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국회는 정부 예산안 내용 꼼꼼히 살펴 세금 낭비 막아야
[사설] 1인당 115만원씩 빚 늘리는 내년 예산, 얼렁뚱땅 심의 안 된다

정기국회가 개원은 했지만 순탄치 않아 보인다. 어제 여야 원내대표들이 오는 17일부터 교섭단체 대표연설, 국정감사, 정부 시정연설 등의 일정에 합의했다. 하지만 ‘조국 사태’로 여야 관계가 꼬일 대로 꼬인 판에 이 일정이 지켜질지, 그보다 추상같아야 할 정기국회 본연의 모습을 보일지 걱정이 앞선다.

가장 큰 관심사는 513조원의 ‘초(超)슈퍼 예산안’에 대한 철저한 심의 여부다. 의혹투성이에 결점이 속속 불거지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혹을 확실하게 밝히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국회의 역할과 책무가 인사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정기국회를 9월로 못 박고 100일씩이나 열도록 법에 규정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여야 간 정치적 쟁점에 대한 논쟁과 협상을 하더라도 국정감사와 법안처리 등 국회 고유의 업무는 이때 집중해 수행하라는 취지일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게 정부예산 심의다.

올해 예산안 심의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정부지출은 팽창일변도로 확장돼왔다. 그 결과 ‘재정중독’ 현상이 심해졌고, 고용·복지·보건 분야를 중심으로 한 선심성 지출은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다. 관제(官製) 일자리 만들기, 급등한 최저임금 뒷수습 차원의 중소사업자 지원 등을 비롯해 효과도 검증 안 된 현금 살포성 지출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회가 이 모든 정책의 모순점을 낱낱이 규명하고, 관련 정부지출의 효과 검증도 정기국회에서 해야 한다.

내년에 빚까지 끌어들여 513조원을 지출하려면 국민 한 사람당 실질 국가채무는 766만7000원꼴이 된다. 순수 국채발행분만 봐도 이렇게 많다. 무서운 것은 올해(651만원)보다 18%나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국회라도 ‘빚쟁이 국가’의 실상을 인식하고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밤새워 검증하고 따져야 한다. 말싸움이나 벌이다 막바지에 벼락치기 심의나 하면 재앙이다. 내년 선거를 의식한 여야 간 ‘예산 나눠먹기 짬짜미’도 더는 안 된다. <한국경제신문 9월 3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한경 사설 깊이 읽기] 국회는 정부 예산안 내용 꼼꼼히 살펴 세금 낭비 막아야
예산심의권은 국회의 권한이자 책무
급증한 예산 내용 엄정히 들여다봐
국민 세금 허투루 쓰이지 않게 해야


민주 국가에서 입법부의 역할과 책무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대한민국 국회만이 아니다. 국회의원의 권한(입법권)이라는 측면에서 보기가 쉽지만 국회의 책무(법적 의무)라는 차원에서 봐야 할 사안도 적지 않다.

국회의 기본업무나 권한이라는 것이 대개 다 그렇다. 구체적으로는 개별법을 제정하는 입법권, 정부가 짜서 집행하는 예산의 심의권, 국정감사, 주요 공직자 인사 청문 절차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좀 더 포괄적으로 보면 정부(사법부도 해당은 되지만 주로 행정부)에 대한 감시 책무가 있다. 이런 것이 법에 정해진 규정과 절차에 따라 건전한 절차로 이뤄질 때 민주국가, 선진사회가 된다. 이런 일이 정치와 행정에서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잘 이뤄질 때 경제도 성장 발전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경제는 정치 사회적 안정 속에서 성장하는 예민한 유기체인 까닭이다.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 예산심의권이야말로 국회의 권한이기도 하지만 책무라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연간 경제성장률이 2%대를 유지하느냐 마느냐 하는 위기 국면에서 정부의 예산증가율은 내리 2년째 두 자리에 육박할 만큼 급팽창하고 있다. 적절한 곳에, 제대로 쓰이는지 따져보고 감시하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자칫하면 헛돈만 펑펑 쓰고 국가 채무만 잔뜩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꼴이 된다. 그런 경고는 이미 숱하게 나왔다. 고용 노동 부문에서 급등한 최저임금의 후유증을 줄여주겠다는 예산 지출이 대표적이다.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인지 검증돼야 한다. 정부 지원만 끊기면 바로 없어질 일자리나 사업이 늘렸다는 비판이 나온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당사자들이 원하지도 않는데 억지로 지원해주겠다며 중소사업자나 중소기업을 상대로 나랏돈을 억지로 가져다 쓰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경기의 마중물 역할 등으로 불황 때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교과서적 논리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정책의 효과, 특히 막대한 재정 지출이 수반되는 정책에 대해서는 실제로 어떤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지 실증적으로 점검돼야 한다. 쉬운 말로 그만한 가치가 있는, 쓸 만한 데 쓰이고 있는지 보자는 것이다. 이런 점검은 개인이나 기업이나 정부나 마찬가지다. 유례없이 확대되는 재정에는 그런 예산 항목과 엉터리 정책이 적지 않으리라고 보는 것은 합리적 의심에 속한다.

국회의 책무이행이 중요하지만 월권도 경계의 대상이다. 국회 권한은 어디까지나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에 대한 ‘심의’다. 편성권은 어디까지나 행정부에 있다. 그런데도 국회는 편성 권한에까지 강하게 개입하는 것이 한국적 전통이다. 의원들의 지역구나 지지그룹을 염두에 둔 예산배정 개입, 이른바 ‘쪽지예산’ 강요하기다. 정부를 향한 예산강탈 행위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연일 저급한 말싸움, 몸싸움을 벌이다가도 이런 일에는 여야 간에 슬쩍 담합도 잘하는 게 여의도 풍경이다.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이런 구태가 없어질 때도 됐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