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오늘은 서강대 인문논술 편입니다. 서강대는 계열별로 차이를 보이는데, 영어제시문이나 수리논술이 출제되지는 않지만 계열별 출제 주제의 특성 차이는 분명합니다.
100분에 1800자(900자 분량의 두 문항)이므로, 다른 학교에 비해 분량이 적은 편이고 제시문도 난해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서강대 인문논술의 합격답안 만들기는 꽤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학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8개년간 발표 자료 참조)“합격에 못 미치는 중간 구역에 속하는 답안은 논술 문항에서 제시된 요구조건에 의지한 기계적인 단락 구성을 취하는 답안이다. 논술 문제의 요구조건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하더라도, 각각의 단락이 전혀 연결되지 않는 등의 글쓰기는 답안에 깊은 생각을 담은 것으로 볼 수 없다. 또한 요약할 부분이나 강조할 부분을 구분하는 데 실패하고 그저 완성하기에 급급해 보이는 답안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편 제시문에서 나온 어휘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문제다. 제시문을 반복해서 말할 뿐 별다른 고민 없이 단어를 사용한다면 문제 상황에 대해 어떤 내용도 자신의 생각으로 밝히지 못하는 셈이다.”
즉 자신의 생각과 어휘가 뚜렷하게 반영된, 완성된 융합형 글쓰기를 요하고 있습니다. 대신 수리논술도 없고 지문도 짧아 진입장벽이 낮으므로 뜻이 있는 학생들은 노력해 자기 학교로 만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이번에는 서강대 2021학년도 인문계열 기출논제 두 세트 중 첫 번째 문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매번 그렇듯 스스로 문제를 풀어보고 답변을 구상하며 가능하면 글쓰기도 도전해보세요.
[문제1] 제시문 [나], [다], [라] 각각의 내용에 근거하여 [가] 현상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마]와 [바]의 관점에서 설명하시오. (800~1000자, 제한시간 50분)
[가] 대학생들 사이에서 서열화는 이미 상당한 ‘진도’를 나간 상태이다. 대개 ‘입결(입시결과)’에 따라 서열이 좋다고 인정받는 학과의 학생들이 우월감이 높다. (…) 전과에 성공하더라도 꼬리표는 떨어지지 않는다. A씨의 친구는 1학년을 마치자마자 같은 캠퍼스 내 타 학과로 전과했다. “그 친구가 입학할 때 그 학과는 정원 미달이었어요. 입학 점수가 정말 낮았는데, 전과를 하고 나서 이전 학과 친구들을 좀 무시하더라고요. 걔 친구들 사이에서 ‘전과한 주제에’라며 말이 많았어요.” (…) B씨는 게시판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입결로 서열화하는 글들이 게시판에 꽤 많이 올라와요. 반박 댓글이 달리긴 하지만 심각한 문제죠.”
[나] 집을 나서기 전에 날씨를 살피고 우산을 챙기거나 따듯한 옷을 껴입는 행위처럼 인간의 의지와 행동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을 사회·문화 현상이라고 한다. (…)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면 물이 되는 현상처럼, 자연 현상은 같은 조건에 따른 결과가 언제, 어디에서나 똑같이 나타난다. 이러한 점에서 자연 현상은 보편성을 지닌다. (…) 한편 일반적으로 지능이 높으면 학업 성취도가 높지만 그렇지 않은 예외가 있듯이, 사회·문화 현상은 자연 현상과 달리 같은 조건에서 다른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어떤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높을 뿐이고, 그 인과 관계가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이처럼 사회·문화 현상은 개연성과 확률의 원리가 작용하는데, 이는 사회·문화 현상이 인간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 최고 중의 최고로 구성된 어떤 엘리트 하키 선수팀을 선택하더라도 그들의 40%는 1~3월, 30%는 4~6월, 20%는 7~9월, 10%는 10~12월에 태어났다. (…) 이러한 현상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다. 점성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1년의 첫 세 달이 어떤 마법적인 힘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캐나다에서 1월 1일을 기준으로 나이를 헤아리고 그에 맞춰 하키 클래스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월 2일에 열 살이 되는 소년은 그해 말까지 만으로 열 살이 되지 못한 소년과 함께 하키를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사춘기 이전에는 열두 달이라는 기간이 엄청난 신체 발달의 차이를 낳는다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하키에 미친 나라, 캐나다에서는 코치들이 아홉 살이나 열 살 무렵의 소년들을 대상으로 후보군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이때 몇 달간 더 숙달될 수 있는 기회를 누린 소년들이 더 크고 보다 재능이 있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물론 출발점을 놓고 보면 후보군의 강점은 선천적이라기보다 그저 몇 개월 더 일찍 태어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창 성장기에 있는 소년들은 훌륭한 코치와 강도 높은 연습 덕분에 정말로 뛰어난 선수로 거듭나게 된다.
[라] 내가 산 복권의 가격은 $1이고 기댓값은 $0.56이므로 $1를 주고 사는 것은 손해다. 하지만 운이 좋아서 나는 $2에 당첨되었다. (…) 큰수의 법칙에 따르면 독립적 시행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결과의 평균은 기댓값에 점점 가까워진다. 나는 오늘 운이 좋아서 기댓값이 $0.56인 $1짜리 복권으로 $2에 당첨이 되었다. 나는 내일도 같은 복권을 사서 $2에 당첨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 $1짜리 복권 1,000장을 샀을 때, 내가 손해를 본다는 것은 수학적으로 거의 확실하다. 또 내가 그 $1짜리 복권 백만 장을 $1,000,000를 주고 산다면, 나에게 돌아올 돈은 $560,000에 매우 가까울 것이다. 즉, 확률적인 사건의 경우에는 충분히 많은 시행이 있어야 기대하는 결과를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다.
[마] 생전 처음 만나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우리는 결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겉모양이나 몇 개의 소문으로 그를 온당하게 평가할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좀 더 가까운 자리에서 함께 일하며 그리하여 깊이 있는 인식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까닭은 이쪽의 개인적인 조급 때문이기도 하지만 크게는 인간관계가 기성의 물질적 관계를 닮아버린 세속의 한 단면인지도 모릅니다. (…) 바늘구멍으로 황소를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대상이 물건이 아니라 마음을 가진 ‘사람’인 경우에는 이 바라본다는 행위는 그를 알려는 태도가 못됩니다. 사람은 그림처럼 벽에 걸어놓고 바라볼 수 있는 정적 평면이 아니라 ‘관계’를 통하여 비로소 발휘되는 가능성의 총체이기에 그렇습니다. 한편이 되어 백지 한 장이라도 맞들어보고 반대편이 되어 헐고 뜯고 싸워보지 않고서 그 사람을 알려고 하는 것은 흡사 냄새를 만지려 하고 바람을 동이려 드는 헛된 노력입니다.
[바]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원래 착하기 때문이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원래 악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은 원래 그런 류의 사람이고, 부자는 원래 그런 류의 사람이다.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은 원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사람 프레임에 입각한 이런 생각들은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 수는 있다. (…)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의 힘을 직시하게 되면, 나쁜 행동을 한 사람에게 조금은 더 관대해진다.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조금 덜 영웅시하게 된다. 쉽고 익숙한 ‘사람 프레임’에서 불편하지만 진실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 프레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