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실기업 지원, 정치 말고 자립능력과 자구노력만 봐야
쌍용자동차가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그룹이 신규 투자계획을 백지화하면서 다시 생사의 기로에 몰렸다. 마힌드라는 연초 쌍용차에 23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코로나 사태’를 빌미로 불과 두 달여 만에 없던 일로 만들고 말았다. 임시 운영자금 4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생색을 냈지만 한 해 인건비의 10%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어서 경영난을 막기에는 태부족이다.
마힌드라의 갑작스런 변심은 쌍용차 임직원은 물론이고 ‘경영정상화 방안’ 발표를 기대했던 채권단에도 날벼락이다. 하지만 냉정히 돌아보면 예고된 수순이다. 마힌드라 사장은 연초에도 산업은행,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방문해 3년간 5000억원 지원을 요청하며 정부를 당황케 했다. 당시 지원 요청은 거부됐지만 4월 총선 정국을 활용해 다시 압박해올 것이란 예상이 많았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됐다.
12분기 연속 적자를 낸 쌍용차의 경영정상화를 냉철한 경제적 시각이 아닌 정치논리로 접근한 점이 마힌드라의 반격을 자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인도 방문 때 마힌드라 최고경영진을 직접 만나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 등 쌍용차 해고자 전원 복직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산업은행은 자금지원을 본격화해야 했다. 원칙을 지키는 구조조정이 기업회생과 정상화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해고자를 전부 복직시켰다며 박수를 쳤지만 근로자 모두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지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고 만 것이다. 이 사태를 마무리짓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혈세와 고통이 요구될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쌍용차 사례는 다가올 구조조정의 계절을 예고하고 있다. 불과 10여 일 전 두산중공업이 극심한 경영난을 호소하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특혜성이라는 비판에도 다급하게 1조원을 지원했다. 코로나 사태와 국제유가 폭락으로 촉발된 경제 쇼크에 따른 기나긴 구조조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정유회사들의 이익은 반토막이 났고, 항공사는 월 1조원대의 매출 손실을 기록 중이다. 1분기 세계 선박 발주량은 71% 급감했고, 해운 건설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산업들도 일제히 미증유의 충격으로 빠져들고 있다.
앞으로 계속 쏟아질 구조조정 수요에 ‘정치적 고려’를 앞세워 우왕좌왕하다가는 쌍용차와 같은 잔혹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특정 지역의 이해관계에 매몰되거나 ‘한 사람의 노동자도 해고하면 안 된다’는 식의 감성적 접근은 혈세 낭비는 물론이고 남은 일자리마저 파괴할 뿐이다.
뒤통수 친 마힌드라의 반격을 △대주주의 책임있는 역할수행 △이해관계자 고통분담 △지속가능한 경영개선 계획 마련이라는 ‘구조조정 3원칙’을 확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는 2년 전 한국GM 사태 당시 정부가 제시했던 원칙이기도 하다. 쌍용차 사태의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는 우리 경제가 ‘코로나 쓰나미’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사설 읽기 포인트
일자리 유지와 부실기업 정리 딜레마
이해관계자 입김 철저히 배제하고
경제원칙 따르는지 확실히 살펴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으로 힘겹게 극복했던 외환위기 때(1997~1998년) 한국 경제에 주어진 큰 과제가 부실이 심한 기업과 금융 부문 구조조정이었다. ‘구조조정’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던 시기였다. 한계상황에 처한 대기업과 은행을 비롯한 부실 금융회사를 정리하는 것은 IMF의 구제금융 지원 조건이었다. 물론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정상화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부실한 기업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당시 대표적인 기업이 기아자동차였다. ‘대마불사(大馬不死)’가 시대를 상징하는 말처럼 됐을 정도로 거대 제조업의 좌초에 따른 충격이 심했다. 그때도 일자리 유지의 필요성과 부실기업 정리의 불가피성이 딜레마처럼 함께 부각됐다. 여론은 기업(대주주, 경영진, 노동조합)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코로나 쇼크’가 닥친 지금도 이런 논란과 갈등은 여전히 되풀이된다. 여론은 기업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도, 경영진도 쉽게 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20년이 더 지났고, 전체적인 경제 여건과 기업이 처한 상황도 크게 변했다. 이런 구태가 쌍용자동차 지원 과정에서는 과연 되풀이되지 않을까. 한계 산업이나 경영 위기에 처한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속성상 힘들 수밖에 없다. 저마다 처해 있는 조건은 다르지만 쌍용차 외에 두산중공업 같은 경우도 있다.
부실기업 지원에 대한 원칙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정치권의 입김은 물론 정부(금융당국)의 영향력도 최대한 배제하고, 돈을 빌려준 채권단이 자기 책임하에 지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가급적 기업을 살려내는 쪽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공적자금 투입은 일단 배제돼야 한다. 대주주는 물론 경영진과 노조의 책임 분담도 뺄 수 없는 지원 조건이다.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총론에서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것처럼 하지만 막상 실행에 들어가고 각론이 제시되면 노조를 비롯해 이해당사자 모두 자기 이익의 관점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그런 점에서 쌍용자동차는 부실기업 지원의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유례없는 코로나 쇼크로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전방위로 급진전되고 있다. 그만큼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할 이유도 커졌다. 요컨대 ‘정치’와 ‘떼법’, ‘막무가내 고집’을 배제하고 ‘경제’를 보면서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다. 채권단이 부실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더라도 일관성, 한시성, 자구(自救) 전제라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쌍용자동차가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그룹이 신규 투자계획을 백지화하면서 다시 생사의 기로에 몰렸다. 마힌드라는 연초 쌍용차에 23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코로나 사태’를 빌미로 불과 두 달여 만에 없던 일로 만들고 말았다. 임시 운영자금 4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생색을 냈지만 한 해 인건비의 10%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어서 경영난을 막기에는 태부족이다.
