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노비의 몸값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고려 말 노비 몸값, 소·말보다 못해…조선시대 매매 제한하자 가치 뛰어
조선시대 노비는 말이나 소보다 못한 몸값이 매겨졌다. 노비의 몸값은 당대 법전들에 담긴 규정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경국대전》의 <호전·매매한>조에는 토지와 가사(家舍) 매매에서 거래를 물릴 수 있는 기한을 매매 후 15일로 정했다. 그리고 본문에 주를 달아선 ‘노비도 이와 같다’고 규정했다. 이와 함께 노비 거래 항목이 소와 말의 매매한(賣買限)과 같은 조목에 들어 있는 것을 근거로 노비의 처지가 마소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보았다. 이뿐만 아니라 고려 말 공양왕 3년(1391)의 상소문을 통해 살펴볼 때 ‘사람의 가격이 마소의 가격보다 훨씬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노비의 몸값이 조금 올랐다. 노비를 토지에 결박하기 위해 노비 매매를 크게 제한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으로서 값어치를 평가받지 못한 수준이긴 하지만 말이다. 성종 7년(1476)에 완성된 《경국대전》에는 각종 노비의 가치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여기선 15~16세기 초 장년 노비 한 사람의 가격이 저화 4000장이었다고 한다. ‘저화 20장=면포 1필’로 환산할 경우, 노비 가격은 면포 200필에 해당한다. 이는 조선 초 기록인 《태조실록》 7년 6월 기미조 기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노비의 몸값에 비해선 적잖이 오른 셈이었다. 1398년 노비의 값은 많이 잡아도 오승포 150필로 말 한 마리(400~500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고 한다.

이후 조선 왕조가 안정되면서 노비의 값은 15~40세는 400필로, 14세 이하 40세 이상은 300필로 개정됐다고 하니 노비 몸값은 어느 정도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말에 비해선 훨씬 낮았다. 성별로는 남자인 노(奴)가 여자인 비(婢)보다 쌌다. 양천지법, 양천교가법에 따라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천인이어도 자식은 무조건 천인이 된 점이 노비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특히 《고려사》 형법지에서부터 천자수모지법이라고 규정, 노비는 모친의 역을 따라 세습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으면서 여자의 몸값이 남자보다 더 나갔다. 모친이 비이고 부친이 양인인 경우, 그 소생은 노비로 어머니의 상전 소유자가 된다는 규정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여성 천인인 비는 노비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면서 몸값을 더 쳐줬다.

한편 노비들이 양인이 되는 길은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혹 가능하다고 해도 많은 비용이 들었다. 임진왜란 당시 군공을 세운 천인들에게 양인이 될 기회가 주어지긴 했지만, 실제로 기회를 잡은 것은 극소수였다. ‘속량면천(贖良免賤)’에 관한 사례연구에 따르면 본래 노비 신분이지만 상당한 재산이 있었던 사람이 상전에게 자신의 전답을 바친 뒤에야 천인 신분을 벗어날 수 있었다. 전답뿐 아니라 천인은 자신이 사들인 노 한 사람과 비 한 사람, 황소 한 마리도 같이 바쳤다. 그나마도 그의 부친이 먼저 상전에게 면천 신청서를 내고 관가의 허락을 받고, 증인을 세우고 해서 마침내 속량면천이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천인 신분을 벗어나기까지는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임진왜란에서 군공을 세운 뒤 58년 뒤에나 가능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 “노비는 큰 공이 있어도 돈이나 물품으로 상을 주되 관직을 주지 않는다”《고려사》고 규정했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지만 여전히 노비 앞에 드리운 장벽은 높기만 했다.

이처럼 사람이 짐승만도 못한 값으로 평가된 것은 조선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개오지라는 조개껍질이 주요 교역화폐로 사용됐던 인도양 연안에선 18세기까지 노예의 몸값이 개오지 무게나 개수로 판단됐다. 18세기의 한 노예상은 “전에는 개오지 1만2000개 중량이면 500~600명가량의 흑인을 한 배 가득 실을 수 있었는데 이제 그런 호시절은 지나갔다”고 투덜거린 기록을 남겼다.

연봉으로 표현되는 ‘몸값’은 현대 직장인들의 최고 관심사다. 축구 클럽 레알 마드리드나 FC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스포츠 스타들의 천문학적 연봉 소식은 언제나 눈길을 끌곤 한다. 물론 내 몸값을 정당하게 받고 있는지, 무엇이 정당한 몸값인지는 쉽게 풀리는 문제가 아니긴 하다. 역사 속에서 드러난 과거의 몸값 사례는 그런 의미에서 또 하나의 판단 근거를 제시한다. NIE 포인트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고려 말 노비 몸값, 소·말보다 못해…조선시대 매매 제한하자 가치 뛰어
1. 고려·조선시대 노비의 노동력이 없었다면 어떤 현상이 발생했을까.

2. 역사 속에서 하층계급으로부터 시작된 봉기는 어떤 것들이 있고, 당시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알아보자.

3. 현대사회에서의 유·무형적 계급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조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