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기의 자동차업계, '바야돌리드의 결단'이 필요하다
자동차업계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판매 부진과 생산 절벽으로 생존 자체가 불확실해지고 있어서다. 쌍용자동차는 3분기 1052억원의 영업손실로 11분기 연속 적자에다 지난 10년 새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수요 감소 속에 주력인 SUV 판매 경쟁이 치열해진 탓이다. 임원 20% 감축, 순환휴직 등 노사가 비상한 각오를 다졌지만 ‘판매 부진→적자 누적→연구개발(R&D) 차질’의 악순환으로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노조 리스크’까지 겹친 르노삼성자동차와 한국GM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르노삼성은 올 1~9월 생산량이 전년 동기 대비 24.9% 급감했고, 기존 모델 단종으로 판매 부진 장기화가 우려되고 있다. 7년 만에 희망퇴직을 받고 있지만 르노 본사의 물량 배정이 계속 미뤄져 앞날이 불투명하다. 한국GM도 올 1~9월 생산량이 14년 만에 최저다. 5년간 누적 적자가 4조4000억원에 이르는데 올해도 흑자전환은 난망이다. GM 본사가 ‘파업 지속 시 물량 감축’ 경고를 내놨고, ‘철수설’도 다시 고개를 든다.
자동차업계가 이제는 생존이 절대 과제가 돼버렸다. 경기침체의 긴 터널에 갇혀 ‘미래차 태풍’까지 맞게 된 마당에 낮은 생산성, 고비용 구조에다 수시로 파업하면서도 회사가 유지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혁신 없이는 회사도, 일자리도 지킬 수 없다.
숱한 부침을 겪은 해외 자동차공장 중에는 반면교사도 있고, 모범 사례도 있다. 호주에선 첨예한 노사 대립 속에 해외 업체들이 모두 철수해 연간 18조원의 산업과 5만 개 일자리가 사라졌다. 반면 르노가 경영 악화로 폐쇄까지 검토한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은 정반대 사례다. 르노가 물량을 유지하는 대신 노조는 임금 동결, 단체교섭 3년 주기 전환 등을 합의하는 ‘바야돌리드의 결단’으로, 세계 148개 자동차공장 중 생산성 1위로 살아났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한국경제신문 10월 21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자율차·수소차·전기차…새 경쟁시대
고비용 저효율·노사갈등 등 구태 못벗어
자동차는 연관산업 효과 커…정신차려야
자동차업계에 빨간불이 켜진 지도 한참 됐다. 산업계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차원에서는 세계적 현상이지만, 한국의 차업계는 특히 더 그렇다. 사실상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두고 경쟁은 갈수록 거세진다. 이 와중에 업계를 어렵게 하는 몇 가지 큰 변수가 있다.
무엇보다 상용화에 근접한 자율주행차의 상품화다. 업계 판도를 크게 바꿔놓을 수밖에 없는 신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자율주행차 시대에 들어서면 자동차 회사의 경쟁자는 더 이상 자동차 메이커만이 아니다. 구글 같은 IT기업이 자율주행에서는 상당한 강자다. 더불어 전기차·수소차 등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탈석유 자동차 기류 역시 업계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시장 판도를 흔들 또 하나의 변수는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공유경제의 보편화다. 고전적 개념의 ‘마이 카’는 희석되고, 차량도 필요할 때 그만큼의 비용만 내고 빌려 쓰면 된다. 한국에서 서비스 중인 ‘쏘카’만 봐도 무척 편리하다. 자동차 세금, 운행을 하지 않을 때도 내는 보험료, 고장 수리비, 주차 공간 등 차량 소유에 따른 크고 작은 부담을 다 덜어준다. 그러면서 딱 필요할 때 차를 전달해준다. 달린 거리와 시간만큼만 내면 되니 비용은 합리적이다. 공유 오피스, 공유 숙박과 주거 등 곳곳에서 ‘공유 경제’가 실현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자동차 공유가 앞서 달리면서 자동차업계는 앞으로 수요 부족을 걱정하게 됐다.
