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공부방

김정호 박사의 시사 경제 돋보기
코로나 불황에 미국도 돈 많이 풀었는데 왜 달러화 가치는 떨어지지 않을까
안녕하세요? 오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미국 달러 강세 현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국은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 중 하나입니다. 실업자도 많이 발생했고, 그걸 해결하려고 돈도 엄청나게 풀었습니다. 미국 정부가 긴급 지출한 자금이 국내총생산(GDP)의 9.1%입니다. 독일의 10%보다는 작지만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나라 대비 거의 10배나 됩니다.

정부만이 아니라 중앙은행(Fed)도 엄청나게 돈을 풀고 있습니다. 양적완화를 통해 미국 정부의 장기 국채를 매입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기업들의 회사채까지 매입합니다. Fed는 외국에도 달러를 제공하죠. 지난 3월 19일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을 했잖아요. 그게 미국 달러를 풀어내는 또 다른 경로입니다. 그 금액 역시 치솟고 있죠. 4000억달러를 넘습니다.

이런 실적은 Fed의 대차대조표에 자산으로 기록됩니다. 바로 돈을 찍어낸 실적이죠. 국제신용평가기관 피치의 4월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4분기 Fed의 자산 규모는 GDP의 19%인데 2020년엔 32%로 증가할 것이라고 합니다.

달러화 많이 풀어도 올초보다 6% 가치 상승

오늘의 주제인 달러 가치를 살펴볼까요? 돈은 많이 풀릴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상식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가장 많이 풀린 돈이 달러니까 미국 달러 가치가 떨어졌을 것으로 기대하는 게 순리죠. 그런데 현실은 오히려 반대입니다. 중요 6개 통화에 대한 미국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를 보면 올해 1월 1일 96.45였는데요. 오르락내리락하다가 5월 14일 현재 102.29가 됐습니다. 연초에 비해 6%가 오른 겁니다. 가장 많이 풀린 돈인 달러의 가치가 오히려 오른 거예요.

반면 대부분 신흥국의 통화는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신흥국은 이머징 마켓으로 불리는데요. 성숙 시장(mature market) 또는 선진국 시장에 대응하는 개념입니다. 중국, 인도, 중남미 국가,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말합니다. 한국도 신흥국 범주에 들어갈 때가 많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12개 나라의 코로나 이후 미국 달러에 대한 환율 변화를 추적해봤습니다. 통화 가치 변화율이 전부 마이너스입니다. 브라질이 -30.8%로 가장 많이 떨어졌군요. 러시아는 -16.0%, 한국은 -5.7%입니다. 중국은 -2.0%로 나타났네요.

신흥국 화폐, 위험자산으로 분류돼 가치 하락

왜 미국은 돈을 마구 풀어내는데 가치가 더 올라갈까요? 반면 미국에 비해 별로 돈도 많이 풀지 않는 신흥국의 통화 가치는 떨어질까요? 자국 통화가 안전자산인지 또는 위험자산인지의 차이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달러는 국제 기축통화(reserve currency)이기 때문에 안전자산 중에서도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여겨집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무역의 88%가 달러로 거래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 이외 나라들이 보유한 부채의 속성인데요. 영국은행에 따르면 신흥국 부채의 3분의 2는 달러 표시로 돼 있습니다. 빚을 갚으려면 달러가 필요한데 코로나 사태로 수출은 안 되니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된 나라가 많습니다. 이럴수록 투자자들은 불안하니까 신흥국에 투자했던 돈을 빼내서 달러로 바꾸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겪으면서 중국은 약이 오를 수 있습니다. 경제 규모는 미국과 비슷한데 경제위기 상황에서 중국 돈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줄어드니 말입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요. 달러가 아직까지 독보적인 기축통화 역할을 이어가는 것은 미국 경제가 강해서라기보다 거래의 자유와 투명성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중국은 환전이 자유롭지 않고 외환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베일에 가려져 있어요. 중국 공산당이 환율 결정과 자본 유출입을 자유화하지 않는 한 위안화가 기축통화 지위에 오르기는 힘듭니다.

돈의 가치 하락보다 더 무서운 자본 유출

아무튼 달러가 강세인 만큼 신흥국의 통화 가치는 떨어집니다. 신흥국 관점에서 더욱 무서운 것은 자본 유출입니다. 신흥국의 자본 유출입 상황은 국제금융협회(IIF)가 계속 추적해오고 있는데요. 그래프는 올해 1월 21일 이후 신흥국의 자본 유출 상황을 보여줍니다. 파란색은 주식을 처분한 것, 빨간색은 채권을 처분한 금액입니다. 아래축의 t는 1월 21일이고 그 뒤의 숫자는 며칠이 지났는지를 말합니다. T+75는 4월 5일을 뜻합니다. 그 75일간 무려 970억달러가 신흥국에서 유출됐습니다. 외국 자본이 이렇게 빠져나가니 달러에 대한 환율이 오르고 자국 통화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잘못하면 외환위기로 치달을 수도 있는 겁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2020년 2월 자본 유출이 시작돼 3월에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3월 19일 이전까지 원·달러 환율이 거의 1300원대까지 치솟은 것은 자본 유출의 결과입니다. 3월 19일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소식이 전해지면서 1220원 선에서 겨우 안정됐습니다. 자본도 유출이 멈추고 유입으로 전환됐습니다.

NIE 포인트

①세계 무역의 88%가 달러로 거래되는 등 미국 달러화가 세계 기축통화 지위를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②미국 달러화의 가치가 오르면 다른 나라와 교역에서 수입이 늘고 수출이 줄어 무역수지가 악화될 텐데 달러화 강세가 미국에 유리하기만 할까.
③G2 국가임에도 위안화의 국제적 지위가 약한 중국이 국가 차원의 디지털화폐를 처음 만든다는데, 이는 기축통화 역할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