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12세기 북독일 상인연합체로 출발…유럽으로 확산, 소금·옷감 등 동유럽 상품, 서유럽에 유통 역할 수행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은 12세기 중엽 시작돼 17세기 중엽에 소멸했다. 시작은 1159년께 북독일 지역 도시인 뤼베크가 서유럽의 동방 진출 관문 역할을 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뤼베크는 이후 지정학적 입지를 최대한 활용해 한자동맹의 중심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니더작센과 베스트팔렌, 라인란트 상인들이 거래를 위해 뤼베크로 유입됐고,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도 상인들이 몰려왔다.

이전에는 상대적으로 위험했던 발트해는 교역로로서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노브고로드와 스몰렌스크 같은 러시아의 교역 중심지와는 강을 통해 물자가 오갔고, 백해를 건너서 비잔티움과 이슬람 지역의 사치품이 발트해 연안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한자동맹이 결성되면서 상인들이 발트해를 적극적으로 오가기 시작했고, 곧이어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잉글랜드 등이 접해 있는 북해 연안으로 교역활동 범위를 넓혔다.

13세기 중엽 한자동맹은 발트해와 북해에서 사실상 무역 독점권을 행사하게 된다. 뤼베크와 함부르크, 로스토크, 슈트랄준트, 그라이프스발트, 비스비, 스톡홀름, 브룬스비크, 브레멘, 마그데부르크, 고슬라르, 그단스크, 엘빙, 크라쿠프, 브레슬라우, 쾨니히스베르크, 리가, 브뤼주, 노브고로드 등이 주요 회원이었다. 전성기 한자동맹은 노브고로드~라발~뤼베크~함부르크~브뤼주~런던을 잇는 긴 교역축을 완성하게 된다. 14세기가 되면 남독일과 이탈리아, 대서양 연안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내륙 해양 지역들과 연결망도 강화하게 된다. 한자동맹은 서유럽에서 필요로 하는 동유럽 산품을 유통시켜주는 역사적 사명을 수행했다. 교육 물품은 대부분 옷감, 소금처럼 서유럽 각지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이었다. ‘한자’란 단어는 ‘상인들이 지불한 공물’ 의미한자(Hansa)라는 단어는 중세시대 표현들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매우 오래된 게르만어인 이 단어는 불필라가 작업한 초기 성서 번역본에도 ‘무장집단’의 뜻으로 사용됐다. 12~13세기가 되면서 이 단어는 프랑스 센 강부터 동부 독일의 엘베강, 남부 독일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용됐다. ‘한자’란 단어는 원래 ‘상인들이 지불한 공물’을 뜻하거나 때로는 ‘외국에서 활동 중인 상인’을 의미했다. 잉글랜드에서 이 단어는 13세기 초 런던에서 ‘폴랑드르 한자 회원’식의 용례로 사용됐다. 이후 유트레흐트와 오스트케르케에 있는 소규모 함부르크 상인집단과 회크나 츠빈에 있는 뤼베크 상인집단이 모두 ‘한자’로 불렸다.

북독일 상인의 연합체로 출발한 한자동맹은 14세기 중엽이 되면서 도시연합공동체로 완전히 변모했다. 이는 중세 유럽 역사에서 드문 움직임이었다.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도시동맹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한자동맹처럼 오랜 시간 존속했던 것은 없었다. 전성기엔 네덜란드 쥐더제 연안부터 핀란드만, 발트해, 튀링겐 지역까지 1500㎞에 이르는 200여 개 해양도시와 연안 수운도시가 동맹체에 소속됐다. 동시에 한자동맹은 소속 도시들의 정치적 자율성과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를 갖췄다. 상인들의 해외 활동을 보호하고 무역을 확대하는 목적도 수행했다. ‘한자동맹 소속 상인들은 더 많은 자유와 특권을 가진다’는 것을 교역 대상 각국에 요구했고 관철했다. 소속 상인들 법적·정치적으로 신변안전 보장한자동맹 소속 상인들의 특권으로는 법적, 정치적으로 상인의 신변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있었다. 상인의 소유물과 교역품에 대한 면세 및 감세 조치도 포함됐다. 한자동맹 소속 독일 상인들이 런던, 베르겐, 노브고로드 등 각 지역에서 독자적인 모임을 결성해 현지법의 적용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치외법권 조항도 만들었다. 노브고로드 같은 곳에선 소속 상인에 대한 사형 집행 같은 독자 사법권까지 시행하기도 했다.

역으로 한자동맹 소속 상인이 현지인을 다치게 하거나 손해를 입혔을 때도 현지 법원에서 상인이 판결받기 전에 한자동맹 자체 법 판단을 받도록 공동 사법 시스템이 적용됐다. 소속 상인이 다치거나 도둑 맞으면 현지 정권에 즉각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체제도 갖췄다. 교역 상대국 간 전쟁으로 인해 동맹 상인들이 억울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데 신경썼고, 각국에 한자동맹 소속 선단에 대한 보호선 파견을 요구하기도 했다. 교육에 참가하고 있는 해당 국가 영해 내 안전은 해당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파산한 배의 상품에 관해서 상황에 따른 매우 상세한 면세 조항도 있었고, 자체 화물계량소 설치와 관련한 규정도 있었다.

한자동맹은 500년 가까이 존속했고 위세를 떨쳤다. 이처럼 조직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도시 간 연대의식이 큰 역할을 했다. 16세기 이후 한자동맹은 쇠퇴 조짐을 보였다. 한자동맹의 각종 특권 요구를 각국 지배자들은 권한 침해라고 느꼈고, 네덜란드 상인 등 경쟁자들의 불만도 컸다. 한자동맹을 대신해 스웨덴이 발트해 통제에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덴마크 역시 독자적인 교역권을 찾아갔다. 노브고로드의 상관은 폐쇄됐고, 브뤼주에 있는 한자동맹의 상관도 유명무실해졌다. NIE 포인트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12세기 북독일 상인연합체로 출발…유럽으로 확산, 소금·옷감 등 동유럽 상품, 서유럽에 유통 역할 수행
① 한자동맹이 오랜시간 지속될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② 한자동맹이 시작됐던 12세기 중엽부터 17세기 중엽까지 아시아에서는 어떤 교역 움직임이 있었을까요.

③ 상인들이 한자동맹에 대거 가입하게 만든 요인들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