기술적·문화적 대변혁기에 수요는 예상될 정도로 줄어드는 게 자동차업계의 공통된 과제다. 세계적으로 신규시장 개척, 확보에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의 자동차업계에는 이 모든 게 위기 요인이다.
한때 어려운 시간을 길게 보낸 쌍용자동차는 11분기 연속 적자다. 연구개발(R&D) 비용 조달도 여의치 않으면 새 차(신모델) 생산이 어렵게 되고, 이로 인해 다시 판매가 부진해지며, 자금난과 경영난이 가속화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판매 부진이 심각한 르노삼성자동차도 신차 생산 계획이 취소되고, 프랑스 본사에서 배정하는 신차의 한국 생산 물량도 크게 줄었다. 이 회사 부산공장이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에 물량을 빼앗긴 것이다. 한국GM은 경영난 속에 철수설이 끊임없이 나도는 실정이다.
국내에서 규모가 제일 큰 현대자동차도 안전지대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회사의 비중이 “자동차 50%, 개인용 비행자동차 30%, 로보틱스 20%로 갈 것”이라고 한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말에 그런 위기감이 배어 있다.
한국 자동차업계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과 생산성 높이기, 시장 다각화와 새로운 고객서비스 내놓기 등으로 벽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아울러 중요한 게 노조의 변화다. 만성 적자로 회사 문을 닫느냐 마느냐 하는 판에 임금 인상과 보너스 지급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하느니 마느니 해서는 미래가 없다. 여러 나라가 자동차산업을 중시하는 것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자동차산업에는 현대 기아 쌍용 같은 완성차 메이커 외에도 무수한 1차, 2차, 3차 협력업체들이 있어 딸린 가족들이 많다. 한국 산업을 선도하는 두 축이 자동차와 반도체라고 흔히 말하지만, 매출액으로 볼 때 자동차 종사자가 더 많다.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의미가 된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판에 자동차산업이 좌초한다면 그 파장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노사 모두 단단히 정신차려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자동차업계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판매 부진과 생산 절벽으로 생존 자체가 불확실해지고 있어서다. 쌍용자동차는 3분기 1052억원의 영업손실로 11분기 연속 적자에다 지난 10년 새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수요 감소 속에 주력인 SUV 판매 경쟁이 치열해진 탓이다. 임원 20% 감축, 순환휴직 등 노사가 비상한 각오를 다졌지만 ‘판매 부진→적자 누적→연구개발(R&D) 차질’의 악순환으로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노조 리스크’까지 겹친 르노삼성자동차와 한국GM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르노삼성은 올 1~9월 생산량이 전년 동기 대비 24.9% 급감했고, 기존 모델 단종으로 판매 부진 장기화가 우려되고 있다. 7년 만에 희망퇴직을 받고 있지만 르노 본사의 물량 배정이 계속 미뤄져 앞날이 불투명하다. 한국GM도 올 1~9월 생산량이 14년 만에 최저다. 5년간 누적 적자가 4조4000억원에 이르는데 올해도 흑자전환은 난망이다. GM 본사가 ‘파업 지속 시 물량 감축’ 경고를 내놨고, ‘철수설’도 다시 고개를 든다.
자동차업계가 이제는 생존이 절대 과제가 돼버렸다. 경기침체의 긴 터널에 갇혀 ‘미래차 태풍’까지 맞게 된 마당에 낮은 생산성, 고비용 구조에다 수시로 파업하면서도 회사가 유지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혁신 없이는 회사도, 일자리도 지킬 수 없다.
