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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으로 보는 세계사 (2) 대항해 시대와 돈의 흐름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국회의원(1689년),왕립 조폐국 이사(1696년)를 맡기도 했다. ⓒ Sir Godfrey Kneller(1689)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국회의원(1689년),왕립 조폐국 이사(1696년)를 맡기도 했다. ⓒ Sir Godfrey Kneller(1689)
1540년대가 되자 페루와 멕시코에서 은광이 발견되며 엄청난 양의 은이 채굴되기 시작했다. 특히 잉카 제국이 버려둔 페루의 포토시 은광(현재의 볼리비아)은 1545년 재개발되자마자 순식간에 세계 최대의 은광으로 변모한다. 그 후 아메리카 대륙에서 스페인으로 유입된 은은 연간 20만㎏을 넘었을 뿐 아니라 옛 잉카 제국의 강제 노동 제도를 이용해 채굴했으므로 값이 매우 쌌다.

신대륙의 ‘은(銀)’이 유럽의 경제 중심을 바꾸다

이처럼 은이 대량으로 스페인에 흘러들어갔지만 스페인이 그 70%를 일련의 종교 전쟁에 탕진하는 바람에 엄청난 양의 은이 유럽 전체로 퍼졌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100년간 은 가격이 3분의 1 이하로 떨어지는 장기 인플레이션(화폐가치가 하락하고, 모든 상품의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 계속되었는데, 이를 ‘가격 혁명’이라고 한다.

자산 가치가 점차 하락하면서 유럽은 상공업자가 더욱 활약하게 됐다. 원래 상업은 1453년에 비잔티움을 무너뜨린 오스만 제국이 유럽을 압도할 정도로 그 기세가 대단했지만, 16세기 후반이 되자 유럽 경제의 활성화에 밀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무역이 점점 쇠퇴하고, 이후 유럽 경제의 중심은 지중해에서 북해 중심의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이동하게 된다.

넘쳐나는 돈이 일으킨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

미야자키 마사카쓰(宮崎正勝)
전 홋카이도교육대 교수로 저서로는《하룻밤에 읽는 세계사》《물건으로 읽는 세계사》《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흐름이 보이는 세계사 경제 공부》등이 있다.
미야자키 마사카쓰(宮崎正勝) 전 홋카이도교육대 교수로 저서로는《하룻밤에 읽는 세계사》《물건으로 읽는 세계사》《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흐름이 보이는 세계사 경제 공부》등이 있다.
17세기, 본래 지중해 동부에 자생하던 튤립을 정원에 심게 되면서 튤립은 네덜란드에서 ‘궁정의 꽃’으로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각종 구근이 수입됐고 품종 개량이 이뤄지면서 2000종류가 넘는 다양한 모양과 빛깔, 무늬를 가진 튤립 구근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희소가치가 큰 구근에 높은 가격이 책정되자 튤립은 점차 투기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한 예로, 진딧물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에 의해 탄생한 돌연변이 튤립으로 반점이 특징인 ‘브로큰 튤립’에는 3000길더(Guilder)라는 높은 가격이 매겨졌는데, 이는 당시 부유한 상인의 1년 치 수입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1637년 2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던 튤립 가격이 갑자기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상황을 발 빠르게 판단한 구근 보유자들이 적당한 시기를 가늠하다가 팔아넘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가격 폭락에 대한 공포심이 점점 커지면서 많은 사람이 너도나도 팔려고 한 결과 튤립 가격은 순식간에 100분의 1로 폭락했고, 튤립 버블이 꺼진 후 네덜란드 경제는 만성 디플레이션(물가가 하락하고 경제활동이 침체되는 현상)에 빠져버렸다.

더욱이 영국의 정치가 올리버 크롬웰이 1651년 항해법을 제정해 네덜란드의 중계 무역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결국 세 차례에 걸친 영국-네덜란드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네덜란드는 유럽의 경제 패권을 영국에 빼앗기게 된다(‘명예혁명’).

‘금본위제’의 밑바탕을 만든 뉴턴

17세기 말 영국은 아시아 경제의 영향을 받아 유럽 대륙보다 상대적으로 은값이 낮았으므로 상인이 직접 은화를 녹여 덩어리 형태로 제작해 수출하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밝혀낸 유명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1642~1727)은 1696년, 친구인 재무부 장관 찰스 몬터규(Charles Montague)의 제안으로 런던탑에 있는 조폐국의 감사가 된다. 뉴턴은 훗날 조폐국 장관으로 승진해 금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통화 시스템을 제안하는데, 이는 영국이 ‘금본위제(화폐의 가치와 금 일정량의 가치가 등가관계를 유지하는 제도)’로 이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1662년 이후에 기계로 주조된 양질의 은화와 그 이전에 쓰였던 옛 은화가 함께 유통되고 있었다. 하지만 기계로 주조된 은화는 은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유럽 대륙에서 비싸게 팔렸으므로, 계속해서 유럽 대륙으로 유출됐다. 그 결과 영국에는 가장자리가 잘려나간 품질이 낮은 옛 은화만이 남게 되었다.

뉴턴은 신대륙의 금 가격이 낮다는 점에 착안해 1717년에 기존의 다양한 금화를 통일해 21실링짜리 ‘기니 금화’를 주조했다. 뉴턴은 기니 금화를 기준으로 삼아 금값을 조금 낮추려는 목적에서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을 1 대 15.21로 정했다. 이를 ‘뉴턴의 금은비가(金銀比價)’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뉴턴의 금은비가에 맞게 금값이 하락한 것이 아니라 은값이 상승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사람들이 은화를 녹여 은의 양이 감소하자, 영국에서는 통화가 금화 중심으로 바뀌면서 은화는 차츰 보조화폐로 변했다. 그러다 1817년 ‘소브린 금화’가 등장하면서 자리를 내주게 된다. 소브린 금화는 자유롭게 녹일 수 있었고 금 약 7.32그램이 1파운드로 평가받았다. 소브린 금화는 이후 약 100년간 세계 기준통화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글 싣는 순서

①화폐의 탄생과 제국의 역사
②대항해 시대와 돈의 흐름
③동전 시대에서 지폐 시대로
④달러, 세계 돈 기준이 되다
⑤통화가 움직이는 세상


김은찬 한경BP 에디터 k_eun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