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용지에 대한 규제가 강해질 전망이다. 국회가 농지법 개정에 나서면서 농지를 취득하거나 소유할 수 있는 요건이 좀 더 엄격해질 공산이 커졌다. 아울러 정부에서도 농지 관리의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나섰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내부정보를 악용하면서 빚어진 불법 투기의 후폭풍이다. 정부와 여당이 도둑맞은 뒤 외양간 고치듯 뒤늦게 농지 관리에 나서면서 추진되는 농업 규제다. 문제는 도시민이 취미생활이나 자녀 교육 등으로 쓰는 주말농장의 취득과 관리에까지 행정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농지는 농어민 외에는 취득이 쉽지 않다. 해묵은 전통 논리인 ‘경자유전(耕者有田: 농사를 짓는 사람이 토지를 소유한다)’ 이론에 따라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는 겹겹 규제를 받고 있다. 그 틈새로 아주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농지 소유가 주말농장용 땅 매입이다. 주말농장 용지는 300평(1000㎡)이라는 매입 한도가 있다. 이런 농지 구입에도 취득 심사를 받도록 하고, 특별사법경찰제를 도입해 영농 여부를 점검하겠다는 것이 추가되는 규제다. 농민들로서는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농지 거래가 위축되면서 재산가치가 떨어질 것이 뻔하고, 노후대책은 더 힘겨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농지 구입을 바라는 도시민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된다. 토지 투기를 막기 위해서라면 주말농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도 될까.
[찬성] 투기의 통로 될 만한 곳 차단…실제로 농사 짓는 지 살펴봐야LH 불법 투기가 대한민국 사회에 미친 영향과 파장을 냉철하게 돌아보자. 서울 주변에 제3기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정책을 세우고 개발을 담당하는 공공부문 실무자들이 내부의 공적 자료로 어떤 일을 벌였나. LH라는 일개 공기업만의 불법·탈법이 아니었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지방의회 의원들과 함께 나라살림을 살펴야 할 국회의원들까지 연루됐다. 조사 대상자에는 중앙부처 전직 공무원까지 포함돼 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죄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런 정도면 망국적 ‘불법 투기 공화국’이라고 해도 달리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이 모든 게 부동산, 특히 토지 등에 대한 취득과 관리에서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농업인만이 농지를 갖는다는 원칙이 확립되고 제대로 지켜졌다면 애초에 문제가 생길 여지도 적었다. 그런데 농지에 대한 관리가 부실했다. 위장 전입, 명의를 신탁한 대리구매 같은 방법도 없지 않았다. 도시민이 소유한 농지가 농사짓는 땅으로 쓰이는지 확인하는 것도 형식적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오죽하면 대통령 부부까지 퇴직 후 생활할 개인 집 부지로 구매한 땅을 실제 농지로 활용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빚어지지 않았나.
따라서 주말농장용 농지라고 해도 좀 더 엄격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다. 그게 불법 투기를 원천적으로 막는 길이다. 주말농장 용지는 300평으로 규모에서부터 이미 규제받고 있지만, 주택지로 전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 정도의 땅도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다. 투기 광풍이 불 때는 이보다 더 작은 땅도 이른바 ‘지분 쪼개기’로 여러 조각을 내 사고파는 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태 아닌가. 신규 규제라고 해봤자 허가를 받아서 주말농장용 농지를 구입하라는 것과 과연 실제로 농사를 짓는지 살펴보겠다는 정도다. 주말농장이 목적이라면 여기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실제 구입 대신 임대해서 주말농장을 하도록 하자는 다른 법안도 취지는 같다. 불법 투기 근절이라는 큰 틀을 봐야 한다. [반대] 규제 늘면 주말농장 수요 사라져…농민들의 재산권만 훼손하는 것불법과 편법은 내부 정보를 취급하거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무원과 관련 실무를 담당하는 공기업 종사자들이 저질렀다. 문제를 일으킨 것도, 부당이득을 취한 것도 공공 부문인데 불편과 손해는 왜 농민과 일반 도시민이 떠안아야 하나.
소규모 주말농장용 농지 구입에까지 까다롭게 취득 자격을 심사하고, 그렇게 구입한 작은 논과 밭을 실제로 경작하는지 감시까지 한다면 도시민이 주말농장을 하려 들까. 이름도 거창한 ‘특별사법경찰’이 농사를 짓는지 감시하고, 미경작 시 과태료라도 부과한다면 어디 무서워서 주말에 농사지으러 가겠나. 주말농장을 왜 하나. 도시민의 휴식, 자연과 격리된 채 생활하는 자녀들이 작물을 키우면서 ‘작은 여유’를 가져보겠다는 중산층의 소박한 생활 속 희망이 출발점이다. 그런데 이미 허용해온 300평 농지 구입까지 마치 투기꾼이라도 되는 양 온갖 서류를 내게 하고, 행여 바빠서 경작을 못 하는 상황이 돼 처벌받는다면 주말농장의 꿈은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각박한 사회를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고령자가 주축인 농민들 애로와 경제적 손실은 훨씬 현실적이다. 농어촌에는 노인이 많은 데다 농업의 생산성도 떨어져 농지 구입 희망자가 적다. 도시민은 귀촌이 아니면 원천적으로 농지를 구입할 수 없다. 그나마 주말농장 수요 등으로 농지 수요가 제한적으로라도 있고, 그렇게 농민들이 평생 피땀 흘린 터전의 재산적 가치가 유지되고 있다. 고령 농민은 평생 간직해온 농지의 처분으로 일종의 ‘퇴직금’을 갖고, 노동력 상실 이후를 대비한다. 거친 투기 대책이 농지의 경제적 가치를 뚝 떨어뜨려 농민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 농민들로서는 생존권 문제다. 안 그래도 도시의 집값 안정 정책으로 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바람에 농지를 담보로는 금융권에서 돈 빌리는 데도 제약이 적지 않다. 잘못된 주택정책과 공직의 탈법이 농민의 재산권만 제한한다면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생각하기 - 농지는 농민의 '퇴직금'…소 잡는 칼로 닭 잡아선 곤란 불법 부동산 투기 근절 차원의 규제 입법이 농민에게 생존권 문제로 다가갔다. 농민의 재산 손해가 예상돼도 불법 투기의 통로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 규제하고 틀어막아야 할까. 행정의 오류와 공직자의 기본자세 부족에서 비롯된 투기 광풍이라면 그에 맞는 대응책을 모색하고 규제는 최소화하는 게 맞지 않을까.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LH 사태만 아니었다면, 크게 봐서 최근 들어 농지 취득에 대한 규제는 조금씩 완화돼온 편이었다. 고령으로 현업에서 물러나는 농민들이 농지 처분으로 노후에 조금이나마 경제적 여유를 갖게 해주는 게 자연스럽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런데 갑자기 정책 방향이 급선회하면서 농민뿐 아니라 주말에라도 전원생활과 농사를 꿈꾸는 도시인들에게까지 불똥이 튀게 됐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동원한 격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오히려 농지에 대한 규제를 확 푸는 방안을 생각해볼 때다. 경자유전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신화 같은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농업의 현대화 과학화 기업화 전문화 대형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