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지난 시간에 제공했던 이화여대 최근 기출 논제(2021학년도 수시 1교시) 중 부분 문제의 해설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답은 자유 분량이므로, 시간 안에 쓸 수 있다는 전제하에 풍부하게 풀어낼 수 있으면 더 좋겠죠. 따라서 제시문에서 몇 개의 핵심어만 찾아 기계적으로 답안을 쓰려 하지 말고, 글감을 바탕으로 글의 의미나 논리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고 답안을 구상해야 합니다.1. 제시문 [가]의 ‘복종’의 의미를 설명하고, 이와 관련된 두 가지 감시 기제를 제시문 [나]에서 찾아 비교하시오. (분량 자유)첫 번째 유형은 적용 설명과 비교의 융합형 문제입니다. 이런 형태는 이화여대 논술에서 잦은 빈도로 출제되는 유형이며, 동시에 비교를 출제하는 많은 학교(대표적으로 연세대 등)에서도 나오므로 익혀두면 쓸 곳이 많습니다.

제시문 [가]는 ‘마녀사냥’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유럽 근대화 초기에 수많은 약자를 희생양으로 만든 이 비합리적 광풍은, 역사책의 한구석을 장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근대 세계에서도 나타납니다. 왜 그럴까요? 지문에 따르면 그것은 중세의 특수한 역사적 조건 때문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한 집단이 권위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행사하는 자의적 처벌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즉 근대의 핵심 주체인 ‘국가’는 복종을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하므로, 마녀사냥은 지금도 자행되는 ‘근대적 현상’이라는 것이죠. 이런 시선으로 역사적 사건을 이해하는 경우가 있죠.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계급제도는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도 ‘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을 살펴보면 노동을 통한 소득으로 더 높은 자산분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0%에 수렴하므로 부를 중심으로 한 격차가 뚜렷해지고 있고, 이것은 신분의 벽만큼이나 높은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죠.

[가]는 마녀사냥을 이런 이해방식과 같은 관점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먼 과거를 볼수록 먼 미래를 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는 방식은 종종 경탄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렇다면 ‘복종’이라는 것은 복종하는 주체가 합리적으로 판단해 결정한 행동이 아니라, 국가와 같은 권위적 지배주체가 일방적으로 만든 ‘규율’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더 나아가면 그런 규율을 ‘내면화’하는 것이 복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하면 두 감시기제는 근대 권력이 다수를 복종하게 만드는 방식인 전통의 ‘패놉티콘’과 최근의 ‘전자 패놉티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은 모두 근대적 감시의 원리와 목적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 기제 모두 국가 구성원을 균질적으로 만들어 복종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교실 내에 감독 카메라가 달려있어서 늘 ‘감시받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럼 일상적인 행동은 그대로 하겠지만, 위험한 행동을 하기는 어렵겠죠? 스스로 계속 ‘어디선가 감시하고 있겠지?’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죠. 실제로는 감시하고 있지 않아도 감시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를 규율하게 되는 상황! 그럼 학교는 일사불란한 질서를 쉽게 형성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근대 권력의 통제방식인 셈이죠. 또한 패놉티콘과 전자 패놉티콘은 모두 패놉티콘이라는 공통점을 갖네요. 즉 감시의 시선은 비가시적이고, 비대칭적으로 한쪽이 시선의 우위에 있기에 감시와 복종적 질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차이점도 있어요. 전자 패놉티콘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다는 기본적 특성 외에 실제 ‘눈’이 필요없다는 것, 즉 가상세계에서의 정보를 바탕으로 한 감시이므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게 두드러진 차이점입니다. 이를 글로 쓰면 아래와 같이 기술할 수 있겠어요.

