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단군, 신화인가 역사인가 (上)
인천 강화군의 마니산 정상에 있는 참성단은 원조선 시대에 제천행사를 행한 곳이다.  한경 DB
인천 강화군의 마니산 정상에 있는 참성단은 원조선 시대에 제천행사를 행한 곳이다. 한경 DB
수천 년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 집단이 자기 사상이나 고유종교가 희미한 이유는 무엇일까. 심지어는 생활문화에서 전통의 흔적이 잘 안 보이는 현상은 어찌 된 일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의식이 부족하고, 창조보다 모방을 선호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자유의지가 약해지고, 남에게 습관적으로 구속당하는 것이 역사인데 말이다.

문화가 풍성하고 뛰어나려면 적극적인 교류와 능동적인 수용이 필요하다. 특히 21세기는 시공의 한계가 희미해지고, 하나의 ‘장(field)’에서 문화의 보편성이 급팽창되는 추세여서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하지만 교류와 수용에는 최소한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교류의 방식이다. 충돌과 갈등(새뮤얼 헌팅턴)인가, 협력과 공존(표트르 크로포트킨)인가? 문명의 발생 이후 끝없는 논쟁거리다. 그런데 현재도 그렇지만 역사는 지배와 피지배, 주인과 종속이라는 나쁜 관계가 더 많았음을 증명한다. 따라서 다른 집단과 만나는 방식은 명분과 이상이 아니라 현실과 힘을 갖추고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한 모든 존재는 기본적으로 공평하다. 그렇다면 생활의 편의나 소수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양적 팽창보다는 삶의 본질과 다수의 이익을 구현하는 질적 성숙이 중요하다.

둘째, 주체와 객체의 구분과 역할이 분명해야 한다. 이는 일부의 오해처럼 자존심이나 명분이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수용의 주체인 토대의 문화, 사람 등은 양적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현실의 문제점과 해결 방법을 간파하는 경험과 능력도 더 많다. 그런데 현실과 상황을 잘 모르는 외부 세력이 정치력, 군사력, 경제력, 심지어는 문화력까지 동원해 교류를 주도하면 과도한 목표의식(때로는 욕심)과 무지, 자기들을 위한 정책과 사상 등을 강요할 본능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따라서 집단 간 교류와 수용에서 성공할 확률을 높이려면 상호 존중과 가치 인정은 필수적이고, 주체 또는 주도세력의 힘과 능력의 배율이 약간 높아야 한다. 이는 보수와 진보의 관계도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문화의 수용을 대했을까? 우리 것이 경시되고 변질된 것은 분명하다. 중국을 끌어들인 신라의 삼국통일, 몽골(원나라) 지배의 100여 년 세월, 조선 500년 동안의 사대주의와 성리학, 일제의 식민지배 35년, 최근에는 자본주의와 서양 문화의 영향까지 거론한다. 하지만 주변의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을 보면 우리보다 더 자의식에 충실하고, 자문화를 토대로 외부 문화를 수용했다.

그럼 우리 것이 없었기 때문일까? 역사학자가 판단할 때 그럴 리는 절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있었고, 어떤 역할을 했을까? 또 왜 사라졌으며, 소위 ‘우리 것’들은 지금 이 불쾌하고 절망적인 시대 상황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닐까.

현실에서 확인되듯 한민족인 남북한 간에는 문명의 갈등, 사상의 충돌이 심각하다. 우리 내부에서도 공동체 의식은 거의 부서져 나간 것 같다. 세계적으로도 교류가 확대되면서 갈등, 충돌은 다양한 형태로 확장된다. 우리를 포함한 인류는 새로운 삶의 양식, 새로운 가치관을 요구하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나 희망을 품어본다. 혹시 우리 전통 또는 원핵 사상에서 민족 문제, 인류 문제 등을 일부나마 해소할 수 있는 방식과 지혜를 찾아낼 수는 없을까? 그래서 역사학자로서 원조선인들이 자신들에게는 물론이고 후손들에게 전해준 삶의 ‘지침’인 ‘단군신화’를 주목한다.

단군의 실존과 역사를 두고 논쟁이 많은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 논쟁들은 그저 ‘허구의 이야기’,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신화에 대한 오해와 비합리적이라는 한국 지식인들의 근거 없는 예단에서 출발했다. 물론 우리 역사와 원조선을 축소하려고 이를 악용한 일본인에게도 책임이 크다.

신화는 한 집단이 경험했거나 믿는 충격적이고 의미 깊은 사건 등 인간의 의식과 행동을 ‘자기 논리’로 재구성해 설화체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신화는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가치가 무궁무진한 조상들의 유산이다. 기억해주세요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사마르칸트대 교수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사마르칸트대 교수
단군의 실존과 역사를 두고 논쟁이 많다. 하지만 이 논쟁들은 그저 ‘허구의 이야기’,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신화에 대한 오해와 비합리적이라는 근거 없는 예단에서 출발했다. 우리 역사와 원조선을 축소하려고 악용한 일본인에게도 책임이 크다. 신화는 한 집단이 경험했거나 믿는 충격적이고 의미 깊은 사건 등 인간의 의식과 행동을 ‘자기 논리’로 재구성해 설화체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신화는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가치가 무궁무진한 조상들의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