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설]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 '위원회'에 떠넘기지 말고 제도 개혁 결단해야현 정부 들어 계층 간 소득격차가 심화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빈익빈(貧益貧)이 문제의 본질이겠지만, 계속 벌어지는 부(富)의 격차를 내버려둘 수는 없다. 양극화는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문제다. 특히 경제적 양극화는 좌우·보혁 진영 논리를 떠나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지혜를 모아야 할 당면 과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기구로 출범한 ‘양극화 해소와 고용+위원회’(양극화해소위원회)에 주목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위원회가 이처럼 중요한 국가사회적 과제를 제대로 수행해낼지 걱정이 앞선다. 대통령 자문기구 성격인 경사노위는 사회적 대화기구로 고용·노사 문제 등과 관련한 사항을 ‘협의’한다고 설치법에 명시돼 있다. 국민연금 개편 방안이 경사노위로 갔지만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한 것이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안을 산업계 요구대로 1년으로 하지 못한 채 6개월의 미봉책을 낸 것도 그런 현실적 한계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는 양극화 해소는 요원해진다. 경제적 격차 해소의 중심축은 일자리와 교육이다. 고용창출도, 교육기회 확대도 모두 정부의 주된 업무다. 교육부 고용노동부를 위시해 여러 갈래로 국가기관이 있고, 예산도 여기에 우선적으로 쓸 수 있다. 한마디로 위원회 차원의 논의가 아니라 정부가 실행 의지와 함께 정책적 결단으로 개선해나가야 할 과제가 양극화다.
양극화 문제에서 대표적인 게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 사업체 비정규직의 소득격차이며, 노조가 있는 근로자와 비(非)노조 근로자 간의 격차다. 그런데 양극화해소위원회 17명 위원 중 비정규직과 자영업자 대표는 보이지 않는다. 정부 외곽의 위원회에서, 그나마도 산하의 위원회를 통해 ‘협의’나 하는 식으로 심화돼온 양극화가 해소될까. 법과 제도, 예산까지 가진 정부가 책임을 지고 제도 개혁으로 ‘결단’을 해나가야 할 정책 과제다. 그렇게 낸 성과로 선거에서 심판받는 게 선진 정치다. <한국경제신문 11월 13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양극화·비정규직 등 핵심 현안은
각종 '위원회'가 해결하기 어려워
정부,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 필요
국가사회적으로 큰 과제라면 어떻게 풀어나가면 가장 효과적일까. 가령 사회 곳곳의 양극화 현상이나 갈수록 심화되는 경제적 격차 같은 문제라면 해법을 내기도 쉽지 않고, 단시일 안에 성과를 내기도 어렵다. 정부뿐 아니라 사회 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정부나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책임을 덜 느끼는 쪽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치적 타개’가 논의되고, 흔히 나오는 방식은 ‘위원회’다. 온갖 형태의 위원회가 정부 안팎에 많은 것에는 그런 현실적 배경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곳은 ‘행정위원회’라고 해서 정부 조직법에 근거한 정식 정부기관이다. 권한도 분명하다. 고유의 업무가 권한이 법률에 명시된 위원회 중심으로 돌아가고, 기관의 업무 자체가 위원회 형식이 적절하다는 경험과 판단에서 그렇게 됐다.
이 밖에 정부 안팎에는 자문·심의·심사위원회가 무수히 많다. 다양한 의견 수렴, 다수 전문가의 국정 참여 같은 위원회 행정의 특징과 장점도 있다. 하지만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책임 문제가 분명하지 않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등의 단점도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대한 시각과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적 대화기구로 노사정위원회가 한국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8년 1월이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지도부와 만나 유럽 모델의 노·사·정 협의체를 만들기로 한 합의에 따른 것이다. 이후 노사정위원회는 구성됐다가 사실상 없어지기를 반복했고, 문재인 정부 들어 새로 출범한 게 경사노위다. 한국노총과 달리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고 있어 노동계의 목소리도, 책임성도 다 담기지 못하는 것이 큰 한계다.
말 그대로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에서, 그것도 이 위원회 산하의 위원회에서 양극화 해소라는 우리 시대의 핵심 과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 가뜩이나 경사노위는 국민연금 개편, 탄력근로제 개선 같은 굵직한 과제를 맡고도 제대로 성과를 낸 적이 없다. 위원회의 한계가 그렇다. 독일이나 북유럽 일부 유럽국가처럼 노·사·정 모두가 진심으로 사활을 걸고 사회적 합의를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거나 그런 문화가 형성돼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위원회 방식으로 접근한다 해도 결국 중요한 것은 정부 의지다.
한국 풍토에서는 위원회를 통한 국가사회적 주요 현안에 대한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은 노사정위원회 20년 역사가 말해준다. 법적·제도적 권한이 명확한 국회도 그런 역할을 다 못하는 판이니 경사노위만 탓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정부가 책임을 지고 ‘법적 결정’과 ‘정치적 결단’을 해가면서 문제 해결을 해나가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지 않고는 유(有)노조·대기업·정규직은 408만9000원인 데 비해 무(無)노조·중소기업·비(非)정규직은 146만원인 근로자 월평균 임금의 양극화를 해소할 길이 현실적으로 없다. 2030 청년계층이 노동시장 외곽에서 받는 불이익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경사노위 산하 양극화해소위원회에는 노동시장의 이런 약자를 대변해줄 대표도 없다.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갖고 법적 권한을 동원하면서, 필요하면 예산을 적절히 집행하면서 풀 수밖에 없다. 내년 한 해에만 500조원 이상의 막대한 예산 지출을 하는 곳이 대한민국 정부다. 중요한 국가적 현안일수록 정부가 좀 더 책임을 지고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