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45) 국가신용등급과 펀더멘털
아르헨티나의 국가신용등급이 지난달 떨어졌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아르헨티나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B-에서 SD(선택적 디폴트)로 내렸다. SD는 국가 채무 가운데 일부를 갚지 못할 때 적용하는 등급이다. 가장 낮은 등급인 D(디폴트) 바로 위 등급이다. 최근 아르헨티나는 좌파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후보의 집권 가능성이 커지면서 아르헨티나의 경제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국제 시선이 더 많아졌다. 실제로 페소화 환율은 지난달 9일 달러당 45.31페소였으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된 직후 페소화 환율은 달러당 59.50페소로 치솟았다. 페소화 환율이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아르헨티나 통화가치가 떨어졌다는 의미다. 아르헨티나 증시의 메르발지수도 급락세를 보였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환율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외환 거래까지 통제하고 있다. 추락하는 아르헨티나 경제에 국가신용등급 강등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다. 국가신용등급이 무엇이기에 국가 경제에 영향을 주는 것일까?국제신용평가사의 신용평가
한 국가의 정부 채무 변제 능력과 의사 수준을 평가한 국가신용등급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차입 금리나 투자 여건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3대 국제신용평가사인 S&P, 무디스(Moody’s), 피치(Fitch)가 평가해 발표한다. 여기에서 신용평가란 증권이나 채권을 발행하는 국가·기업·금융회사 등의 재무상황, 경제적 환경 등 정치·경제적 요소들을 고려해 발행 주체의 신인도를 등급으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기본적으로 투자자와 금융상품 발행 주체 간의 정보 비대칭성을 완화한다는 의의가 있다. 신용도에 따라 크게 투자등급과 투기등급으로 구분한다. 아르헨티나 사례는 디폴트에 해당하는 투기 등급이다.
국가신용등급의 파급력과 부작용
3대 국제신용평가사는 주기적으로 알파벳으로 표시한 등급과 신용등급 전망(‘긍정적’ ‘안정적’ ‘부정적’) 중 하나를 밝혀 해당 국가의 건전성을 평가한다. 한국은 현재 무디스 기준으로 세 번째로 높은 등급인 Aa2(안정적) 등급이다. 이는 영국, 홍콩과 같은 수준이다. 보통 전망이 ‘안정적’이면 당분간 등급 변동 요인이 없다. ‘긍정적’ 또는 ‘부정적’을 받으면 일정 기간이 지난 뒤 국가신용등급이 오르거나 내려간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의 등급 발표는 한 국가의 외환시장과 경제활동에 영향력을 미친다. 아르헨티나의 사례에서도 봤지만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강등하자 외국인 자금 이탈이 더욱 심화돼 환율이 급등하고 외화부채 부담도 늘어나면서 경기침체가 더 깊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신용평가사들의 사후적 등급평가가 해당 국가의 경제에 더 큰 혼란을 주는 결과를 초래해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튼튼한 경제 기초 체력이 중요
국제신용평가사들의 사후적 등급 강등으로 경제위기가 더 심화되는 부작용이 있지만, 해당 국가는 경제 정책을 잘 운영해 애초 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 즉, 국가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을 튼튼히 해 위기 시에도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펀더멘털이란 한 나라 경제가 얼마나 건강하고 튼튼한지를 나타내는 경제의 기초요건을 말한다. 아르헨티나는 포퓰리즘 정책과 같은 잘못된 경제 정책을 쓰는 바람에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고 물가는 높아졌으며 결국 재정수지를 적자상태로 몰아넣었다. 또한, 경상수지가 적자 행진을 이어갔고 외환보유액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신용등급 강등은 당연한 결과였다. 한국도 높은 신용등급에 안주해 재정지출을 관리하지 않고 경제 정책을 잘못 쓴다면 국제신용평가사들로부터 경고를 받을 수 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 jyd54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