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부터 50인 미만 중소기업에도 주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된다. 이미 예고된 것이기는 하다. 법으로 강제하는 주52시간제가 2021년부터 근로자 50~299명 사업장에 적용된 데 이어 이번에 5인 미만을 제외한 전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무수한 우려와 반대 속에서도 주52시간제가 도입되는 것은 근로시간을 줄이자는 취지였다. 근로시간을 줄임으로써 워라밸(일과 여가 생활의 균형)을 지켜주는 한편 근로시간을 줄인 만큼 고용 확대를 도모하자는 것이다. 즉 일자리 나누기다. 한국 근로자의 노동시간이 국제적으로 많은 편이라는 분석이나 지적은 한두 번 나온 게 아니었다. 문제는 현실에 비해 너무 앞서가는 ‘이상 정책’이라는 산업계의 반대와 반발이다. 만성적 인력난 속에 근로시간을 줄이면 제일 큰 타격을 받는 쪽이 중소기업계라는 우려가 그래서 계속됐다. 억지로 업무시간을 줄임에 따라 영세 사업체 종사자 소득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도 무시하지 못할 부작용으로 꼽힌다. 취약지대 근로자를 돕자는 취지의 근로시간 단축이 오히려 당사자를 어렵게 한다는 비판이다. 시행의 유예, 유연근무제 확대 등 여러 가지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준비가 덜된 주52시간제의 확대 시행, 보완책 없이 서둘러도 괜찮을까.
[찬성] 근로시간 단축은 세계적 추세…'노동 취약지대' 중소기업에 더 절실주52시간제는 과도한 노동에 허덕이는 한국 근로자의 일 부담을 제대로 줄이자는 취지에서 오랫동안 준비돼 왔다. 근로만 오래 하는 노동시간 기반의 경제성장을 언제까지 도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과 휴식의 적절한 균형은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선진사회로 가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한국도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사회에 진입한 만큼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혁신적 경제 체제를 도모해야 한다.300인 이상 중대형 사업장에서는 이 제도가 2018년부터 시행 중이다. 부작용이나 현장의 논란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정착해 나간다고 볼 수 있다. 근로시간의 단축, 그에 기반한 주52시간제는 이제 돌이킬 수도, 반대로 갈 수도 없는 시대적 과제다. 경제·산업계를 비롯해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여기에 맞춰 가면서 ‘사각지대’가 없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중소기업으로 확대는 당연하다. 여러 가지 우려가 많았지만 50~299인 규모 사업장에는 이미 시행이 되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 된다.
한국 근로자의 노동시간이 국제적 비교에서도 길다는 사실은 거듭된 통계로 확인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노동기구(ILO) 등의 자료를 지금이라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저녁이 있는 삶’ ‘휴일이 보장되는 생활’은 현대인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요 덕목이다. 노동 취약지대 근로자에게는 더욱 절실하다. 충분한 휴식을 통한 몸 건강과 마음의 안정이 확보돼야 생산성도 올라가고 경제도 성숙해진다. 중소기업과 소규모 사업장의 근로자일수록 이 권리는 더 보장돼야 한다. 그런데 정작 더 절실하고 중요한 시행 대상 앞에 와서 지금 보류하면 노동시장의 격차만 커질 뿐이다. 중소기업 경영계가 제기하는 우려나 고민은 일단 시행하면서 보완을 시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반대] 임금 줄어 근로자들도 피해…시행 유예하고 보완 장치 필요정부와 국회가 중소기업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필요가 있다. 주52시간제가 아니라 그보다 근로시간을 더 단축해서 중소기업계가 살아나고 근로자 생활에 실제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나. 주52시간제를 무조건 배척하는 게 아니라, 지키고 싶어도 지키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럴 여건이 못 되는 것이다. 유례없는 취업난 가운데서도 중소기업계는 만성적 인력난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쇼크 여파로 외국인 근로자마저 줄어들었다. 부족한 인력을 어디에서 조달하나.
근로시간을 줄이고 그에 맞게 인력을 충원한다고 해도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이 문제다. 기술력이 부족하고 경영 규모도 영세한 소규모 중소기업계에서는 대체로 인건비 비중이 높다. 인건비 증가는 곧바로 경영에 악영향을 준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주52시간제 시행에 따른 중소기업계의 인건비 추가 부담은 2조9000억원에 달한다. 안 그래도 급등한 최저임금이 중소기업계에 메가톤급 충격을 주는 상황 아닌가.
그럼에도 이 제도를 강행하려면 기업의 업종이나 개별 근로자의 직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유연근무’가 가능해야 한다. 그런 제도적 보완도 없이 주52시간을 넘기면 사업주를 처벌하겠다는 식은 곤란하다. 취지가 좋다고 획일적이고 경직된 제도를 무리하게 강행하면 그에 따른 부작용만 커질 뿐이다.
강력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으로 이래저래 한국 중소기업인의 고민이 커졌다. 늘어난 규제 때문에 사업을 접겠다는 기업인이 늘어난다. 일자리가 없어지면 선진적 근로시간 제한 제도도 소용이 없다.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주52시간제 도입으로 30~299인 사업장의 근로자 월급은 39만원(12%), 5~29명 기업은 32만원(13%)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저녁이 있는 삶’ 정책이 근로자로 하여금 야간·주말 알바를 뛰는 ‘투잡 족’으로 내모는 것은 아닌가. √ 생각하기 - 방향 맞지만 규제 겹치며 큰 부담… '유연(탄력)근로제' 병행도 대안 중소기업 및 그 종사자를 위한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하나하나 따로 보면 명분이 있고, 취지도 나무랄 바가 못 된다. 문제는 이것들이 겹치고 쌓일 때 벌어지는 상황이다. 최저임금도 몇 년간 급등했고, 주52시간제 전면 시행으로 근로시간도 법으로 줄이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사업장의 안전 문제는 최우선 과제가 됐다. 중대한 인명 피해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는 형사 처벌을 받는다. 고용 관계에서도 근로자 권한은 과하다고 할 정도로 늘어났다. 이런 흐름 속에서 주52시간제 전면 시행, 영세 소규모 업체로의 확대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중소기업이 충분히 대비하고 준비할 시간을 더 준다거나, 업계에서 절실히 바라는 유연(탄력)근로제 등을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보완책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근로시간을 줄여 나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임은 분명하다. 다만 당위성에 매몰된 나머지 현장의 애로 하소연에 귀를 막으면 애초의 취지는 빛을 잃고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