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경제학
시네마노믹스
(49)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下)
영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초능력을 가진 돌연변이 인간으로 인해 미국과 소련이 벌인 핵미사일 위기를 다루고 있다. 에너지 충격을 흡수해 젊어지는 능력을 갖고 있는 돌연변이 세바스찬 쇼우(케빈 베이컨)는 자신들을 소외시키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돌연변이 해방을 위해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을 계획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 대치 상황에서 쇼우는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는 초능력을 가진 돌연변이 엠마 프로스트(재뉴어리 존슨)로 하여금 미국 핵무장의 결정권자인 코널 헨드릭 대령(글렌 모슈워)을 협박하게 했다. 쇼우는 소련의 결정권자에게도 똑같은 압박을 가했고 미국과 소련은 모두 미사일을 설치하는, 게임이론에 따른 ‘우월전략균형’ 상태에 빠진다.
‘사전적 확약 전략’ 위해 배수의 진을 친 미국터키에 미국 미사일이 설치된데 이어 소련 미사일을 실은 배가 쿠바에 다가선다. 이때 미국은 반전을 만들어낸다. 대통령이 TV 생중계로 조건부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소련의 함선이 금지된 선을 넘을 경우 우리는 즉각 보복할 것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언론에 강한 어조로 선포한 말들은 주워 담기가 어렵다. 미국은 자기 스스로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소련도 그것을 매우 잘 알았다. 이에 따라 게임판은 <표2>처럼 흔들리게 된다.시네마노믹스
(49)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下)
게임이론에서 이런 전략을 ‘사전적 확약 전략(precommitment strategy)’이라고 칭한다. 상대방에게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패를 일부러 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쟁에서 후방의 교량을 태워버리면 상대방에게 자신은 후퇴할 의사가 없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보낼 수 있다.
이 전략에 의해 소련의 최적 전략은 변하게 된다. 미국이 미사일을 설치했는데 자신도 미사일을 설치하면 결과는 전쟁이다. 차라리 미국만 미사일을 설치하는 쪽이 낫다. 소련은 쿠바로 향하던 함선의 뱃머리를 돌리게 된다. 게임이론가 앞에 무릎 꿇은 쇼우게임이론의 핵심은 변수들에 의해 게임 참여자들의 행동은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게임의 변수들을 통제할 수 있다면 게임 참여자들의 행동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쇼우가 노렸던 것도 이 부분이다. 동시에 미국도 그 사실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게임판을 놓고 사전적 확약 전략을 펼치게 된 것이다.
실제 역사적으로 냉전 당시 양국의 정치경제학자들은 게임이론에 근거해 상황을 예측, 분석했다. 게임판을 그리며 어떤 변수를 던져야 상대의 행동을 바꾸고 자국의 효용을 높일 수 있을지 분석했다. 그 결과가 냉전시대 40여 년간 펼쳐진 미·소 양국의 ‘힘의 균형’일 것이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전면에 등장하진 않았지만 어디에선가 게임이론가들은 당시의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을 것이다. 돌연변이의 세상을 꿈꿨던 쇼우도 게임이론가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셈이다. 비협력 균형과 협력 균형 게임이론에선 보통 상대방과 협상할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하고 추론을 시작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게임이론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표1>은 과점 기업 간의 게임 상황을 그려놓았다. 시장에선 이 두 기업만 존재하고 기업엔 높은 생산량, 낮은 생산량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결과값에는 두 기업의 생산량이 적을수록 공급이 적어지고 시장에서 이윤은 많아진다는 원리를 담았다.
게임이론대로면 두 기업 모두 높은 생산량을 선택하는 게 ‘우월전략균형’이 된다. A기업 입장에서 본다면 B기업이 높은 생산량을 결정할 시, 높은 생산량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B기업이 낮은 생산량을 결정해도 높은 생산량을 선택하게 된다. B기업도 A기업의 선택 과정을 그대로 따라간다. 이는 양쪽이 협의 없이 게임을 진행한 결과다. 이를 ‘비협력 균형’이라고 한다. 보통 게임이론에서 균형이라 하면 이 비협력 균형을 뜻한다.
하지만 이때 A기업과 B기업은 고민을 하게 된다. 서로 담합하게 된다면 분명 둘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이 있기 때문이다. 둘 다 낮은 생산량을 선택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된다면 양쪽 각각 180만원의 이익을 얻어 담합하기 전보다 20만원의 이익을 더 볼 수 있다. 이런 결과를 ‘협력 균형’이라고 부른다.
사회적 후생 관점에서 본다면 협력 균형과 비협력 균형 중 무엇이 좋은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만약 위와 같은 과점 기업들의 눈치싸움이었다면 비협력 균형이 사회 전체의 후생에 더 바람직하다. 기업들이 협력하지 않고 경쟁을 해야 더 많이 생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과점 기업 간의 담합 협상을 막는 이유다.
반대로 군비경쟁을 벌이거나 공유자원 채취를 놓고 눈치싸움을 하는 때는 협력 균형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이 경우 상대방과 서로 합의하면 군비를 적게 쓸 수 있고, 공유자원을 적게 사용할 수 있다.
구민기 한국경제신문 기자 NIE 포인트① 기업들이 게임이론에 입각해 ‘협력 균형’을 이루는 것과 담합을 통해 경쟁을 제한하는 것은 서로 다르다고 봐야할까.
② 미국과 소련의 냉전 이후 유일 강대국이 된 미국을 견제하고 힘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중국이 대항세력으로 계속 성장해야 할까.
③ 영화 엑스맨처럼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돌연변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과 인류의 차별 없는 공생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