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제’가 2021년 1월부터 중소기업에 전면 시행된다. 근로자 300인 미만(50~299명)의 중소기업계는 준비가 덜 되어 있다며 “1년만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 정부와 국회에 호소했으나 묵살됐다. 중소기업계에는 초비상이 걸렸다. 주 52시간제를 위반하면 기업 대표자가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나 최고 징역 2년의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애로는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취업난, 실업대란의 와중에도 중소기업 쪽으로는 지원자가 부족해 구인난이 빚어지고 있어 중소기업계에서는 필요한 인력을 바로 확보할 수도 없다. 정부는 “이미 1년간 준비기간이 주어졌던 만큼 이번에는 바로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이 분명하다. 산업계 곳곳에서 중소기업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어 파장의 범위도 무척 넓다. 중소기업계가 극구 유예를 호소하는 주 52시간제, 우려되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바로 시행해야 하나.
[찬성] 근로시간 줄여나가는 게 국제추세…생산성 향상은 과제주 52시간 근무제는 근로자들의 업무시간을 줄여주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2018년 7월부터 근로자 300인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먼저 시작했다. 중소기업에는 그동안 준비기간이 주어졌다. 1년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근로자 수가 5~49명인 소기업에도 적용되게 돼 있다.중소기업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비해 재무상태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인정된다. 근로여건도 더 열악한 경우가 많다. 어떤 조사를 보더라도 평균 임금이 훨씬 낮은 게 현실이다. 그래도 근로자들의 과도한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 고용과 근로 관련 국제기구의 통계를 보면 한국 근로자들의 근로 시간은 과도하다. 이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자체 조사를 보면 중소기업 상당수가 주 52시간제에 대한 준비를 해왔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을 이미 대세로 받아들일 태세가 돼 있다는 의미다. 중소기업의 규모나 종류가 워낙 다양해 산업별로, 또 기업 크기나 경영 상태에 따라 이 제도를 받아들이는 체감도가 다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산업과 기업의 특성을 모두 반영하면서 제도 운영을 할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시행 이후에 계속 문제가 나타난다면 보완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고, 도저히 산업계가 받아들일 수 없거나 노동조합 등 근로자 그룹 스스로가 제도 변경을 원한다면 그때 가서 법과 제도 변경을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전까지는 일정 예정된 대로 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됨에 따라 근로자들 급여가 줄어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근로자와 기업이 생산성을 높여가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언제까지 과잉노동으로 소득을 보전해갈 수는 없다. [반대] 중기 근로자 수입 감소…대기업과 임금격차도 더 커질 것충분한 준비 없이 중소기업을 범법자로 몰아세울 수는 없다. 법 위반을 않으려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코로나 쇼크 와중에 근로시간까지 줄어들게 되면 중소기업계의 인력난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가뜩이나 저임금으로 인해 중소기업 근로자들 수입부터 줄어들뿐더러 이런 저임금체제에서 중소기업 쪽으로 구직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구인난 와중에 일자리도 줄어들 것이다.
야근이나 휴일 근로의 길을 막게 되면, 수주량이 밀리거나 일시적으로 주문량이 몰려도 납기를 맞추기 어렵게 된다. 중소기업과 종사자들을 위한다는 정책이 당사자에게 고통을 주는 결과가 된다. 소득이 한계상황에 있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급여가 줄어들게 되니 근로시간 단축이 고마운 일도 아니다.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거나 ‘투 잡(two job)’으로 내몰리는 저소득 근로자들 숫자가 만만찮게 될 것이다. 고용부는 많은 기업이 준비돼 있다는 자체 조사를 내밀지만, 중소기업중앙회 조사를 보면 84%의 기업이 아직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시행의 부작용에 대비한 보완 입법도 말뿐이다.
지난 3년간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올라가 중소기업에는 임금 여력이 없다는 현실도 감안돼야 한다. 근로시간이 줄면 임금도 덜 지급돼야겠지만 노조가 있고, 근로자들도 가계를 꾸려가는 회사가족인데 무작정 임금을 줄일 수만도 없지 않나. 그렇게 경영이 어려워지면 회사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근로자에게 돌아간다.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가 될수록 있는 기업조차 해외이전을 강구할 것이다. 이래저래 소득도 일자리도 감소할 위험만 커진다. 국내 중소기업계에는 아직 노동집약 업종이 많다. 이들에게 강제적 근로시간 단축은 큰 어려움이 될 것이다. 심각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격차를 더 키울 것이라는 점은 왜 못 보나. √ 생각하기 - 기업성장 사다리 끊어져선 안 돼…보완책 마련해 경쟁력 유지해야 저임금 저소득 근로자들을 위해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린 것이 어떤 파장을 초래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근로시간을 법으로 줄이면 대기업 월평균 임금 501만원, 중소기업은 231만원인 임금격차는 얼마나 더 벌어질까도 고려될 만하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중견기업과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데는 도움이 될까, 걸림돌이 될까. 나름 ‘제조업 강국’으로 자리잡아가는 한국의 산업계에 기업 성장의 사다리는 존재할 것이며, 제조업의 기반에는 어떤 변수가 될까. 야근, 주말특근이 줄고, 이에 따라 임금이 줄어들어도 숙련기술자들이 중소기업에 계속 남아 있을까. 중소기업이 요구하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이는 것도 그나마 현실적인 보완책은 될 수 있다. 선택근로제 연장도 보완방법은 된다. 하지만 이런 제도는 관련 입법안만 국회에 쌓여 있을 뿐이다.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이상만 좇다가 국가의 산업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게 큰 문제점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