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최연수 《 세계사에서 경제를 배우다 》
세계사를 분석하는 책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인류가 걸어온 역사는 변하지 않지만 각각의 전문성과 잣대에 의해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사에서 경제를 배우다》는 역사적 사실을 경제라는 관점을 통해 분석한 책이다. 경제학 박사인 최연수 저자는 인류 문명이 싹튼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부터 21세기 기술혁명과 지구온난화 문제까지 역사를 움직인 경제사 50장면을 포착해 책에 담았다.저자는 이 책이 ‘현재와 미래를 위해 과거를 되돌아보는 겸손한 시도’라며 현대인의 복잡하고 분주해진 삶에 나침반 역할을 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그런 만큼 꼭지마다 역사적 사실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현재와 연결하고,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에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이었는지도 간략하게 짚어준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 ‘경제는 문명과 함께 태어났다’ 편은 유럽의 부흥과 13세기에 세계화를 이룬 칭기즈칸, 실크로드, 기독교와 신항로 개척 등 초기 경제의 움직임을 펼쳐 보였다. 2부 ‘세계, 경제에 눈을 뜨다’는 영국의 산업혁명, 산업에 눈을 뜬 미국,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변신한 러시아, 젊은 대륙 인도, 중남미 경제, 검은 대륙 아프리카까지 전 대륙으로 확대된 경제 역사를 다루고 있다. 3부 ‘과거로 미래의 경제를 내다보다’에서는 금융 투기의 역사, 금본위제, 달러 체제 같은 다양한 경제 상황을 다루고 있다. 50개의 소제목만 훑어봐도 세계 역사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감이 잡힐 것이다. ‘후추와 석유를 둘러싼 평행이론, 청어의 이동과 한자상권의 흥망, 설탕과 차, 커피의 경제학’ 같은 제목만으로도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흑사병이 바꾼 유럽 문화코로나 시국이어서인지 흑사병으로 고통받은 중세와 우리나라에서 문물을 받아들였던 일본이 단시간에 강국으로 변모한 역사가 궁금했다. 유럽은 1348년 이후 주기적으로 창궐한 흑사병으로 인해 100년간 인구 감소기를 겪었다. 일할 사람이 부족해 농촌이 어려움을 겪었고, 생필품을 살 사람이 줄어들어 상권이 축소됐다. 그 가운데서도 베네치아의 향료 교역은 규모가 더 커졌다. 흑사병이 공기를 통해 전파된다고 여겨 많은 사람이 향신료를 태워 공기를 정화시켰기 때문이다. 수도사와 농노가 많이 죽으면서 흑사병은 종교개혁과 봉건제 해체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섬나라 일본은 200년 동안 쇄국정책을 실시하다가 1853년 미국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메이지유신으로 근대적 산업사회로 가는 대개혁을 단행해 정치·경제구조를 개편하며 공업화를 추진했다. 당시 강압에 의해 개항한 나라들은 대개 식민지배를 당했으나 일본은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고 자본주의를 구현하는 행운을 얻었다. ‘미국에 의한 일본의 개항’은 지난 1000년의 역사를 움직인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된다. 문호 개방으로 힘이 생긴 일본은 세계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식민지 개척에 나섰고, 우리나라를 점령한 뒤 아시아를 지배하기 위해 과욕을 부렸다. 그 과정을 생각해보면 왜 그런 평가를 받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장보고와 개성상인에게 배우자고려의 개성상인과 신라 장보고의 해상무역도 50개 장면 중에 포함됐다. 13세기 개성은 인구 50만 명을 자랑하던 국제 무역도시였다. 서양보다 2세기 앞서 복식부기를 사용한 개성상인은 철저한 신용관리와 근면함·조직력으로 인삼과 포목, 농기구를 전국적으로 유통시키면서 조선 후기에 거대 자본가가 됐다. 중국·일본과의 직교역이 단절된 17세기 중반에도 조직력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대외 교역을 독점했다.
1200년 전 장보고는 제해권과 무역권을 손에 넣고 동북아의 해상 상권을 지배한 인물이다. 중국과 일본이 억지 주장을 하며 해상권 확보에 열을 올릴 때마다 떠오르는 인물이 해상무역의 일인자 장보고다. 장보고의 업적을 잘 연구하면 우리나라가 동북아 해상무역의 허브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온 역사는 미래를 밝히는 거울이다. 급속한 변화로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세계사에서 경제를 배우다》의 역사적 장면에 현재를 대입한 뒤 깊이 생각하면 답이 보이고 길이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