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 포커스
미·북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원인과 향후 전망은
어려워진 北 비핵화…韓·美는 남북경협 놓고 갈등 커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성과 없이 끝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대한 북한 비핵화와 북한이 요구한 제재 완화 수준이 큰 차이를 보였다는 게 미국 측 설명이다. 한반도 정세는 다시 ‘시계 제로’ 상태에 놓이게 됐다.미·북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원인과 향후 전망은
어려워진 北 비핵화…韓·美는 남북경협 놓고 갈등 커져
“배드 딜보다 노 딜이 낫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장에서 김 위원장에게 “통 크게 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올인하면 우리도 올인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올인(all in)’은 모든 돈을 한 판에 거는 단판 승부다.
북한은 이 같은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대신 유엔이 2016~2017년 결의한 대북 제재 5건을 해제할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적잖이 당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후 지금까지 모두 11건의 대북 제재를 결의했다. 2016년 이전만 해도 대부분 미사일 부품 등 군수용품 및 사치품을 제한하는 부분적 제재였다. 북핵·미사일 실험이 국제 이슈가 된 2016년 이후엔 북한의 ‘돈줄’을 죄는 경제 제재가 대부분이었다.
미국과 북한의 시각차는 진작부터 노출됐다. 지난달 21~25일 하노이에서 열린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와 김혁철 북한 대미특별대표 간 막판 실무협상 때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 조건으로 핵심 대북 제재 5건을 푸는 방안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거절했다. 5건의 대북 제재는 석탄 수출, 원유·정유 거래, 해외 노동자 파견 등 ‘돈줄’을 죄는 핵심 제재다. 이를 풀면 북한 비핵화를 압박할 수단이 사라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배드딜(Bad Deal)’을 하느니 ‘노딜(No Deal)’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미·북 정상회담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얘기가 나왔다. 1차 회담이 김정은의 판정승이었다면 2차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나쁜 합의보다는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며 “협의 가능성만 남겨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남북 경협 추진 계속”…미국과 입장차이 커져
정부는 ‘하노이 회담’ 결렬에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그러면서도 남북 간 경제협력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또 “북·미 회담은 더 높은 합의로 가는 과정으로 우리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는 많은 고비를 넘어야 확고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외교·안보 관련 부처도 적극 움직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한반도평화관련위원회 연석회의에 참석해 행정부처 방침을 설명했다. 강 장관은 “합의를 도출하지는 못했지만 각자 입장에 대한 이해를 넓힌 자리였다”며 “대화 재개 때 집중적으로 논의할 쟁점을 좁혔다”고 평가했다. 조 장관은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해 현지 시설 복구를 위한 사전 준비 등 단계적 접근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재개 방안을 미국 측과 협의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남북 경협 재개를 서두르는 이유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빨리 복귀시키기 위해서다. 대북 제재의 우회로를 열어줌으로써 협상 모멘텀을 유지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 제재가 완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남북 경협의 실질적 실마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외부 시선은 차갑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4일 ‘문 대통령이 북한의 핵 제안을 칭송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갈라섰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문 대통령은 북한의 핵심 핵 생산시설(영변 핵시설) 폐기 제안을 핵무기 프로그램 폐기의 불가역적인 단계라고 칭찬했다”며 “트럼프 행정부와 단절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NIE 포인트
미·북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유와 배경 등을 정리해보자.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어떤 형태의 부메랑으로 북한을 옥죄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한국 정부 역할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어야 할지 토론해보자.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정치부 기자 mia@hankyung.com