려하면 농민들은 상당한 수준의 적자를 안게 됐다. 오죽하면 땀 흘려 생산한 벼를 트랙터로 갈아엎는 농민까지 나타났겠나. 정부가 농민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동안도 정부의 시장격리 조치는 있었다. 다만 임의조항인 이 대책을 의무조항으로 바꿔 생산량이 초과되면 정부가 자동으로 개입해 격리하자는 정도에, 최저가 매입 방식을 농민 편에 서서 변경하자는 게 법 개정 사항의 전부다. 시장의 기능이 중요하지만 농산물, 특히 전통적 주식인 쌀에 대해서만큼은 시장 논리로 해결할 수 없는 고유의 특성이 있다. 과거 통상 개방 과정에서 정부가 다른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외국 쌀을 도입하기로 한 적 있으니 농민에게 그만큼 계속 보상해줘야 할 이유도 있다. 지난해 국내 초과 생산량이 27만t이었는데 정부가 수입해야 하는 물량이 40만t에 달하니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차원도 있다.
쌀은 시장 상황에 따라 생산량을 쉽게 늘리거나 줄이기 어려운 중요한 곡물이다. 경작지가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논도 감소하고 있다. 생산 녹지는 한 번 줄어들면 복구 불능이기 때문에 단기간의 과잉 생산 논란도 큰 의미가 없다. 결국 정부가 나서 생산이 넘치면 사들이고, 부족하면 저축 물량을 푸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기능의 시장격리에는 소요 예산을 집행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쌀 주산지인 전국 8개 지역의 도지사가 국회를 방문해 ‘쌀값 안정대책 마련 촉구’ 성명을 낸 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쌀을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 더 방치해선 곤란하다. [반대] 구매 비용만큼 보관 비용도 막대…'전략 작물'로 전환 등 구조조정이 해법2021년 과잉 생산 37만t을 시장격리하는 데 든 예산만 8489억원이었다. 올해는 50만t이 초과 생산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1조원 이상의 매입 예산이 필요하다. 구매 비용만 이 정도다. 보관하는 데는 오히려 더 많은 막대한 비용이 든다. 한 해 만에 비축 물량이 다 소화되는 것도 아니다. 매년 쌀이 남아도는 탓에 사들인 쌀을 팔아 자금을 회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범정부 차원에서 긴축재정을 외치고, 지출 예산 줄이기로 마른 수건도 다시 짜는 판에 이런 비용을 지출해야 하나. 가뜩이나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매우 어렵고, 이 불황은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쌀에 대해서만 유독 특별한 지위를 두자는 논리도 어불성설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밥 소비량은 계속 줄어들고 밀가루 제품이나 육류 소비는 급증하고 있다. 콩을 비롯한 기타 곡물도 대부분 수입에 기대는 판이다. 쌀 생산량은 소비량을 훨씬 넘어서는데 식량 자급률은 떨어지는 게 무서운 현실이라면 답은 정해져 있다. 쌀 생산을 줄이고 다른 농작물과 육류 생산을 늘려야 한다. 정부가 매년 시장 가격과 동떨어진 무리한 가격으로 쌀을 수매해주니 농민은 이 구매 제도를 믿고 과잉 생산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쌀값도 교통비도 모두 나라가 책임지라는 식이면, 정부가 지출하는 자금은 어디서 나오나.
‘정부 강제 구매’로 과잉 생산을 부추기며 농업 현실을 악화시킬 게 아니라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스마트팜 확대, 전략적 작물 확충, 기업의 농업 진출 허용·유도 등으로 농업 구조조정에 나서는 게 정공법이다. 농사짓기 편하다고, 익숙한 경작법이라고, 주식에서 오래전에 멀어진 쌀만 생산해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먹거리 대책이 되기 어렵다. 더구나 식량 수입량은 갈수록 늘고, 비용도 기하급수로 증가한다. 현실성 있는 식량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 당장 쌀 경작 논에 다른 경제성 있는 작물 재배를 유도해야 한다. 농업지원 비용은 이런 데 써야 한다. √생각하기 - 소비 급감으로 쌀은 남는데 밀 99.5%, 콩 63.2% 수입… 농업, 첨단산업화 모색해야2021년 22만원을 넘었던 80㎏ 쌀 한 가마니 가격이 1년 만에 16만7000원 선으로 떨어졌으니 농민의 시름이 깊어진 것은 사실이다. 1991년 116.3㎏에 달했던 1인당 소비량이 2012년 69.8㎏, 2021년에는 56.9㎏으로 수요가 떨어지는데도 공급은 그대로니 자연스러운 결과다. 정부 구매라는 임시방편책이 아니라 쌀 농가가 다른 전략 작물로 관심을 돌리도록 유도 정책을 적극 쓰지 않은 탓도 크다. 정부가 시장격리에 나선다 해도 농민 구매 요구 물량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 언제까지 정부가 과잉 생산량을 사들일 수도, 줄어드는 소비량을 확 늘릴 수도 없다. 단기 대책에서 벗어나 한국 농업의 체질 개선을 이뤄야 한다. 쌀은 남아도는데 밀은 99.5%, 콩도 63.2%나 수입해 식량 자급률이 20%에 그친다면 답은 나와 있다. 무조건 경작지 보호보다 농지의 효율화를 꾀하고, 농업이 첨단산업이 되도록 기업 진출 길도 터나가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그동안도 정부의 시장격리 조치는 있었다. 다만 임의조항인 이 대책을 의무조항으로 바꿔 생산량이 초과되면 정부가 자동으로 개입해 격리하자는 정도에, 최저가 매입 방식을 농민 편에 서서 변경하자는 게 법 개정 사항의 전부다. 시장의 기능이 중요하지만 농산물, 특히 전통적 주식인 쌀에 대해서만큼은 시장 논리로 해결할 수 없는 고유의 특성이 있다. 과거 통상 개방 과정에서 정부가 다른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외국 쌀을 도입하기로 한 적 있으니 농민에게 그만큼 계속 보상해줘야 할 이유도 있다. 지난해 국내 초과 생산량이 27만t이었는데 정부가 수입해야 하는 물량이 40만t에 달하니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차원도 있다.
