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부터 소득세 최고세율이 42%에서 45%로 올라간다. 소득세는 사업소득과 양도소득에도 부과되지만, 납세자가 많은 근로소득에 광범위하게 매겨지는 세금이다. 소비세인 부가가치세, 기업이 내는 법인세와 더불어 대한민국을 유지하는 3대 주요 세목 가운데 하나다. 문제는 전체 근로자 10명 가운데 4명(38.9%) 비율로 소득세를 아예 내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40%는 면세자로 내버려둔 채 고소득자의 세금만 계속 올리자 가뜩이나 ‘부자증세’ 논란이 커지는 와중에 “세금 내는 사람만 더 때리는 ‘징벌과세’ 아닌가”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세금에 대한 일반적 이론은 세율을 올린다고 세금이 무작정 늘어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세율을 올리면 단기적으로나 어느 정도까지는 세수(稅收)가 늘어나지만, 어느 선을 넘어서면 세금이 잘 걷히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입증된 이론(래퍼 곡선)이다. 세금을 많이 내고 있는 계층에 세 부담을 더 키우는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세계적 추세와는 맞는 것인가.
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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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복지 수요·코로나 대응 예산 급증…증세 외에 대안 있나각종 복지 프로그램을 차질 없이 실현하자면 재원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 국가 부채를 확대한다 해도 장기적으로는 국민 부담이 불가피해진다. 부존자원이 없는 한국에서는 세금을 걷어 이런 복지 예산을 충당해야 한다.

‘부자증세’라는 비판도 생기지만 세금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모두가 예외 없이 부담하는 간접세인 소비세(부가가치세)를 올리자니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법인세는 이미 최고세율을 올린 만큼 당장은 여력이 없다. 고가 주택을 대상으로 하는 종합부동산세도 올릴 수 있는 만큼 인상 로드맵을 확정해둔 터여서 역시 당분간은 인상 여력이 없다. 근로든 사업이든 소득이 많거나 자산이 부유한 계층이 세금을 더 부과하도록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린 게 문재인 정부에서만의 일도 아니다. 2017년과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올린 적이 있지만, 이전 정부인 2012년에도 인상한 적이 있다.

최고세율을 45%로 올린다고 해도 그 대상은 1만6000명(2021년 기준) 정도에 그친다. 2018년 귀속 소득 기준으로 보면 전체의 0.06%에 불과하다. 연간 소득 10억원 이상인 납세자가 매년 2500만원 정도 더 내게 된다. 추가로 늘어나는 세수도 2021년 기준으로 3969억원 수준이고, 2025년까지로 보면 대략 4조원 정도다.

늘어나는 복지 지출뿐 아니라 코로나 대응 예산도 더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다른 부문에서는 세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 불가피한 선택이다. 양도소득세는 최고세율이 이보다 훨씬 높다. 다주택자에 대해서는 집을 팔아서 생긴 양도소득의 최고 75%까지를 세금으로 매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보다 소득세 최고세율이 더 높은 나라는 6개국이나 있다. [반대] '보편증세' 외면한 외곬 세제…자본도 좋은 일자리도 내쫓을 판최고세율 45%를 부담할 납세자 숫자 자체가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체의 0.06%로, 한 해 558조원(2021년)이나 지출하는 정부 예산에 비하면 늘어날 세수도 많지 않다. 문제는 잇따른 ‘부자증세’ ‘징벌 과세’가 미칠 파장과 부작용이다.

무엇보다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다. 45%씩의 중과세 대상도 이미 세금 부담이 큰 쪽으로 편향돼 있다. 최고세율을 올린 것이 2012년 이후 벌써 네 번째다. 최고세율이 OECD 회원국 중 일곱 번째로 높아져, 북유럽 국가들과 비교될 만큼 한국이 ‘세금 많은 나라’로 국제사회에 공인되는 것이다. 전체 근로자의 약 40%가 면세자인 것도 ‘비정상’이다. 이런 문제점은 그대로 둔 채 고소득층만 일관되게 때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안 그래도 소득 상위 1%가 근로·종합소득세수의 42%(2018년)를 부담하는 게 현실이다. 세제의 기본 원리인 ‘보편과세’ 원칙이 훼손되는 판에 정부와 여당이 납세의 쏠림을 더 부채질하면 자본도, 좋은 일자리도 다 해외로 내쫓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과도한 세금 때문에 프랑스 국민배우 제라르 드 파르디외가 이민을 간 것이나, 그보다 앞서 스웨덴 팝스타 아바와 대표 기업 이케아가 해외로 이주한 것을 극단적 사례라고 봐서는 곤란하다.

세계 어떤 나라에서든 고소득자에게는 시민권이나 영주권 문호가 더 넓고, 수익을 많이 내는 기업이나 돈 있는 사업자일수록 환영받는 ‘국적 선택의 시대’ 아닌가. 균형 잃은 세제가 좋은 일자리도 소득과 자본도 국외로 내쫓을까 겁난다. 더 큰 걱정은 세제까지 포퓰리즘에 휘둘릴 수 있다는 점이다. 부자증세라는 고소득자 때리기가 지지 세력의 표를 의식하고 계산하는 ‘선거 전술’ 차원으로 전락하면 국가 유지의 기본틀에 금이 가게 된다. √ 생각하기 - 조세저항과 국가경쟁력도 봐야…'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 원칙
[시사이슈 찬반토론] 근로자 40%를 비과세로 둔 채 소득세 최고세율 또 올린다는데
급증하는 복지 수요에 대비한 중장기 재정 계획 수립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부자증세’로 갈 때 가더라도 세금이 ‘정치공학’에 따라 좌우돼선 안 된다. 최대한으로 많은 국민이 많든 적든 세금을 내야 ‘국민개세(皆稅)주의’라는 원칙에 맞게 된다. 또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원리대로 가야 납세자들의 조세 저항이 없고 국가경쟁력도 확보된다. 복지 재원을 마련하면서 둑 터진 재정지출에 대비하려면 한쪽으로 편향된 부자증세보다는 ‘보편증세’로 가는 게 맞는 방향이다. 그래야 나라살림이 지속 가능해진다. 또 세금은 어떤 형태로든 중장기 파급효과가 큰 만큼 미래세대가 보기에도 좀 더 당당한 세제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는 말처럼 나쁜 세금제도는 좋은 일자리나 고소득계층을 구축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집권 초기 경제 살리기 조치로 기존 ‘부유세’부터 폐지한 것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이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