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론’을 제기했다. 평소에도 목소리가 큰 편인 ‘대선주자’들 주장이어서 주목을 더 받고 있다. 이미 2022년 공약으로 나온 경우도 있다. 제1야당의 젊은 대표는 아예 “이런 대선 공약이 더 나와야 한다”며 논의에 불을 붙였다. 폐지론은 야당 쪽에서 나왔다. 이에 대해 범여권 정당이 한목소리로 격하게 반대했다. 당사자인 여가부는 물론, ‘여성계’에서도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폐지론자들도 정부 부처 여가부(部)를 없애자는 것이지, 여성 문제나 이에 대한 정책적 개선 노력을 그만두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여가부가 그동안 제 역할을 했느냐는 문제 제기이고, 여성부를 따로 둔 나라가 한국을 제외하면 잘 없다는 사실도 보자는 것이다. 존치론자들은 ‘편 가르기’라며 이 주장을 맹비난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젠더 아젠다’다. 한국 사회에서 젊은이들 사이의 대립적 남녀 갈등이 심각한 지경에 달한 것은 사실이다. 극단적 예가 ‘한남충’ ‘김치녀’라는 무서운 말이다. 이런 상황이 되도록 여가부가 한 게 뭐냐는 것이 폐지론의 근본 문제 제기로 보인다. 반대론자들은 “여가부만 비난할 일이 아니다”고 항변한다. 여가부는 과연 수명을 다했는가. 젠더 갈등 등의 문제를 새로운 접근법, 새로운 형태의 정책 기관에 맡길 때가 된 것일까.
[찬성] 그간 여가부 뭐 했나…각 부처별 여성정책 추진이 효율적여성과 가족 문제, 양성 평등 노력은 1990년대부터 정부 정책으로 다양하게 추진돼 왔다.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여성의 사회적 진출 확대와 불이익 방지 등을 제도화하기도 했다. 민주 정부와 현대 사회가 의당 기울여야 할 노력이고 한국에서도 여러 실험적 정책과 제도가 도입돼왔다.그런 과정을 거쳐 2001년 여성부가 발족했다. 법령 집행권과 예산 편성권한을 가진 독립된 부(部)가 된 것이다. 이후 이름이 바뀌기도 했지만 대체로 아동과 청소년, 다문화 가정 정책까지 맡고 있다. 하지만 여가부가 정작 이룬 게 무엇인가. 정책을 더 잘 수행하라고 독립된 부처로 승격했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갔다고 해도 여가부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여가부의 기능 중 대부분이 여가부가 아닌 다른 부처로 가도 충분히 할 수 있다. 1년 예산 1조2000억원 가운데 여성 문제에 쓰이는 게 많지도 않다. 인구의 절반이 여성인데, 여가부가 전담 부서라고 있으니 다른 모든 부처가 여성 문제를 손 놓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여성정책이나 양성 평등이 여성 문제로만, 즉 여가부 홀로 다 다룰 수가 없는 만큼 각 부처가 고유의 업무에서 이런 일을 적용해가는 게 더 현실적이고 효율적이다. 그렇게 본다면 여가부를 없애고 모든 부처에 책임과 권한을 고루 나누는 게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여가부가 최근에 수행한 업무도 매우 실망적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스럽고, 권한을 갖고 있으면서도 하지 않았던 일도 분명했다. 직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성추행 같은 부당한 일이 발생했을 때 제때, 제대로 된 성명서라도 내면서 재발방지책이라도 낸 게 있는가. ‘이대남’ ‘이대녀’의 대립에서도 합리적 해법을 내기는커녕 갈등을 조장했다는 비판이 갈수록 커졌다. 폐지론도 제 기능 못하는 현재의 여가부를 없애고 더 나은 방식으로 가자는 것이지, 여성 정책과 양성평등 노력을 기울이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다. [반대] 여성문제 정책적 접근·배려 필요…'젠더 갈등' 여전히 심각고용시장에서 여성의 비중, 취업 형태에서 여성이 부닥치는 현실적 불이익, 여러 형태의 직장 안에서 승진과 관련된 논란 등으로 볼 때 아직도 여성 전담 부처가 필요한 게 한국 현실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이 극복해야 할 차별의 벽이나 장애가 곳곳에 널렸다. 일차적으로 여성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하기도 하지만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 정책이 필요하고 전담 부처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여가부가 제 기능을 다해 왔느냐 하는 문제 제기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현 정부 집권 이후 최근 연도에 보여준 여가부의 역할은 결코 만족스럽다고 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여가부 스스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필요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부처 등 정부 기관이 모두 자기 구실을 다해왔느냐고 물으면 어떤 기관인들 자신 있게 그렇다고 할 수 있겠나. 문제가 생긴다고 부처를 없애라고 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정부 기관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여가부가 없어도 여성 문제나 양성평등 노력을 정책적으로 기울일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도 정부 안에서 여가부에 ‘힘’이 실리지 못해 정책 수행에 애로를 겪는다. 그런데 여성의 문제에서 복지 관련은 보건복지부에, 취업은 고용노동부에, 교육은 교육부에, 안전은 경찰에, 법적권리 같은 문제는 법무부에 맡긴다면 지금 수준의 성과라도 이어갈 수 있을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그렇게 본다면 다른 정부 부처가 여가부 정책에 좀 더 협조적으로 나서게 해 여가부에 힘을 실어주며 정책 효과를 내게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업무를 다른 부처로 분산하면 책임 소재도 불명확해진다.
폐지론의 또 다른 문제는 이게 여성 문제와 젠더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예민한 성 대결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게 현실적 우려점이다.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 생각하기 - 정부 조직 수시로 바뀌는 것…'큰 정부' 비효율 규명 계기돼야 정부 조직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대형 선거라도 있을 때면 정부 부처의 통폐합과 신설 공약이 난무한다. 정권 출범 때마다 부·처·청·위원회 등이 뚝딱뚝딱 생겼다 없어지는 건 흔한 일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부처가 제 업무를 수행 못 하면 폐지론이 나오는 게 자연스럽다. 논란거리 정책이 나올 때면 수시로 나오는 교육부 폐지론, 노사 간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한쪽으로 편향될 때 고용노동부를 없애라는 주장 등이 나오곤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문제는 젠더 이슈를 어떻게 풀 것인가다. ‘여성 문제’가 불거졌을 때 여가부가 과연 무엇을 했는지, 독립 부처로서의 업무 성과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점검하는 것에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 같은 나라에 남녀 성 구별 정책이 없는 것도 참고할 만하다. ‘성 대결’을 해소하는 쪽의 논쟁이 돼야 한다. 폐지론에 대한 과격한 반대와 역공세가 또 다른 차원의 남녀 편가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곤란하다. 궁극적으로 ‘큰 정부’와 ‘작은 정부’의 장단점, 특히 큰 정부의 비효율에 대한 건설적 대안마련으로 이어져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