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 평판 리스크
기업 평판 악화에 따른 경영상 위험
이미지 나빠져 매출·주가에 악영향
오랜 사회공헌·마케팅 노력 무력화
평판은 기업의 소중한 무형자산
"이해관계자 신뢰 얻는 데 노력하고
잘못에는 빠른 사과·성실한 수습을"
남양유업이 지난달 13일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황당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고발에 따라 세종시는 남양유업 공장에 2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예고했다. 이 회사 제품의 38%를 책임지는 생산라인을 멈춰야 할 판이다.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도 앞두고 있다. 가장 큰 부담은 인터넷에서 다시 확산되는 불매운동이다. 남양유업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며 사과했지만, 소비자들의 불신은 오히려 더 깊어지는 모습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바코드를 찍으면 남양유업 제품인지 아닌지를 핀별해주는 ‘남양유없’이라는 앱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미운털’ 박힌 기업, 시장서 외면당한다한 식품업체의 ‘무리수 마케팅’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일이 이렇게 커진 데 대해 업계에서는 “주인공이 남양유업이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평판 리스크(reputation risk)’ 관리에 실패한 결과라는 것이다. 평판 리스크는 기업이 시장과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잃게 돼 발생하는 경영상의 위험을 뜻한다. 스마트폰과 SNS가 대중화하고 모든 소문이 빛의 속도로 퍼지는 세상이 되면서 평판 리스크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기업 평판 악화에 따른 경영상 위험
이미지 나빠져 매출·주가에 악영향
오랜 사회공헌·마케팅 노력 무력화
평판은 기업의 소중한 무형자산
"이해관계자 신뢰 얻는 데 노력하고
잘못에는 빠른 사과·성실한 수습을"
남양유업은 2013년 대리점 갑질 파문부터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씨의 마약 스캔들에 이르기까지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조직적으로 경쟁사를 비난하는 글을 인터넷에 뿌린 정황이 드러나 문제가 된 사례도 2009, 2013, 2020년에 걸쳐 반복됐다. 그런데 여론이 나빠져도 회사 차원의 대응은 늘 굼뜨고 미온적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2012년 1조3650억원이던 남양유업 매출은 지난해 9489억원으로 8년 새 30% 줄었다. 이 기간 주가는 65% 급락했고, 시가총액은 4000억원 넘게 증발했다. “리스크 관리의 실패 사례로 경영학 교과서에 실릴 판”이란 얘기까지 나오는 이유다.
기업들은 소비자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사회공헌활동(CSR)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의 사회공헌 지출액은 2조9928억원으로 1년 전보다 14.8% 늘었다. 기업 한 곳당 평균 지출액은 136억원에 달했다. 회사 매출에서 사회공헌 지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0.2%로, 2011년(0.26%) 이후 가장 높았다.
평판 리스크가 무서운 까닭은, 이처럼 오랫동안 돈을 쏟아붓고 정성을 들여 구축한 기업 이미지를 한 방에 날릴 수 있다는 점이다. 회사 평판을 깎아먹은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땅콩 회항’ ‘라면 상무’ ‘맷값 폭행’ 등의 사건은 수년이 지나도 대중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평판도 기업이 지켜야 할 자산이다”전문가들은 평판이 기업에 중요한 무형자산의 하나라고 본다. 평소에는 숫자나 등급으로 측정하기 힘든 추상적 개념이지만, 관리에 실패하면 매출 감소, 주가 하락처럼 ‘눈에 보이는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권이 주채무계열(빚이 많은 대기업)의 건전성을 평가할 때도 평판 리스크가 일부 반영된다. 경영진의 위법 행위, 도덕적 일탈 등은 정성(定性) 평가에서 감점을 받을 수 있다.
2011년 출간된 책 《위기관리 10계명》은 평판을 위협하는 돌발 악재가 터졌을 때 기업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처음 24시간이 전부”며 “끝맺음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과할 일이 생겼다면 최대한 빨리 진심을 담아 사과하고, 뒷수습이 마무리될 때까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사람 사는 세상에서 당연한 얘기인데, 점잖은 경영 서적에 조언으로 실린다는 것은 이런 당연한 원칙을 때때로 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는 아닐까.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