숱한 부침을 겪은 해외 자동차공장 중에는 반면교사도 있고, 모범 사례도 있다. 호주에선 첨예한 노사 대립 속에 해외 업체들이 모두 철수해 연간 18조원의 산업과 5만 개 일자리가 사라졌다. 반면 르노가 경영 악화로 폐쇄까지 검토한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은 정반대 사례다. 르노가 물량을 유지하는 대신 노조는 임금 동결, 단체교섭 3년 주기 전환 등을 합의하는 ‘바야돌리드의 결단’으로, 세계 148개 자동차공장 중 생산성 1위로 살아났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한국경제신문 10월 21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자율차·수소차·전기차…새 경쟁시대
고비용 저효율·노사갈등 등 구태 못벗어
자동차는 연관산업 효과 커…정신차려야
자동차업계에 빨간불이 켜진 지도 한참 됐다. 산업계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차원에서는 세계적 현상이지만, 한국의 차업계는 특히 더 그렇다. 사실상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두고 경쟁은 갈수록 거세진다. 이 와중에 업계를 어렵게 하는 몇 가지 큰 변수가 있다.
무엇보다 상용화에 근접한 자율주행차의 상품화다. 업계 판도를 크게 바꿔놓을 수밖에 없는 신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자율주행차 시대에 들어서면 자동차 회사의 경쟁자는 더 이상 자동차 메이커만이 아니다. 구글 같은 IT기업이 자율주행에서는 상당한 강자다. 더불어 전기차·수소차 등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탈석유 자동차 기류 역시 업계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시장 판도를 흔들 또 하나의 변수는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공유경제의 보편화다. 고전적 개념의 ‘마이 카’는 희석되고, 차량도 필요할 때 그만큼의 비용만 내고 빌려 쓰면 된다. 한국에서 서비스 중인 ‘쏘카’만 봐도 무척 편리하다. 자동차 세금, 운행을 하지 않을 때도 내는 보험료, 고장 수리비, 주차 공간 등 차량 소유에 따른 크고 작은 부담을 다 덜어준다. 그러면서 딱 필요할 때 차를 전달해준다. 달린 거리와 시간만큼만 내면 되니 비용은 합리적이다. 공유 오피스, 공유 숙박과 주거 등 곳곳에서 ‘공유 경제’가 실현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자동차 공유가 앞서 달리면서 자동차업계는 앞으로 수요 부족을 걱정하게 됐다.
기술적·문화적 대변혁기에 수요는 예상될 정도로 줄어드는 게 자동차업계의 공통된 과제다. 세계적으로 신규시장 개척, 확보에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의 자동차업계에는 이 모든 게 위기 요인이다.
한때 어려운 시간을 길게 보낸 쌍용자동차는 11분기 연속 적자다. 연구개발(R&D) 비용 조달도 여의치 않으면 새 차(신모델) 생산이 어렵게 되고, 이로 인해 다시 판매가 부진해지며, 자금난과 경영난이 가속화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판매 부진이 심각한 르노삼성자동차도 신차 생산 계획이 취소되고, 프랑스 본사에서 배정하는 신차의 한국 생산 물량도 크게 줄었다. 이 회사 부산공장이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에 물량을 빼앗긴 것이다. 한국GM은 경영난 속에 철수설이 끊임없이 나도는 실정이다.
국내에서 규모가 제일 큰 현대자동차도 안전지대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회사의 비중이 “자동차 50%, 개인용 비행자동차 30%, 로보틱스 20%로 갈 것”이라고 한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말에 그런 위기감이 배어 있다.
한국 자동차업계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과 생산성 높이기, 시장 다각화와 새로운 고객서비스 내놓기 등으로 벽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아울러 중요한 게 노조의 변화다. 만성 적자로 회사 문을 닫느냐 마느냐 하는 판에 임금 인상과 보너스 지급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하느니 마느니 해서는 미래가 없다. 여러 나라가 자동차산업을 중시하는 것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자동차산업에는 현대 기아 쌍용 같은 완성차 메이커 외에도 무수한 1차, 2차, 3차 협력업체들이 있어 딸린 가족들이 많다. 한국 산업을 선도하는 두 축이 자동차와 반도체라고 흔히 말하지만, 매출액으로 볼 때 자동차 종사자가 더 많다.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의미가 된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판에 자동차산업이 좌초한다면 그 파장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노사 모두 단단히 정신차려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