쌀은 시장 상황에 따라 생산량을 쉽게 늘리거나 줄이기 어려운 중요한 곡물이다. 경작지가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논도 감소하고 있다. 생산 녹지는 한 번 줄어들면 복구 불능이기 때문에 단기간의 과잉 생산 논란도 큰 의미가 없다. 결국 정부가 나서 생산이 넘치면 사들이고, 부족하면 저축 물량을 푸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기능의 시장격리에는 소요 예산을 집행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쌀 주산지인 전국 8개 지역의 도지사가 국회를 방문해 ‘쌀값 안정대책 마련 촉구’ 성명을 낸 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쌀을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 더 방치해선 곤란하다. [반대] 구매 비용만큼 보관 비용도 막대…'전략 작물'로 전환 등 구조조정이 해법2021년 과잉 생산 37만t을 시장격리하는 데 든 예산만 8489억원이었다. 올해는 50만t이 초과 생산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1조원 이상의 매입 예산이 필요하다. 구매 비용만 이 정도다. 보관하는 데는 오히려 더 많은 막대한 비용이 든다. 한 해 만에 비축 물량이 다 소화되는 것도 아니다. 매년 쌀이 남아도는 탓에 사들인 쌀을 팔아 자금을 회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범정부 차원에서 긴축재정을 외치고, 지출 예산 줄이기로 마른 수건도 다시 짜는 판에 이런 비용을 지출해야 하나. 가뜩이나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매우 어렵고, 이 불황은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쌀에 대해서만 유독 특별한 지위를 두자는 논리도 어불성설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밥 소비량은 계속 줄어들고 밀가루 제품이나 육류 소비는 급증하고 있다. 콩을 비롯한 기타 곡물도 대부분 수입에 기대는 판이다. 쌀 생산량은 소비량을 훨씬 넘어서는데 식량 자급률은 떨어지는 게 무서운 현실이라면 답은 정해져 있다. 쌀 생산을 줄이고 다른 농작물과 육류 생산을 늘려야 한다. 정부가 매년 시장 가격과 동떨어진 무리한 가격으로 쌀을 수매해주니 농민은 이 구매 제도를 믿고 과잉 생산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쌀값도 교통비도 모두 나라가 책임지라는 식이면, 정부가 지출하는 자금은 어디서 나오나.
‘정부 강제 구매’로 과잉 생산을 부추기며 농업 현실을 악화시킬 게 아니라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스마트팜 확대, 전략적 작물 확충, 기업의 농업 진출 허용·유도 등으로 농업 구조조정에 나서는 게 정공법이다. 농사짓기 편하다고, 익숙한 경작법이라고, 주식에서 오래전에 멀어진 쌀만 생산해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먹거리 대책이 되기 어렵다. 더구나 식량 수입량은 갈수록 늘고, 비용도 기하급수로 증가한다. 현실성 있는 식량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 당장 쌀 경작 논에 다른 경제성 있는 작물 재배를 유도해야 한다. 농업지원 비용은 이런 데 써야 한다. √생각하기 - 소비 급감으로 쌀은 남는데 밀 99.5%, 콩 63.2% 수입… 농업, 첨단산업화 모색해야2021년 22만원을 넘었던 80㎏ 쌀 한 가마니 가격이 1년 만에 16만7000원 선으로 떨어졌으니 농민의 시름이 깊어진 것은 사실이다. 1991년 116.3㎏에 달했던 1인당 소비량이 2012년 69.8㎏, 2021년에는 56.9㎏으로 수요가 떨어지는데도 공급은 그대로니 자연스러운 결과다. 정부 구매라는 임시방편책이 아니라 쌀 농가가 다른 전략 작물로 관심을 돌리도록 유도 정책을 적극 쓰지 않은 탓도 크다. 정부가 시장격리에 나선다 해도 농민 구매 요구 물량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 언제까지 정부가 과잉 생산량을 사들일 수도, 줄어드는 소비량을 확 늘릴 수도 없다. 단기 대책에서 벗어나 한국 농업의 체질 개선을 이뤄야 한다. 쌀은 남아도는데 밀은 99.5%, 콩도 63.2%나 수입해 식량 자급률이 20%에 그친다면 답은 나와 있다. 무조건 경작지 보호보다 농지의 효율화를 꾀하고, 농업이 첨단산업이 되도록 기업 진출 길도 터나가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