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급 공휴일, 즉 임금이 나오는 공휴일을 늘리는 것에 대해 근로자에게 물어보면 어떤 답이 나올까. 급여 다 주면서 휴일을 더 가지라는 데 마다할 근로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고용주에게 물으면 어떨까. 임금은 주면서 직원을 놀게 하는 데 찬성할 사장은 많지 않을 것이다. 법정 공휴일 확대에서 고용주와 피고용자 입장은 이렇게 갈리는 게 상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모든 법정 공휴일에 ‘대체공휴일’을 적용하겠다는 데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가 이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일반 시민을 상대로, 그것도 1000명 설문조사를 대면서 공휴일을 더 늘린다는 입장을 정했다. 설과 추석, 어린이날에만 적용되는 대체 공휴일 제도를 확대하기 위해 ‘대체공휴일법 개정안’을 조기에 처리한다는 방침까지 확정했다. 이렇게 되면 당장 2021년 하반기에 주말과 겹치는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크리스마스에 나흘의 대체 휴일이 따라 붙는다. 고용주 부담으로 근로자가 유급 휴가를 더 누리는 것이다. 여당이 내세우는 주된 논리는 소비 증가 등 경제효과다. 2022년 두 차례 선거도 당연히 의식했을 것이다. 경영계에서는 생산 차질 등 생산성 저하를 걱정한다. 대체공휴일 확대, 득이 큰가 실이 큰가, 밀어붙일 만한가.
[찬성] 휴일 늘면 소비·고용 긍정 효과 긴 근로시간 줄여야근로시간을 줄이는 대신 휴식과 여가, 자기계발 시간을 더 갖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꿈이다. 한국은 특히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열심히 많이, 밤·휴일도 없이 일한 덕에 ‘한강의 기적’도 이뤄냈지만, 언제까지 장시간 근로에 기반한 성장을 도모할 수도 없다. 한국의 근로시간이 경제 수준에 비해 과도하게 길다는 것은 국제통계에서도 여러 차례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상당히 많은 편이어서 어떤 형태로든 이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사업장별로 노사 간 협의를 거쳐 줄여나가야겠지만 정부 차원에서도 휴가권 확대, 근로자 휴식시간 확충 등에 나서야 할 때가 됐다. 기업과 사업주, 민간에만 맡겨두면 장시간 근로에서 탈출하기 어렵다.지금처럼 장기불황에 코로나 쇼크까지 겹친 ‘복합불황’ 상태에서는 공휴일 확대가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가 상당히 크다. 현대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대체공휴일을 지정할 때 하루에 4조2000억원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한다. 소비지출 증가액이 2조1000억원, 고용유발 효과는 3만6000명 등이다. 이 계산대로라면 올 하반기 나흘의 대체공휴일 증가에 따르는 경제 효과는 16조원을 넘어선다. 2020년 광복 75주년 때 임시공휴일(토요일인 8월 15일을 대체하는 8월 17일 월요일)을 지정했을 당시 분석한 경제효과가 그렇게 나왔다. 인구의 절반인 2500만 명이 쉬면서 소비지출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효과는 숙박 음식업 운송서비스업 문화·오락서비스업 등에서 두드러졌다. 모두 코로나 충격이 컸던 업종이라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많은 선진국이 경기 불황 때 공휴일 확대를 하나의 돌파구로 삼는다. 모두 내수 확대와 일자리 유지·창출을 위한 노력이다. 관광 외식 쇼핑 오락 등에서 소비가 확대되는 것 외에 무형의 간접적 효과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휴식에 따라 노동생산성이 올라갈 여지가 있는 것이다. [반대] 긴 노동시간, 낮은 생산성 때문 마차가 말 끄는 '소주성' 같은 오류휴일과 휴식시간 증대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유급 공휴일의 인위적 확대 문제는 반드시 생산성과 결부시켜서 봐야 한다. 한국 노동시간이 선진국 기준으로 긴 편에 속하는 것은 사실이다. 왜 그런가. 아직은 노동 시간당 평균 생산성이 그만큼 높지 않기 때문에 일을 더 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와 산업 전체로 볼 때 전문화, 분업화, 정보기술(IT)·인공지능(AI)화 등 고도화 수준이 충분하지 않기에 아직은 근로시간을 확 줄일 여건이 못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일하는 시간이 길어 생산과 소비 수준이 떨어지는 것처럼 말한다면 본말의 전도다. 기본적으로 근로시간은 생산성을 따라간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인위적으로 무리해가며 일하는 시간을 줄이자는 주장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생산성을 내실 있게 높여나가면 근로시간은 자연히 줄어든다. 이게 선진국이 앞서간 길이다.
대체공휴일을 확대하겠다며 근거처럼 함께 내놓은 여론조사도 적절치 못하다. 전국 1000여 명에게 물었더니 72.5%가 찬성했다는 것인데, 응답자 구성부터 봐야 한다. 고용주(사장)보다 근로자(직원)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유급휴일 확대에 마다할 월급쟁이가 얼마나 되겠나. 굳이 조사하려면 급여를 주는 쪽에 물어야 할 사안이다. 학생들 응답은 또 어떠하겠나. 이토록 부실한 조사에서도 자영업자의 63%, 제3자 격인 전업주부는 66%가 반대한 것을 봐야 한다.
국민경제와 산업현장에 충격을 덜 주면서 사회적으로 근로시간을 자연스럽게 줄여나가는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치열한 근로 뒤의 ‘휴식’과 일은 하지 않은 채 ‘노는 것’ 정도는 구별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누가 뭐래도 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 선심책이다. 불과 아홉 달 남은 대통령선거와 바로 이어지는 지방선거에서 어느 쪽 표가 많을지를 계산한 선거 꼼수로 볼 수밖에 없다. 마차가 말을 끈다는 평가를 받아온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오류다. √ 생각하기 - '퍼주기' 논란과 겹쳐 '선거용' 비판…"생산성 높이자" 제안도 나와야 2개의 주요 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대체공휴일 전면 시행에 나선 것은 여러 갈래의 ‘재정 퍼주기’에 이어 ‘돈 받고 놀기’의 주도로 비칠 공산이 다분하다. 아홉 달도 남지 않은 대통령선거를 의식한 또 하나의 인기영합몰이라는 비판이 나올 만하게 됐다. 휴식시간을 늘리면서 노동시간의 생산성도 함께 높여나가자는 방향이라면 바람직하다. 그러려면 “한국의 경제·산업 생산성을 이러이러하게 올려보자”는 제안이나 정책 프로그램도 제시돼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 여당이라면 유급휴일 확대에 따른 사회 각 주체의 다양한 관점과 법으로 강행할 때 뒤따르는 파장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국민소득 3만 달러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더 놀자’는 달콤한 제안보다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보자”는 당위론적 아젠다가 더 절실하다. 코로나로 어려움이 더 커진 자영사업자와 중소기업 처지도 진지하게 볼 필요가 있다. 하고 싶은 것, 편한 것보다 해야 할 것, 어려운 것을 미루지 않는 게 중요할 수도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