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현대차 노동조합)가 회사 측과의 노사 교섭 과정에서 ‘정년연장’이라는 매우 민감한 요구를 했다. 60세인 현행 정년을 64세로 4년이나 늘려달라는 상당히 파격적 요구였다. 대부분 직장에서 ‘정년 60세’를 적용하게 하는 법을 제정하기까지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던 숱한 논란과 논쟁, 찬반 시비를 돌아볼 때 앞서가는 요구임이 분명하다. 한국의 고용·노동시장 현실과 창출 가능한 일자리 형편을 봐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년연장을 포함한 일자리 문제는 기존 근로자의 ‘노동 기득권’ 문제와 연결되는 데다 청년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입장차에 따른 일자리 갈등도 야기할 수 있다. 더구나 현대차 노조는 회사 측이 제안한 1114만원의 임금인상안을 거부한 터였다. 회사 측은 기본급 월 5만원 인상, 성과급 100%+300만원, 격려금 200만원 등 총액 기준으로 근로자 1인당 평균 1114만원 인상안을 제시했으나 퇴짜 맞았다. 한국 고용시장 상황과 민주노총 산하 현대차 노조의 힘을 감안할 때 이번 정년연장 요구는 상당한 파급력을 갖는다. 마침 정치권과 정부에서도 일정한 조건은 달면서도 ‘고용연장’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쪽에서 앞서가는 일본의 영향도 없지 않지만, 고용연장이 득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년을 64~65세로 연장하면 득(得)이 많을까, 실(失)이 클까.
[찬성] 일본 봐도 결국은 가야할 길…국민연금 고갈 늦추는 데 도움현대자동차 노조가 정년연장 요구를 들고나온 표면적인 배경은 ‘영업직 직원의 고용 안정성 확보’ 차원이다. 영업직 다수를 차지하는 ‘586세대’가 퇴직할 경우 조합원 감소로 노조의 조직력이 약화된다는 전망이 깔려 있다. 근래 정년퇴직자가 늘어나면서 2020년 한 해에만 현대차 노조원은 4.5% 감소했다. 생산직에서만 해마다 2000여 명씩, 5년간 1만 명이 정년을 맞는다. 조합원 감소에 대한 노조의 불안감과 위기감은 감출 수 없는 현실이다.노조는 웬만한 수준의 임금 인상보다 일할 기회를 더 갖는 게 최고의 임금 보전책이면서 복지 대책이 된다는 사실도 굳이 감추지 않는다. 근로자들 건강 여건도 좋아서 60대도 현장에서 충분히 일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배경에서 숙련된 기능 역량을 살리면서 생산 활동과 사회에 계속 기여하고 싶다고 주장한다.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어떤 직장에서도 근로자들이 더 일하면 국민연금 수령 시기가 늦춰지면서 위기의 국민연금 고갈 시기도 더 미뤄질 것이라는 논리도 편다. 국민건강보험까지 복지 지출이 전체적으로 줄어들면서 공적 연금 재정이 건전화되고 좀 더 지속가능한 쪽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급속히 진전되는 고령사회에서 불가피한 길이라는 관점도 있다. 상당한 논란과 예상되는 부작용도 있지만, 정년연장은 현대 산업사회에서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주장이다. 강제나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정년 70세 시대를 앞서 열어가고 있는 일본을 봐야 하며, 70세로 정년을 늘리는 기업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주는 일본의 정책 방향을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부에서도 2022년부터 고용연장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정부의 고용연장안은 임금 인하 및 고용 방식 변화와 함께 가는 것으로, 기업 자율에 맡긴다는 점에서 법에 정해진 정년연장과는 다르지만 일할 기회를 늘린다는 차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반대] 제한된 일자리로 세대 전쟁 유발…자동차산업 경쟁력부터 봐야노동조합이 앞장선 정년연장 요구는 노조의 기득권 강화 시도다. 고용시장에서 ‘취업의 기득권’과 노조라는 엄청난 ‘제도적 기득권’을 함께 누리면서 좋은 일자리를 오래 누리겠다는 과욕이다. 온갖 논란 속에 힘겹게 60세로 정년을 연장한 지가 얼마나 됐나. 그런데 또 퇴직 시점을 4년씩 더 늘려 기존 조합원들이 계속 일하겠다고 하면 회사는 신규 인력을 채용할 수가 있겠나. 청년 일자리를 기성세대가 계속 독차지하겠다는 것 아닌가. 퇴직자가 없는데 기업이 무슨 수로 새 인력을 뽑을 수 있나. 아버지·삼촌 세대가 아들·조카 세대 일자리를 빼앗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가뜩이나 고용은 세대 간 이해관계가 직결된 사안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판에 ‘일자리 세대 갈등’을 부채질할 공산이 극히 높다. 현대차 내부의 젊은 ‘MZ세대’ 중심인 사무직 노조도 생산직 노조의 정년연장안에 반대 의사를 보인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
생산성 문제는 더 냉정하게 봐야 한다. 정년연장을 흔히 ‘경륜과 지식의 활용’이라며 두루뭉술한 논리로 넘어가지만 호봉제에 따라 나이가 많다고 고임금을 누리는 근로자들이 도출하는 생산성이 과연 임금만큼 높은지 분석부터 해보자. 현대차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는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국내 공장의 생산성(단위 노동시간당 자동차 생산대수)은 현대차의 전 세계 사업장 가운데 제일 바닥권이다. 그러면서 파업은 얼마나 많이 했었나.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앞으로 좋다는 보장은 있나. 전 세계 자동차산업은 전기차, 자율주행차 경쟁으로 100년 만에 대변혁기에 처해 있다. 현대차는 과도한 복지에 생산성 하락으로 좌초 지경에 달했던 초대형 미국 자동차업체의 길을 걷게 될지, 군살을 빼면서 생산성을 끌어올려 미래차 시장을 장악하는 혁신 기업이 될지 갈림길에 있다. 정년연장이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서 도움이 될지, 큰 짐이 될지는 뻔하다. 다른 직장·산업에 미치는 파장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 생각하기 - 정년제도 없애는 게 최종 해법…전체 경제, 특히 열악한 중소기업도 봐야 급격히 고령사회, 초고령사회가 되면서 일자리 문제는 모든 세대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 “얼마든지 더 일할 수 있다”며 현직에 더 있겠다는 기성세대와 “우리에게도 일자리를 달라”는 청년세대 갈등이 한국에서만의 고민도 아니다. 특정 세대가 사회의 부(富)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논란도 흔하다. 일자리만이 아니라 주택의 취득과 주식의 보유 등 자산시장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일어날 수 있다. 균형과 조화를 찾는 게 중요하다. 고령자의 경륜을 활용하고 이들에게 더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이 무시할 일이 아니듯, 사회에 새로 진출하는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고용의 유연성은 이래서 중요하다. 많은 선진국처럼 정년 제도를 아예 없애는 것이 정공법의 해법이다. 복잡한 임금체계뿐 아니라 규제와 간섭 일변도의 근로시간 및 형태도 고용에 큰 걸림돌이다. 임시직과 계약직, 불완전 고용 형태를 근로자와 사용자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하면 많은 문제가 풀린다. 정부가 특정 기업뿐 아니라 산업과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보면서 과욕을 부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현대차 노조의 앞서가는 주장을 불안하게 보는 취약한 중소기업도 적지 않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