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주목되는 美 반도체·원전 복원 선언 … 산업은 있을 때 지켜야
미국의 산업전략이 급선회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자급(自給)을 추진하고 원전산업 부활을 지원하는 것이 그 신호탄으로 보인다. 반도체 자립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공급망 혼란을 막고, 원전산업 지원은 중국과 러시아의 독주에 제동을 걸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다.
이런 움직임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한다. 무엇보다 산업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반도체산업 원조인 미국의 상황은 과거와는 크게 다르다. 인텔이라는 비메모리 강자가 있지만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는 한국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주도한다. 또 많은 미국 기업이 대만의 반도체파운드리(수탁생산) 업체인 TSMC를 통해 시스템 반도체를 만들고 있다. 이렇다 보니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 TSMC 공장을 미국으로 불러들이려는 계획까지 거론하는 마당이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원자력 종주국인 미국은 스리마일원전 사고 이후 탈(脫)원전으로 돌아서면서 원전 경쟁력을 상실했다. 뒤늦게 원전산업을 살리겠다지만 인력·기술·건설 등 생태계 전반을 복원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내에서 한국 일본 등과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의 ‘산업 복원’ 선언에 담긴 또 다른 의미는 자국 중심의 안전한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흐름이다. 미·중 충돌에 따른 공급망 재편이 코로나19로 더 가속화할 것이란 얘기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미국과의 갈등으로 반도체 기술확보 전략에 차질이 빚어지자 자체 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가 최첨단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하고 창신메모리, 푸젠진화 등이 D램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이 원전시장을 자국 기업들에 몰아주면서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기업의 유턴을 촉진하고 해외 첨단산업 유치를 통해 한국을 ‘첨단산업의 세계공장’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자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을 강화하면 문 대통령이 언급한 세계공장 전략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다만 정부가 기업·산업정책에서 발상의 전환을 한다면 길이 열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산업을 있을 때 지키겠다’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 반도체는 우리 경제의 최대 버팀목이다. 대기업 주도 산업이란 이유로 정부가 인력 양성, 연구개발 등의 지원에서 배제하면 안 된다. 세계 최고 경쟁력을 지닌 원전의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탈원전 정책도 즉각 멈춰야 한다.
반도체와 원전만이 아니다. 국내 주력산업과 신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나간다면 미·중이 아무리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강화해도 입지를 넓힐 수 있다.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한국이 가장 유리한 거점이란 확신이 든다면 국내 기업은 물론 외국 기업도 자연스럽게 몰려들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5월 12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공급망 혼란
주목되는 美 반도체·원전산업 재시동
중국 '반도체굴기' 가속…한국 긴장해야
전 세계를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넣은 ‘코로나 쇼크’를 산업적 관점에서 볼 때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무엇보다 세계 각국이 ‘비교우위’에 입각해 쌓아온 ‘밸류 체인’ ‘산업생태계’가 크게 흔들렸다는 사실이다. 각국은 그동안 잘할 수 있는 기술에 집중하면서,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을 키워, 모두가 도움 되는 쪽으로 분업의 이점을 활용해왔다. 한국의 대표적인 주력산업인 반도체도 그렇게 성장해왔다.
그러나 코로나로 수많은 생산 공장이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게 되고 인적교류까지 제한되면서 사정이 급변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중국에 소재나 기초재료를 과도하게 기대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경각심이 생겼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아주 간단한 방역 마스크 한 품목을 생산하는 데도 중국에서 기본 자재가 조달되지 않자 바로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고 ‘마스크 대란’까지 빚어졌다. 중요한 물품일수록 자체 조달이 필요하고, 최소한 공급원을 다양하게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경각심이 생긴 것이다.
산업의 쌀, 모든 산업에서 빠질 수 없는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첨단 무기에서부터 교통 통신, 오락까지 예외지대가 없는 반도체 제품을 자국 통제선 안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국에서 나오게 된 배경이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보다 싼 비용, 경제력 확보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비용이 문제가 아닌 시대가 됐다. ‘반도체 굴기’를 국가적 목표로 내걸어왔던 중국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국가적 핵심 산업으로 열심히 키우겠다는 전략에 속도를 더 내게 됐다. 안 그래도 미국과 중국 간에는 통상과 교역, 기술경쟁 차원을 넘어서는 패권 다툼이 벌어져 왔다.
원전 문제도 큰 틀에서는 같은 맥락이지만, 각론에서는 다소 달라 보인다. 글로벌 원전 시장도 만만찮지만, 미·중 간 진영 다툼의 논리가 깔려 있다. 한국 정부는 탈원전을 선언하고 국가 장기전력수급계획도 그렇게 짜여지지만, 세계적으로 원전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도 최근 원전 건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전문 인력부터 건설, 시설의 유지 보수에 이르기까지 시장과 산업생태계도 크다. 한마디로 아직까지 부가가치가 높은 유력 산업이다. 역시 미·중 양국의 경쟁이 치열한 부분이다.
이런 추세는 한국에 매우 불리하다. 미국이 반도체산업을 복원하고 중국도 국가적 전략산업으로 키우면 이들은 자체 필요량만 조달할까. ‘규모의 경제’가 특히 중요한 게 반도체산업인 만큼 결국 세계시장을 노리게 될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인 한국은 어떤 도전을 받게 될까. 일자리가 특별히 많고, 전후방 산업연관 효과가 높은 편인 자동차산업도 결국은 마찬가지 상황으로 내몰릴 공산이 크다. 코로나로 인한 ‘신(新)보호주의’ 기류가 이렇게 무서운 물결로 다가오고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미국의 산업전략이 급선회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자급(自給)을 추진하고 원전산업 부활을 지원하는 것이 그 신호탄으로 보인다. 반도체 자립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공급망 혼란을 막고, 원전산업 지원은 중국과 러시아의 독주에 제동을 걸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다.