[답안] 종은 복종 주체가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한 행동이나 신념이 아니라, 국가와 같은 권위적 지배주체가 일방적으로 만든 규율의 내면화라고 볼 수 있다. [가]는 중세 마녀사냥이 근대 국가에게도 자행되는 근대적 성격의 억압이라고 말하며 근대 국가 속에서의 비근대적 폭력을 고발한다. 이에 따르면 근대 국가의 ‘복종’도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다. 권력적 강자인 국가 중심의 통제와 억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에 두면 두 감시기제인 ‘패놉티콘’과 ‘전자 패놉티콘’에 대해서 다른 각도로 비교할 수 있다. 두 감시기제는 모두 원형교도소인 ‘패놉티콘’의 기본적 성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즉 감시의 시선이 비가시적이라서 눈치채기 어렵고, 한쪽의 시선이 우위에 있는 비대칭성으로 인해 감시와 복종적 질서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복종’이라는 근대적 감시의 원리와 목적하에 있다. 두 기제 모두 국가 구성원을 균질적으로 만들어 복종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이점도 존재한다. 패놉티콘은 기본적으로 실제 시선을 필요로 한다. 근본적으로 물리적 세계에서의 통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 패놉티콘’은 가상세계에서의 정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패놉티콘보다 훨씬 광범위한 대상을 일률적으로 감시할 수 있고 효율적으로 질서를 수립하게 된다. 이는 국가질서의 입장에서는 약진이겠으나, 개인 자유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퇴보라고 볼 수 있다.2. 제시문 [바]의 ①-②의 관계와 제시문 [사]의 ③-④의 관계를 대비하여 논하시오. (분량 자유)우선 [바]는 영어 제시문이므로 해석부터 해야겠습니다.
[참조] 영어 제시문을 출제하는 대표적 계열: 연세대(전계열) 이화여대(인문1 계열) 경희대(사회 계열) 한국외국어대(인문 계열)
[해석] 토마토는 어디에서나 사랑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요리사들은 토마토를 이용해 마술처럼 요리합니다. 토마토에는 4000가지가 넘는 종류가 있고, 먹는 방법도 많습니다. 토마토가 없다면 우리는 토마토케첩이나 피자를 먹을 수 없을 것입니다. 스파게티 맛도 예전 같지 않겠지요. 토마토는 감자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채소입니다. 하지만 잠깐, 이게 정말 채소인가요?

“누가 신경써?”라고 생각하겠죠. 그러나 이 질문은 1890년대 미국의 최고법원에서 나온 적이 있습니다. 정부는 토마토를 채소로 간주하고 토마토에 10%의 수입세를 부과했습니다. 반면에 수입업자들은 토마토가 과일이며 세금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질문은 대법원까지 갔습니다. 재판관들은 결정하기 전에 과학과 토마토의 일상적인 사용을 검토했습니다. (The justices looked at both ① science and ② the daily use of tomatoes before deciding.) 그들은 과학적으로 말해서 토마토가 씨앗을 보관하는 식물의 일부였기 때문에 과일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토마토를 채소로 취급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디저트가 아니라 고기나 생선과 함께 토마토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893년 법원은 관세법에 따라 토마토를 채소로 간주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래서 수입업체들은 관세를 계속 내야 했습니다.

이를 바탕에 두면 두 관계를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아래는 학교 측의 발표 답안 일부입니다.

프라임리더스 
인문계 대표강사
프라임리더스 인문계 대표강사
[답안] 제시문 [바]의 과학과 사회적 관습은 각각 제시문 [사]의 자연적 사실과 사회적 사실과 유사하게 보인다. 그러나 제시문 [바]의 과학이 가치중립적으로 제시되고 사회적 관습과는 별개의 영역으로 상정된 반면, 제시문 [사]의 자연적 사실은 사회적 인식이 개입한 선별적 연구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제시문 [사]는 자연적 사실이 가치중립적이지 않고 사회적 사실의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다시 사회적 사실을 정당화하는 순환적인 구조가 가능함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례에서 드러나는 바는 과학이나 자연적 사실이 가치중립적일 수 있으나, 사회생물학과 같이 자연적 사실에 기초하여 사회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연적 사실의 발견 과정 및 전제나 해석 방법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증명된 자연적 사실의 체제에 안주하지 말고 부단히 새로운 자연적 사실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