마힌드라의 갑작스런 변심은 쌍용차 임직원은 물론이고 ‘경영정상화 방안’ 발표를 기대했던 채권단에도 날벼락이다. 하지만 냉정히 돌아보면 예고된 수순이다. 마힌드라 사장은 연초에도 산업은행,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방문해 3년간 5000억원 지원을 요청하며 정부를 당황케 했다. 당시 지원 요청은 거부됐지만 4월 총선 정국을 활용해 다시 압박해올 것이란 예상이 많았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됐다.
12분기 연속 적자를 낸 쌍용차의 경영정상화를 냉철한 경제적 시각이 아닌 정치논리로 접근한 점이 마힌드라의 반격을 자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인도 방문 때 마힌드라 최고경영진을 직접 만나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 등 쌍용차 해고자 전원 복직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산업은행은 자금지원을 본격화해야 했다. 원칙을 지키는 구조조정이 기업회생과 정상화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해고자를 전부 복직시켰다며 박수를 쳤지만 근로자 모두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지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고 만 것이다. 이 사태를 마무리짓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혈세와 고통이 요구될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쌍용차 사례는 다가올 구조조정의 계절을 예고하고 있다. 불과 10여 일 전 두산중공업이 극심한 경영난을 호소하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특혜성이라는 비판에도 다급하게 1조원을 지원했다. 코로나 사태와 국제유가 폭락으로 촉발된 경제 쇼크에 따른 기나긴 구조조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정유회사들의 이익은 반토막이 났고, 항공사는 월 1조원대의 매출 손실을 기록 중이다. 1분기 세계 선박 발주량은 71% 급감했고, 해운 건설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산업들도 일제히 미증유의 충격으로 빠져들고 있다.
앞으로 계속 쏟아질 구조조정 수요에 ‘정치적 고려’를 앞세워 우왕좌왕하다가는 쌍용차와 같은 잔혹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특정 지역의 이해관계에 매몰되거나 ‘한 사람의 노동자도 해고하면 안 된다’는 식의 감성적 접근은 혈세 낭비는 물론이고 남은 일자리마저 파괴할 뿐이다.
뒤통수 친 마힌드라의 반격을 △대주주의 책임있는 역할수행 △이해관계자 고통분담 △지속가능한 경영개선 계획 마련이라는 ‘구조조정 3원칙’을 확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는 2년 전 한국GM 사태 당시 정부가 제시했던 원칙이기도 하다. 쌍용차 사태의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는 우리 경제가 ‘코로나 쓰나미’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사설 읽기 포인트
일자리 유지와 부실기업 정리 딜레마
이해관계자 입김 철저히 배제하고
경제원칙 따르는지 확실히 살펴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으로 힘겹게 극복했던 외환위기 때(1997~1998년) 한국 경제에 주어진 큰 과제가 부실이 심한 기업과 금융 부문 구조조정이었다. ‘구조조정’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던 시기였다. 한계상황에 처한 대기업과 은행을 비롯한 부실 금융회사를 정리하는 것은 IMF의 구제금융 지원 조건이었다. 물론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정상화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부실한 기업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당시 대표적인 기업이 기아자동차였다. ‘대마불사(大馬不死)’가 시대를 상징하는 말처럼 됐을 정도로 거대 제조업의 좌초에 따른 충격이 심했다. 그때도 일자리 유지의 필요성과 부실기업 정리의 불가피성이 딜레마처럼 함께 부각됐다. 여론은 기업(대주주, 경영진, 노동조합)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코로나 쇼크’가 닥친 지금도 이런 논란과 갈등은 여전히 되풀이된다. 여론은 기업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도, 경영진도 쉽게 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20년이 더 지났고, 전체적인 경제 여건과 기업이 처한 상황도 크게 변했다. 이런 구태가 쌍용자동차 지원 과정에서는 과연 되풀이되지 않을까. 한계 산업이나 경영 위기에 처한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속성상 힘들 수밖에 없다. 저마다 처해 있는 조건은 다르지만 쌍용차 외에 두산중공업 같은 경우도 있다.
부실기업 지원에 대한 원칙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정치권의 입김은 물론 정부(금융당국)의 영향력도 최대한 배제하고, 돈을 빌려준 채권단이 자기 책임하에 지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가급적 기업을 살려내는 쪽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공적자금 투입은 일단 배제돼야 한다. 대주주는 물론 경영진과 노조의 책임 분담도 뺄 수 없는 지원 조건이다.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총론에서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것처럼 하지만 막상 실행에 들어가고 각론이 제시되면 노조를 비롯해 이해당사자 모두 자기 이익의 관점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그런 점에서 쌍용자동차는 부실기업 지원의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유례없는 코로나 쇼크로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전방위로 급진전되고 있다. 그만큼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할 이유도 커졌다. 요컨대 ‘정치’와 ‘떼법’, ‘막무가내 고집’을 배제하고 ‘경제’를 보면서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다. 채권단이 부실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더라도 일관성, 한시성, 자구(自救) 전제라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