이런 움직임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한다. 무엇보다 산업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반도체산업 원조인 미국의 상황은 과거와는 크게 다르다. 인텔이라는 비메모리 강자가 있지만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는 한국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주도한다. 또 많은 미국 기업이 대만의 반도체파운드리(수탁생산) 업체인 TSMC를 통해 시스템 반도체를 만들고 있다. 이렇다 보니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 TSMC 공장을 미국으로 불러들이려는 계획까지 거론하는 마당이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원자력 종주국인 미국은 스리마일원전 사고 이후 탈(脫)원전으로 돌아서면서 원전 경쟁력을 상실했다. 뒤늦게 원전산업을 살리겠다지만 인력·기술·건설 등 생태계 전반을 복원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내에서 한국 일본 등과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의 ‘산업 복원’ 선언에 담긴 또 다른 의미는 자국 중심의 안전한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흐름이다. 미·중 충돌에 따른 공급망 재편이 코로나19로 더 가속화할 것이란 얘기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미국과의 갈등으로 반도체 기술확보 전략에 차질이 빚어지자 자체 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가 최첨단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하고 창신메모리, 푸젠진화 등이 D램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이 원전시장을 자국 기업들에 몰아주면서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기업의 유턴을 촉진하고 해외 첨단산업 유치를 통해 한국을 ‘첨단산업의 세계공장’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자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을 강화하면 문 대통령이 언급한 세계공장 전략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다만 정부가 기업·산업정책에서 발상의 전환을 한다면 길이 열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산업을 있을 때 지키겠다’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 반도체는 우리 경제의 최대 버팀목이다. 대기업 주도 산업이란 이유로 정부가 인력 양성, 연구개발 등의 지원에서 배제하면 안 된다. 세계 최고 경쟁력을 지닌 원전의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탈원전 정책도 즉각 멈춰야 한다.
반도체와 원전만이 아니다. 국내 주력산업과 신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나간다면 미·중이 아무리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강화해도 입지를 넓힐 수 있다.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한국이 가장 유리한 거점이란 확신이 든다면 국내 기업은 물론 외국 기업도 자연스럽게 몰려들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5월 12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공급망 혼란
주목되는 美 반도체·원전산업 재시동
중국 '반도체굴기' 가속…한국 긴장해야
전 세계를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넣은 ‘코로나 쇼크’를 산업적 관점에서 볼 때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무엇보다 세계 각국이 ‘비교우위’에 입각해 쌓아온 ‘밸류 체인’ ‘산업생태계’가 크게 흔들렸다는 사실이다. 각국은 그동안 잘할 수 있는 기술에 집중하면서,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을 키워, 모두가 도움 되는 쪽으로 분업의 이점을 활용해왔다. 한국의 대표적인 주력산업인 반도체도 그렇게 성장해왔다.
그러나 코로나로 수많은 생산 공장이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게 되고 인적교류까지 제한되면서 사정이 급변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중국에 소재나 기초재료를 과도하게 기대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경각심이 생겼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아주 간단한 방역 마스크 한 품목을 생산하는 데도 중국에서 기본 자재가 조달되지 않자 바로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고 ‘마스크 대란’까지 빚어졌다. 중요한 물품일수록 자체 조달이 필요하고, 최소한 공급원을 다양하게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경각심이 생긴 것이다.
산업의 쌀, 모든 산업에서 빠질 수 없는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첨단 무기에서부터 교통 통신, 오락까지 예외지대가 없는 반도체 제품을 자국 통제선 안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국에서 나오게 된 배경이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보다 싼 비용, 경제력 확보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비용이 문제가 아닌 시대가 됐다. ‘반도체 굴기’를 국가적 목표로 내걸어왔던 중국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국가적 핵심 산업으로 열심히 키우겠다는 전략에 속도를 더 내게 됐다. 안 그래도 미국과 중국 간에는 통상과 교역, 기술경쟁 차원을 넘어서는 패권 다툼이 벌어져 왔다.
원전 문제도 큰 틀에서는 같은 맥락이지만, 각론에서는 다소 달라 보인다. 글로벌 원전 시장도 만만찮지만, 미·중 간 진영 다툼의 논리가 깔려 있다. 한국 정부는 탈원전을 선언하고 국가 장기전력수급계획도 그렇게 짜여지지만, 세계적으로 원전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도 최근 원전 건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전문 인력부터 건설, 시설의 유지 보수에 이르기까지 시장과 산업생태계도 크다. 한마디로 아직까지 부가가치가 높은 유력 산업이다. 역시 미·중 양국의 경쟁이 치열한 부분이다.
이런 추세는 한국에 매우 불리하다. 미국이 반도체산업을 복원하고 중국도 국가적 전략산업으로 키우면 이들은 자체 필요량만 조달할까. ‘규모의 경제’가 특히 중요한 게 반도체산업인 만큼 결국 세계시장을 노리게 될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인 한국은 어떤 도전을 받게 될까. 일자리가 특별히 많고, 전후방 산업연관 효과가 높은 편인 자동차산업도 결국은 마찬가지 상황으로 내몰릴 공산이 크다. 코로나로 인한 ‘신(新)보호주의’ 기류가 이렇게 무서운 물결로 다가오고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