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법정 최고금리를 연 24%에서 20%로 4%포인트 내리기로 했다. 법을 개정하고 관련 시행령까지 고치면 1년쯤 뒤에는 시행될 전망이다. 취지는 서민 금융부담, 즉 대출금 이자를 덜어주겠다는 것이다. 최고금리를 적용받는 계층은 주로 저소득·저신용 그룹이 대부분이어서 경제적 약자 그룹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시중의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고 대부분의 대출자 금리 부담이 줄어드는 게 분명한 만큼 취약계층도 가능하다면 금리 부담을 덜도록 해주는 것은 의미 있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약자를 더 궁지로 내몰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앞서 법정 최고금리를 낮출 때면 대부업체 상당수가 폐업하거나 신용대출을 중단했다. 법으로 보호하려는 계층이 바로 그 법 때문에 피해를 봤던 것이다. ‘시중의 돈값’인 금리를 법으로 강제하는 게 궁극적으로 경제적 약자를 돕게 될까.
[찬성] 금융약자에게도 저금리 혜택 돌아가게 해야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연 0.5%일 정도로 저금리 시대다. 이런 저금리가 단시일 내에 크게 변할 가능성도 그다지 높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최고금리’라지만 연 24%로 두는 것은 지나치다. 금융약자에 대해 정부가 외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저금리 시대, 금융 빚에 따른 부담 경감은 모든 대출자에게 두루 적용돼야 한다. 최고금리를 인하하면 저신용자는 아예 대출시장 밖으로 내몰린다는 우려도 있지만, 그런 부작용은 금융정책과 행정으로 최대한 막도록 노력하면 된다.경제부문에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도 ‘포용적 성장’이다. ‘포용적 복지’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 지원을 확대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현금을 나눠줄 수는 없지 않은가. 무수한 논란 속에 대출 자체를 없애주는 빚탕감까지 시도한 판에 금리 부담을 덜어주는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2017년 정부는 빚탕감 대책으로 214만3000명의 채무기록을 전산과 서류 등에서 완전히 삭제해 금융회사를 통한 금융거래를 새로 시작하게 한 적이 있었다. ‘상황이 어려운 빚 ’때문에 경제활동에 발목이 잡히고 재기가 힘든 약자 지원 차원이었다. 그때도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문제가 제기됐고, “금융의 자기책임 원칙을 허물어서는 안 된다”는 우려와 비판이 나왔지만 나름대로 의미는 있었다.
금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연 이자가 20%를 넘어서는 대출을 이용하는 사람은 약 239만 명이다. 시행 때까지의 경과기간 등을 감안할 때 이들 가운데 87%가량이 혜택을 받으면서 줄어드는 대출이자 부담은 4830억원 정도 될 것으로 추산된다. 금융발전을 위해서는 금리 문제를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지적이 타당하기도 하지만, 코로나 위기로 인한 서민의 어려움을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반대] '금융의 자기책임' 원칙 허물고 약자를 더 궁지로 내몰 것최고금리의 상한선을 법으로 제한하겠다는 의도는 선(善)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약자를 더 힘들게 할 것이라는 게 ‘불편한 진실’이다. 2016년 3월 19대 국회가 법정 최고금리를 연 34.9%에서 27.9%로 낮췄을 때 어떤 일이 뒤따랐나. 15개월 만에 대부업체의 38%가 폐업하거나 신용대출을 중단했다. 대부업체가 없어지거나 이들이 대출을 해주지 않으면 금융취약층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허가도 없는 불법 사금융은 대출 때 극단적으로 ‘신체장기 포기각서’까지 받고, 연체 시 채권추심(대출회수)도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금리가 높다고 해도 대부업체들은 대부분 금융당국에 정식으로 등록 승인을 받은 곳이어서 최소한 그런 불법행위는 없지만, 불법 사채시장으로 가면 폭력 영화에서나 나오는 참사가 현실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금시장의 다양한 조달 방식도 봐야 한다. ‘정부 허가증’을 바탕으로 영업하는 은행 등과 달리 대부업체 같은 고금리 금융회사는 대출을 위한 조달 금리부터 높고, 고정 경비도 훨씬 많이 든다. 연체 가능성이 높고 대출금을 떼일 확률도 일반 제도권 금융회사보다 훨씬 높다. 이런 것이 비용으로 포함돼 대출금리가 올라가는 것이다. 조달된 자금의 원가가 완전히 다르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개입도 문제지만, 표를 의식한 ‘선심성 정치 논리’가 스며들면 금융의 자율성, 자기책임의 원칙은 다 무너지게 된다. 그 결과는 금융의 퇴보이고, 산업 혈맥으로서의 금융 기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금리는 결국 ‘돈의 가격’이고, 이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르게 된다. 무리하게 이를 가로막으면 필요한 곳에 돈의 공급이 어렵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취약계층 몫이다. √ 생각하기 - 불법 사금융 부추긴 일본 선례도 참고할 만이상과 현실이 부딪칠 때가 많다. 수요와 공급, 가격 문제를 정부 입장이나 ‘당위론’의 시각에서 접근할 때 특히 그런 경우가 많다. 이럴 때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 쪽으로 치우치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선한 의도일수록 위험은 더 커진다. 정부의 과도한 가격 개입은 이중가격을 초래하거나 필요한 재화 및 서비스를 시장에서 쫓아내는 역효과를 내는 게 대출시장만의 ‘정부 개입의 역설’은 아닐 것이다.
과거 프랑스의 ‘로베스피에르의 우윳값 통제’ 이래 계속된 하나의 교훈이다. 일본에서도 2010년 최고금리를 낮추자 불법 사금융이 급증했었다.
금융취약층, 경제적 약자 보호도 물론 필요하다. 금리책정을 법으로 강제하기에 앞서 고금리 시장에서 무리한 빚추심은 없는지, 대출에 불공정 약관은 없는지, 업계의 탈세나 불법 영업은 없는지부터 꼼꼼하게 살펴보면 어떨까. 그러면서 감세(減稅) 등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해 대부업계 쪽에서 금리를 내리도록 유도할 수는 없을까.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